마주한 날들 Face Myself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25_0307 ▶ 2025_0323 / 월,화,공휴일 휴관

권인경_마주한 날 1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30×194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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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홈페이지_www.inkyungkwon.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inkyung.kwon.5 인스타그램_@artist_inkyung

초대일시 / 2025_0308_토요일_05:00pm

주최 / 도로시 살롱

관람시간 / 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dorossysalon

"나의 작업은 한 화면 안에 고서 콜라주와 먹선, 채색을 다양한 시점으로 중첩시키며 고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동시다발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간 속에 놓인 도시와 그 공간 내부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적 상황들을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장소 안에 놓인 인간의 기억과 상황에 기인한 대상들에 대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권인경 작업노트, 2024) "개인의 방, 장소, 그리고 공간 등에 대하여 작업하고 있는 화가, 권인경입니다." (유튜브 공셸티비 윤기원의 아티스트 톡 ep.186 인터뷰, 2025. 2. 27.)

권인경_내가 들어온 날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72×116cm_2025

왜 그랬을까. 이제까지 나는 권인경 KWON In Kyung이라는 작가를 '도시풍경'을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인경'이라고 하면 바로 '도시'가 떠올랐고,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에도 망설임 없이 '도시를 그리는 작가'라고 설명하곤 했었다. 뭐,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층빌딩과 고층아파트로 빼곡한 전형적인 '현대도시풍경'을 소재로, 장지에 채색이라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에 고서 콜라주라는 독특한 기법을 더해 자신만의 형식을 구축해낸 그를 설명할 때 도시와 풍경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인경을 '도시 풍경을 그리는 작가'라고 하는 것은 그를, 그의 작업을 충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도시를 그리고 풍경을 그리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도시를 그리고 풍경을 그리는 것은 도시와 풍경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도시는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자신과 주변에 대하여 관심이 많고,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 삶에 대하여 보다 잘 이해해 보고 싶었던 작가는 우선 자신이 있던/있는 자리, 점유하고 있던/있는 장소, 자신이 존재하고 있던/있는 '공간'에 눈길을 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것도 서울의 1세대 대형 아파트단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한 작가에게 1차적으로 눈에 들어 온 것은 자연스럽게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사실 도시라고 해서 고층건물만 즐비한 것은 아니다. '개발'이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던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넘어오고도 이미 1/4세기를 지났건만, 여전히 현대도시의 상징이, 도시의 성장과 부의 상징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고층건물, 마천루이기는 하지만, 도시가 단순히 고층건물의 유무로 규정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인경에게 도시풍경이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이 빽빽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그가 그려내고 싶었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 환경이, 장소와 공간이 고층아파트와 건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권인경에게 '도시풍경'은 자신의 주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자 도구였다.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밀집한 도시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매마른 현대사회를 보여주고 고발한다'는 전형적인 해석을 수반한다. 예전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트단지나 도시는 (시골보다)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간주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입주민들에게 불편하니 택배기사의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한다든지, 다른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이용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이기적이고 몰인간적인 행태는 주로 도시의 고층아파트단지, 그것도 강남의 고급아파트단지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권인경에게 고층아파트단지는, 도시는 그런 곳이 아니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야 하는 온 동네 사람들이 허물없이 지내는 시골의 이웃관계와는 다르겠지만 - 사실 이제 도시와 시골, 서울과 지방의 삶을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그가 자란 아파트 단지에도 이웃 간의 정이, 따뜻한 관계가 충분하게 존재했다. 그에게 '도시'와 '아파트'와 '고층건물'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에게 도시와 아파트와 고층건물은 그저 그가 자연스럽게 보고 겪은 환경이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환경이며, 지금도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이다. 시골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산과 논과 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겪은 환경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것은 그가 왜 도시풍경을 그리면서 고서 콜라주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더욱 분명하다. 자신이 보고 겪은 공간인 도시에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도시를 보고 겪은 다른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그는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서'를 오려 붙임으로서 그 이야기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간들을 자신의 도시 풍경 안에 담는다. 그러니까. 혹자에게는 메마른 현대사회의 상징일 수 있는 고층건물과 아파트로 빽빽한 도시 풍경이 권인경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억과 추억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권인경은 마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도시 풍경 안에 담아내는 것 같았다.

