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

상상력의 해방을 통한 숙성된 심경산수

김형기展 / KIMHYOUNGKI / 金亨起 / painting 2024_1114 ▶ 2024_1120 / 월요일 휴관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_한지에 먹, 채색_70×13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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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4_1114_목요일_05:00pm

2024인천예술창작집중지원 2차년도김형기 33th 개인展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본 전시는 인천광역시와 (재)인천문화재단의후원을 받아 「2024인천예술창작지원사업」으로선정되어 개최되는 사업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Incheon Art Platform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E1 전시장2Tel. +82.(0)32.760.1000www.inartplatform.kr

1. 상상력의 해방을 통한 숙성된 심경산수 ● 김형기는 분방한 조형 실험과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평면, 입체, 행위, 설치 등을 종횡해 왔다. 자연과 우주를 사유하면서 이에 구애됨이 없이 추상 충동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김형기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에 존재하는 미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 비견된다. 존재하면서 존재를 사유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숙명은 결국 미적 상상력의 세계로 몰입될 수밖에 없으나 작가는 이 상상력마저도 해방함으로써 그의 예술은 끝없는 생명 순환의 한 지점에 유동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상상력의 해방'이라는 사유를 바탕에 두고 '상상'과 '표출'이라는 미적 접근법을 통해 자동기술적으로 구현해 낸 것으로 강한 회화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_한지에 먹, 채색_70×35cm×4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_한지에 먹, 채색_135×35cm×7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_한지에 먹, 채색_135×35cm×7_2024

생명순환의 표출 ● 김형기는 "내면의 욕망 표출로 무한한 생명들이 잉태되고 그 생명 순환의 과정에서 잉태된 예술적 발견을 통하며 새로운 동굴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플라톤(Platon)의 '동굴' 비유는 그 배후에서 본래적인 로고스를 감추면서 본질적인 가치를 탐색하는 서사시이자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도록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동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구제와도 같이 새로운 세계로, 자유와 해방으로, 진리의 세계로, 불멸하는 실재(idea)로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김형기에게 동굴은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상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 근원이자 마치 '흑'과 '백'의 양면처럼 어둠을 밝히는 유토피아적 욕망을 무대화"하는 영원회귀의 패러다임이다. 그것은 니체(F. Nietzsche)가 말한 영원회귀의 패러다임, 즉 "새로운 카논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보편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만,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건으로써 탈정초(脫定礎)로써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입장과 부합된다.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 순환한다. 이로써 동일자의 영원회귀뿐 아니라, 상상력의 해방, 창조의 영원회귀 또한 보증된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人_한지에 먹, 채색_135×35cm×7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人_한지에 먹, 채색_135×35cm×4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人 시리즈_한지에 먹_70×35cm_2024_부분

김형기의 예술은 이 지점에 부합된다. 작가는 형상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작가의 심상이 만들어낸 형태를 실험하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물질의 순환운동을 통해 회화 전통의 재현 개념을 해체한다. 우주를 담은 한글(기호)의 형태와 공간 드로잉은 대등하게 혹은 종속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보완하고 형상은 여전히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론적 타당성을 웅변하고 있다. 오토마티즘에 기반한 김형기의 드로잉은 소박하고 겸손하다. 일체의 기교나 인위적인 표현, 특히 도회적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잘 익은 술처럼 숙성된 조형미를 보여주다가도 어떤 때는 천진해 보일 정도로 자유롭고 유희적이다.● 중첩된 묵의 물성과 자동기술법적 유동이 강한 생명성을 띠며 존재하는 김형기의 회화는 규정된 미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움을 견지하며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부단한 실험주의의 연속체다. 김형기의 화면에 겹겹의 층과 층 사이가 만들어 내는 습윤한 물성은 행위의 순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강령을 재소환하는 듯 하다. 그의 '심경산수'에서 나타나는 추상적이면서도 강렬한 심상의 이미지와 응축된 질감은 결코 화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박한 일상의 고단함과 노동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_한지에 먹, 채색_220×70cm_2024

미적 욕망과 상상의 표출 ● 김형기는 거시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응축하는 모더니즘의 방법을 계승하면서 미시적으로는 앵포르멜적인 태도 즉, 감성적 반응이나 기억, 심리적 인상 등을 통해 사물을 해석하고 있다. 사실 오토마티즘에 의한 분방한 층위의 화면과 드리핑작업에 의한 선면의 유기적 관계는 외부와의 연결인 동시에 내부로의 단절이다. 열림의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절과 구분되면서도 닫힘의 기능으로만 정체되어 있을 때 실상 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섬세한 파장과 이를 통제하는 선의 관계성은 노쇠한 변증법적 사유를 우리에게 강요하여 우주와 존재 간의 이항대립(二項對立)적 관계성에 대하여 다시 사유케 한다. 먹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리적 요소와 요약된 심경산수가 만들어낸 초형상은 어느덧 형태, 혹은 재현의 요소를 초월한 절대형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 단순성과 입체성, 형상의 요약 혹은 해체라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이 숙성된 그의 작업은 자연과 우주에 주목하여 그것에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대상의 '해체냐 통합이냐'라는 문제의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 이처럼 작가는 색다른 사유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난 심상의 이미지를 모던한 형식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김형기는 끊임없이 펼쳐진 공간, 구체적이진 않으나 향후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진입을 갈구하며 지향하고자 하는 예술적 욕망을 담담하게 표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존재적 형상이 지닌 신비함과 추상표현주의가 지닌 익명성은 미증유의 비논리적 연결성을 띠며 모더니즘 미술이 끊임없이 주입한 절대성과 평면성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결국 김형기의 「심상산수」 연작은 작가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인간이 '존재'를 자기 앞에 세우는 주체적인 활동으로써 '대상'과 맺는 관계방식을 스스로 설정함으로써, 다양한 존재를 생명의 지평 위에 표출하고자 하는 적극적 표현행위로 간주된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_한지에 먹, 채색_35×135cm_202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모노노케히메_한지에 먹, 채색_22×22.3cm_2024

