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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령_http://hyeryoungmin.com 인스타그램_@hyeryoung_mi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기획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PS Sarubi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창성동 158-2번지) B1 Tel. +82.(0)2.733.0440 www.sarubia.org www.facebook.com/pssarubia @pssarubia
바라봄에는 깨달음이 뒤따른다. 바라본다는 것은 시선의 끝에 잠겨 있을 무언가를 낚싯줄을 당기듯 끌어 보거나, 생경함 속에서 익숙함을 만날 때까지 잠겨보는 과정일 것이다. 체험으로 품은 장면들은 작가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이 작업으로서 공유될 때,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된다. 사진 속에는 한없이 길어지는 시간 속에서 작가가 포착한 찰나가 담긴다. 담기지 않았다면 증발해 버렸을 시간, 혹은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 제멋대로 휘어졌을 장면들 말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영원히 잊혀질 시간들이 사진을 통해 목소리를 얻는다. 한 칸의 네모 속에는 공간을 경유하는 여러 시간과, 그곳을 바라보던 한 사람의 시선이 담긴다. 납작한 종이 위에서 시간은 멈춰 있는 듯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고착되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도 하고, 빛이 바래 찾을 수 없던 묵은 감정을 다시 꺼내기도 하며, 잘 안다고 여겼던 것들 사이의 공백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진 속에 담긴 시간은 상황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 따라 계속 달리 보인다. 민혜령 작가는 사진을 통해 익숙함과 새로움이 맞닿은 자리를 담아왔다.
『Channel 247』에서 민혜령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들을 관찰한다. 그들은 작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전시 제목의 247은 일상을 뜻하는 24/7을 연상하지만, 실은 민혜령 작가가 거주하던 뉴욕 브루클린 주택의 번지수이다. 작가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247번지를 주축으로 여러 삶이 교차한다. 2011년 완성된 이 시리즈 속에는 그가 274번지에 입주한 시기부터 해를 넘겨 이사를 나가는 순간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작가는 어느 날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창문 너머의 낯선 이들을 마주하다가 문득 그들의 일상을 파악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창문을 TV로 여기며 이웃들을 각자의 역할을 가진 배우들로 생각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방송은 매일 아침 분주하게 집을 나서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된다. 텔레비전(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는 길 건너편에 살고 옷과 주변 환경을 늘 깔끔하게 유지하는 스타일리시 파파(Stylish Papa)¹, 뒷마당으로 보이는 갓 출소한 갱들이 모여 사는 후드와 늦은 밤 열리던 왁자지껄한 백야드 파티, 별안간 텅 비어버린 그들의 아지트, 그리고 가까운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천진난만한 자신의 삶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그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방치된 튜브와 강아지, 웨스트 인디언 데이 퍼레이드(West Indian Day Parade)²에 주베이(J'ouvert)³의 코스튬을 입은 캐리비안들과, 장례식으로 향하는 듯 검은 정장을 한 무리들이 출연한다. 쉼 없이 펼쳐지는 이 방송이 유일하게 쉬어가는 시간은 비가 내려 인적이 드물어지는 날이다. 다양한 문화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진으로 담기고, 작가의 삶과 이어진다.
민혜령은 『Channel 247』에서, '창문'이라는 분명한 경계를 두고, 개인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이 평행하는 순간을 바라보고 포착한다. 바라봄 속에서 낯섦은 익숙한 것이 되고,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다시 생경함을 발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프레임을 사이에 둔 낯선 이들과의 느슨한 유대감은 시선 자체를 하나의 장소(채널)로 만든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타인의 세상을 방문하고, 그들을 피사체로서 자신의 세상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의 세계에 간섭하지 않고, 서로를 영원한 손님으로 남겨둔다. 민혜령은 자신의 서사 안으로 들어온 삶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고 사진으로 담지만, 일방적인(주관적인) 묘사는 가능한 덜어내려고 한다. 그들의 패턴을 구분하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가 스스로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일 뿐 그들이 대상화되어 한 방향으로 읽히는 것은 지양한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피사체를 담되, 어떠한 감정을 씌우기보다는 대상을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보여지도록 한다. 작가의 시간과 닿았던 피사체는, 작가의 감각을 거쳐 사진 속에 담기고, 이 이미지는 다시 관객의 시간과 맞닿으면서 새로운 사건으로 거듭난다.
민혜령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되 시선이 닿은 자리를 사유하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피사체를 포착할 때, 오히려 피사체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의식하지 않는 표정과 행동 그 자체를 담아낸다. 사진이 가진 기록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진이 작업으로서 그리고 온전한 이미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회화만큼이나 배치되는 위치, 현상하거나 인쇄하는 방식, 그리고 이미지가 올라갈 지지체의 물성에 대한 엄격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 포착한 찰나를 생동감 있는 현재로서 전시장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 고민한다. 순차적으로 흐르던 시간이 작가의 시퀀스를 통해 재구성되며 새로운 흐름을 갖게 되고, 한 공간에 축적된 변화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사루비아 전시를 위해 작가는 보편적인 인쇄 규격에서 벗어나, 이미지의 흐름을 가장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 사이즈를 고민하기도 하고, 종이의 촉각성과 함께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는 출판물을 모색하기도 했다.
얼룩처럼 바닥에 쏟아지거나 벽면 어딘가에 잠시 기대었다 사라지는 햇빛처럼, 개인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얽혔다 멀어지길 반복한다. 민혜령은 피사체를 정적인 대상으로서 담기보다는 서로의 시간을 교차하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풍경과 사유가 맞물렸을 때 떠오르는 가장 생경한 찰나로서 포착한다. 그러기 위해 응시하되 개입하지 않고, 피사체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오랜 바라봄을 통해 내밀한 곳으로부터 쌓여온 서사와 감각이 일상을 통해 피사체와 연결된다. 사진은 순간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로 인해서 간과되기도 해왔다. 하지만 찍히는 순간은 짧을지언정, 작가는 아득한 시간 속에서 가장 원하는 장면을 마주하기 위해 보이는 것보다 오랜 시간을 바라봄에 쏟게 된다. 그렇기에 사진은 인내하는 자들의 매체이고, 마음속에서 팽창하는 생각을 거르고 걸러 가장 얇은 형태로 드러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 문소영
¹ 작가가 이웃의 일상과 패턴을 파악하며 부여한 캐릭터이다. 감정적 주관을 담기보다는 관찰을 통해 발견한 생활 패턴으로부터 비롯된다. ² 미국 노동절(Labor Day) 행사의 일환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리는 대규모 거리 축제이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바베이도스,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등 서인도제도 출신 이민자들의 문화를 기념하며, 화려한 복장을 하고 전통춤과 음악을 즐긴다. ³ 공식 축제가 시작하기 전 새벽에 열리는 행사이다. '새벽' 또는 '날이 밝다'는 뜻의 프랑스어 'jour ouvert'에서 유래했다.
Vol.20250305b | 민혜령展 / MINHYERYOUNG / 閔惠鈴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