권인경_나와의 이야기 1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73×53cm_2025
권인경_나와의 이야기 2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73×53cm_2025
권인경_마주한 날2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35×197cm_2024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권인경은 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시 풍경을 그리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실내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거실이, 누군가의 침실이, 또 누군가의 서재가 눈앞에 펼쳐진다. 건물이 솟아 있는 도시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여 주로 그려내던 그가, 아파트의 한 벽면을 바라보며 세대 한 집 한 집의 풍경을 관찰하고 그려내기 시작한다. 성냥갑 같은 집이지만, 각각은 개별적이고 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겠거니 했다. 작품에 붙여진 제목들 역시 「개인의 방 The Private Room(2012)」, 「타인의 방 The Other's Room(2016)」, 「나와 그들의 방Me and Their Room(2020, 설치)」, 「누군가의 방 Someone's Room (2020, 설치)」과 같이 사적인 공간에 집중하는 듯 했다. 「상상된 기억들 Imagined memories (2015)」, 「잊혀진 기억 Forgotten memory (2018)」, 「마침내 드러난 기억 Revisited memory at last (2018)」 등 기억과 방, 그곳과 저곳, 현실과 상상이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인 듯 다른 이들의 기억과 추억에 집중하며 그들의 사적인 공간인 어떤 '방' 안에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듯 했다. '마침내 드러난 기억'들은 「숨겨둔 이야기 Untold Stories (2022)」들을 끌어내고, 드러난 기억들이 더해진 새로운 「개인의 방 - 덧댄 기억 The Private Room - an Added Memory (2022)」도 등장한다.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 사이를 넘나들며 어떤 '이야기'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았던 작가는 그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야 깨달았다. 권인경은 '도시'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간'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인 도시를 바라보고(조망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고(관찰하고), 자신처럼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을 바라보다가(관찰하다가), 이제는 그 공간 안으로 직접 들어가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을까. 몰래 들어가 본 것일까.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다른 이의, 타인의 방(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곳을 둘러보고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일까. 권인경이 그렇게 돌고 돌아 들어가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권인경 자신의 방이다. 꽁꽁 잠가두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 들어가 볼 수 없었던 방은, 숨겨둔 이야기들을 맞닥뜨린 곳은 타인의 방이 아닌 그 자신의 방이었다. 아니, 타인의 방에서 만난 자신의 방이라는 편이 더 맞겠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권인경_Return to paridise 1_옻칠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04×148cm_2024
권인경_말을 삼킨 방 1_옻칠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72.5×142cm_2025

권인경은 지난 개인전 『열린 방 An Open Room(2023, 갤러리밈 엠보이드)』에서 조심스럽게 어릴 적 상처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동생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동생의 상처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굳이 드러낼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숨길 일도 아니었다. 작가의 유년기에 시작되었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동생의 트라우마는 당연하게 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남다른 동생의 아픔을 보고 자라며 어린 인경은 아마 아주 일찍 철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2015년 중반, 그러니까 그가 아직 30대 중반이었을 때였는데, 함께 온 40대 초반 작가들과 비슷한 또래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가 나이 들어 보여서가 아니라, 그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와 행동 때문이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관없으니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자는 그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상적이면서도 안쓰럽다. 본래 그의 성정이 그런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아픈 동생과 함께 자라면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구나 싶어서다. 작가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작업 이해에 효과적이고 용이하지만 때로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작업을 '상처'에 집중하여 이해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열린 방 (2023)』의 평론에서 '가까운 이'로 지칭되며 조심스럽게 언급되었던 그의 동생 이야기는, 다음해 새로운 신작들을 더하여 보다 발전시킨 평론에서 '동생'으로 분명하게 지칭되며 공식적으로 등장하였고, 이번 개인전 『마주한 날들 Face Myself (2025)』을 위한 작가노트에서 권인경은 동생의 상처와 이것이 자신의 작업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담담하게 적는다. 지난 20여 년간 도시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풍경으로 그리며 풀어내던 작가는 이제 돌고 돌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본다. 자신이 도시를 관찰하고, 아파트를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의 방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보려고 했던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의 이야기와,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권인경_모호한 말들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72×22cm_2025
권인경_어떤 날의 이야기 2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26.1×18.1cm_2025

동생의 아픔으로 인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거부감과 낯섦을 가지고 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고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말에서 그가 동생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뒤이은 "결국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작업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했다"는 말에 안도했다.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생기와 사람의 온기로 가득한 그의 희망찬 방들을 훔쳐보며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하다. 권인경의 그림에서 활기와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얼마만인지. 돌고 돌아 스스로와 마주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제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작가와 마주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제까지 권인경의 작업은 화려하지만 어두웠고, 훈훈하지만 차가왔다. 냉철하게 분석된 풍경처럼 느껴졌었다. 그의 작업에서 생기와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넘어진 자리 Sigmoid Curve (2021, 도로시 살롱)』에서부터였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늘 '타인'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내가 원하는 것'을 앞에 세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변을 이해하고, 자신의 주변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으로 도시를 그리고, 아파트를 그리고, 타인의 공간들을 그리며 타인의 이야기를 그리던 작가는 그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자신의 주변에 있는 타인의 공간들을 맴돌던 것을 멈추고 자신의 공간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아주 조금 열려 있던 문을 비집고 동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동생의 방이 아닌 자신의 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동생의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자신의 방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 갇혀 있는 것은 동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나 또한 자기만의 방에 나를 가둬두고 있었다. 밖에 있었지만, 나는 나의 방에 갇혀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터져 나오고,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들만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내가 겪은 것들, 나를 만든 것들에 대하여 마주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에 맞서고, 그래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진짜 나를 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가끔은 말을 삼키기도 하지만 – 「말을 삼킨 방 The Room Holding Its Tongue(2025)」, 하루하루 '마주한 날 Face Myself 1& 2 (2024-25)」들이 쌓이고, 「나와의 이야기 Talking to Myself (2025)」들이 쌓여서 「파라다이스로 귀환 Return to Paradise(2025)」하는, 행복한 하루하루가 펼쳐진다.

