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31027b | 권인경展으로 갑니다.
권인경 홈페이지_www.inkyungkwon.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inkyung.kwon.5 인스타그램_@artist_inkyu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4 갤러리밈 전속작가展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1층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시간이 스민 공간을 펼치다 ● 권인경의 작품 속 공간은 누군가의 방이며,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연장이다. 그 안에 놓여 있거나 쟁여 있는 것들은 마치 앨범이나 책, 비망록, 웹페이지 화면처럼 개인의 기억과 취향, 필요와 욕망 등을 반영한다. 하지만 작가가 어떤 방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는 바깥/배경은 대개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평면이라는 점에서 추상이다. 누구의 방도 아니지만, 누구나의 방일 수 있도록 부여된 또 다른 맥락이다. 시간과 공간의 연동성에 기반을 둔 현대물리학의 가설에 의하면, 공간은 곧 시간이다. 장소에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스며있다. 방과 더불어 기억을 호출하는 이유다. 작가는 이 시간의 흔적에 대해 기록보다는 각인이라는 고통의 동반을 더 염두에 둔다. 고통은 회피되고 억압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해석되어야 할 수수께끼가 된다. 행위의 흔적은 달팽이집의 분비물처럼 자연스럽지만, 기록/각인은 인공적이다. 사물과 말의 불일치는 무한 변주를 추구하는 예술의 필요조건을 갖춘다.
개인이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최적의 장소는 대개 자기 방이다. 아무리 누추한 방도 그곳은 세상의 중심이 된다. 그곳은 은신처이자 바깥 활동으로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일종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작가에게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방이 완전히 닫혀있다면 그것은 관(棺)과 다를 바 없다. 세포(cell)라는 단어에 '방'이라는 의미가 있듯, 개인이자 개인의 연장인 방은 세포막처럼 열림과 닫힘에 유연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열린 방'에 주목했으며, 최근의 '열린 창'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보화 사회가 더욱 진전되면서 방과 창은 이제 납작한 단말기 표면으로 환원되고 있다. 코드가 코드를 파생시키며, 다름이 생성되기 더 어려운 시대가 됐다. 엿보기 시점과도 무관하지 않은 장면은 화면으로 평행이동 한다. 그림 또한 방처럼 무언가를 담는다. 방은 다양한 차원으로 접히고 펼쳐지기를 반복하면서 차이를 생성한다. ● 직장과 작업실, 집 등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방에 갇혀있다시피 살고 있는 동생, 몇 년 전에 불탄 아버지의 작업장 등, 권인경에게는 공간과 관련된 사연과 사건들이 유독 많았다. 작가는 2003년 진경(眞景)과 관련된 미술관 기획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진경에 대해 이론적, 예술적으로 탐구해 왔다. 작품 속 방은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역동적인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특히 콜라주 된 고서는 텍스트로 확장되고, 텍스트주의자들이 단어의 의미를 찾을 때 사전을 열어보는 것과 비교하듯, 계열관계를 통해서 끝없이 이어진다. 방/창은 네버앤딩 스토리의 발원지이자 종착점이다. 열림은 해체와 호환되며, 해체는 (재)구축이다. 열린 공간을 다루는 작품이 큐브를 맞추는 듯한 무한 조합의 게임이 가능한 이유이다. 텍스트주의와 해체주의는 이전 시대의 구조적 관념의 경직성을 털어내려는 현대 사상의 흐름이다.
체계가 하나의 점으로 고립시키는 개인은 좌표적 공간 속에서 추상화된다. 반면 권인경의 '방'은 조너선 스미스가 [자리 잡기]에서 말하듯, 추상적 공간이 아닌 구체적 자리에 해당된다. 추상적 공간은 상징적 중심/주변의 이원적 관계를 가정함으로써 관념론에 머물지만, 구체적 자리는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기억을 중시한다. 가령 '또한 이곳에 존재하는 그곳들'이라는 전시 주제는 이곳을 침식하는 그곳, 또는 이곳과 저곳의 공존을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풍경(借耕)이 그려진 부채처럼 잠재성과 현실성은 접고 펼치기의 관계와 같다. [자리 잡기]에 의하면 기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표시이다. 방이 표현된 작품은 그러한 표시들과 관련된다. 방을 채우는 여러 물건들 중 자주 보이는 의자와 화분은 인간의 은유다. 하지만 그 자리는 충만 대신에 부재가 두드러지며, 이는 지속적으로 실재의 회복과 치유를 추동한다. 결코 완료될 수 없는 목적은 차이와 반복을 거듭하게 한다.
특히 최근작에서 붉거나 푸른 생경한 색을 배경으로 하는 아파트 창처럼 평행하게 공간을 배열하는 구성은 차이를 낳는 반복의 실행이 두드러진다. 개인을 추상적 공간에 좌표 화하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이 바로 소외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고립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자신이 자리한 곳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한 예술가들에게 문, 창문, 거울, 관(管) 등은 또 다른 차원의 입구가 되어주곤 한다. 권인경의 작품 속 건축적 구조물은 늘 그런 잠재적 탈주 선과 관련된 인터페이스로 작동한다. 방안의 모든 것이 잠재인 통로가 되며, 각 작품마다 다르게 현실화한다. 그렇게 개인은 방에 있어도 세상과 만난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세상이 만나는 창구의 다양성이다. 작가가 연출한 변화무쌍한 시공간을 따라가는 관객의 시선은 불연속적인 간극과 조우하기도 하면서 상상으로 도약한다. 이러한 도약에 기억과 지각, 욕망과 구원의 희망 등이 함께한다. ■ 이선영
Vol.20241002l |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