권인경_다른 조우 1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8.1×26.1cm_2025
권인경_다른 조우 2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26.1×18.1cm_2025

이번 개인전 『마주한 날들 Face Myself』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권인경의 그 어느 때의 작품들보다도 다채롭고, 화사하다. 실은, '화려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이다. 푸른 색조만 고집하던 그가, 지난 『열린 방』에서 파격적인 붉은색 바탕의 작품(「열린 창, Open Window」, 2023)을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새로운 붉은 작품 (「마주한 날 Face Myself 2」, 2024)과 함께 새롭게 노란 바탕의 작품(「마주한 날 Face Myself 1」, 2025)을 들고 왔다. 그냥 노란색이 아니고, 샛노란색이다. 사진으로는 잘 안 잡히는, 예쁘고 따뜻한, 진한 노랑색이다. 보면 볼수록 다정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뿐인가, 야광빛이 나는 민트색 작품(「내가 들어온 날 The Day When I Faced Myself」, 2025)도 있고, 붉은 형광색 작품 (「나와의 이야기 Talking to Myself 1 & 2」, 2025, 「다른 조우 Another Encounter 1」, 2025)들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묘사된 공간들은 감각적이고 화사하다. 고급 인테리어 잡지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 틀림없다. 디자인 가구 쪽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가구 하나하나 알아볼 것이다. 내가 그의 서재에서 여러 아트북과 전시도록들, 그리고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더욱 생기가 넘치는 식물과 정원이다. 그가 이렇게 식물을 좋아하는 작가였던가. 방마다 싱그러운 초록식물들로 가득하고, 간간이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화병에는 감각적인 누군가의 손길로 다양한 꽃들이 솜씨 좋게 꽂혀있다. 그의 작업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조금 '덜 전통적이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작품들이 조화롭게 전통적이면서 감각적으로 세련되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이 권인경에게 이렇게 생기 넘치고 희망찬 일이었던가. 새삼 작업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추구해 온 진경(眞景)은 이런 것이 아닐까.

권인경_Return to paradise 2_캔버스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30×30cm_2025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동생의 이야기를, 작가의 개인사를 언급했던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마주한 날들 Face Myself』은 작가가 담담하게, 그러나 마침내 스스로와 마주하는 자리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나의 방에 산다는 것은 외부에서 감추어 두었던 나의 민낯과 모든 사소한 것들에 오롯이 집중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개인의 방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그는, 당당하고 용감하게 스스로의 민낯과 마주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그의 민낯을 보여준다. 동생의 상처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된 상처도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당당한 마주함은 아름답고, 희망차다. 그의 작업노트를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내 방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지난 10여 년간 나의 방은 그저 잠을 자고 몸단장 하는 공간의 역할만 하고 있다. 쉬는 날 여가와 휴식은 가족의 공유공간인 거실에서 취한다. 내 방이 너무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는커녕 어느 날부터 정리와 청소조차 버거운 워커홀릭의 생활을 하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 갤러리 사무실도 포화상태이기는 마찬가지라, 남들과 공유하는 공간인 전시장과 화장실 정도만 가까스로 깔끔하게 유지한다. 한 공간의 풍경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갤러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는 다르다는 뜻이 될까.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감춰두고 있을까. 타인에게 감추는 것 말고, 나 스스로에게 감추는 나의 모습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 나는 과연 숨겨진 나의 이야기와 당당하게 마주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권인경 KWON In Kyung개인전 『마주한 날들 Face Myself』의 아름다운 공간들과 마주하며 당신도 당신만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기를, 당신만의 '개인의 방'을 아름답고 희망차게 구성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임은신

권인경_붉은 기억과 초록의 날 2_나무패널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0×10cm_2025
권인경_붉은 기억과 초록의 날 1_나무패널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_10×10cm_2025

덧1. 권인경의 작업에 대한 평론은 2023년 개인전 『열린 방』에 대한 이선영의 글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덧2. 권인경의「타인의 방 1(2016)」과 「숨겨둔 이야기(2022)」 연작을 보며 정연두의 「상록타워(2001)」와 정재호의 아파트 작업들이 생각났다. 이번에 함께 다루어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지면관계 상 다음기회로 미룬다. 덧3. 권인경은 유튜브 공셸티비 윤기원의 아티스트톡 인터뷰(2025.2.27.)에서 끊임없이 '안과 밖', '경계'의 넘나듦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가 몇 해 전 전시 제목으로 언급했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에 대한 이야기를 발전시켜도 흥미로울 듯싶다. 권인경의 헤테로토피아에 대해서는 우선 이선영의 평론 『변화하는 전체의 조망(2015)』을 참조할 것.

Vol.20250307b |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