숙성된 심경산수 ● 평면과 입체, 설치와 행위의 영역을 종횡하며 작업해 온 김형기의 예술역정은 "상상력의 해방"을 통하여 예술의 본질에 더 다가서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의 「심상풍경」은 마치 도원을 몽유(夢遊)하는 선비, 혹은 무지개를 쫓는 소년의 부박함처럼 손에 잡힐 것 같으나 결국 이상적일 수 밖에 없는 가치를 현현한다. 자연과 우주를 사유하면서도 결국 내면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그의 예술은 또 다른 예술적 가치를 잉태시키며 새로운 동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심상 동굴」 시리즈를 통해 내면의 욕망표출로 무한한 생명들을 잉태시키고 그 생명 순환은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상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가 하면 어둠을 밝히는 유토피아적 욕망을 드러낸다. ● 적묵과 발묵, 연속과 비연속, 드로잉과 드리핑 등 동시대적 조형요소들이 '숙성'되어 있는 그의 작업은 현존이 부재가 되고 실재가 허상이 되며, 원본과 복제의 개념을 재정의 하도록 요구한다. 먹의 번짐과 겹침에 의해 구현된 유형·무형의 형상들은 분방한 구조와 응축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포지티브한 속성이 감지되는 작품의 표면은 그의 작업의 단계가 재료의 물성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시작부터 그가 찾는 것을 심상적으로 찾아가면서 결정적 순간에 '저절로' 되도록 유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가는 재료 자체를 날것 그대로 노출시키거나 반대로 산수와 같은 모티브를 부가함으로써 강한 흑백대비를 추구하면서 서로 숙성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_한지에 먹, 채색_10×10cm×150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예술과 노동이라는 접점에 위치한 작가적 행위, 즉 작업과정에서의 장인적 노고와 예술적 욕망의 결과물인 그의 작품이 본래 마음속으로 생각해왔던 '실재(산수)'와 일체된다는 점이다. 김형기의 내면에 존재하는 산수의 모습은 늘 생동하기 때문에 형태적 진위의 가치차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체의 독립적인 존재의미를 갖는 그의 화면은 상징과 재현, 추상화와 암시, 반복적인 노동과 매체의 실험들이 혼융된 시뮬라크르적 유희들로 점철되어있음을 보게 된다. 형태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그의 그림은 건강한 활력을 보이며 왕성한 생명성을 보이는 격정적인 화면으로 우리를 이끈다. 매력적인 그의 근작들은 유동하는 경물들과 조우하는 먹의 생동,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은 일체감, 기교를 멀리하고자 하는 태도, 수묵으로 주제를 숙성시키는 기지(奇智) 등 동시대 회화와 전통을 잘 융화시키고 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다기보다는 도구의 간섭과 회화적 기교를 가능한 배제하고 수묵 스스로 추동하여 활력을 보이도록 배려한 작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전능한 화가의 모습보다는 현상에 순응하는 동시대 장인의 모습을 본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2. 잠재된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 ● 김형기의 최근 작업은 한지에 침투한 먹이 품고 있는 산수나 자연, 혹은 사람의 이미지를 추출해내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잠재된 이미지를 발굴해 내는 작업이다. 그는 국전지를 둘둘 말아 여기에 먹을 입히고 한동안 방치한 후 이를 펼치면서 드러난 농익은 이미지들에서 형상을 추출하여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양파껍질처럼 켜켜이 중첩된 한지를 벗길 때마다 드러나는 형상들은 마치 술이 익는 것과 같은 숙성된 조형적 향취를 드러내며 파노라마 같은 형상성을 보여준다. 이는 모더니즘 시대의 전지전능한 창조자의 권리를 포기한 작가가 예술을 관장하기보다는 재료와 물질이 서로 반응하여 물리적 작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응결되는 형상들의 가치를 발견하여 우리에게 제시하는 소극적 방식의 창조 행위의 결과물이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농익은 먹의 변주 ● 김형기는 이러한 과정을 김치나 장을 숙성시키는 것에 비교한다. 한지에 배인 먹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깊은 색을 머금다가도 이따금 우리에게 농익은 색의 변주를 보여주곤 한다. 동양 화론에 묵유오채(墨有五彩)란 말이 있듯이 작가는 무채색의 먹을 통해 색을 실감하도록 먹을 스스로 유동하게 방임하는 것이다. 이때 먹은 자동기술적 번짐을 통하여 변화무쌍한 먹색의 변주를 보여주거나, 자연이나 혹은 인간의 형상을 나타내 보여주기도 한다. 사용한 먹의 양이나 기간에 따른 숙성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작가는 먹을 숙성시키기 전에 생수병이나 벽돌 등 다양한 도구들을 올려놓아 먹의 번짐을 제어하기도 한다. 드러난 형상들은 자연과 일체화된 여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거나, 전체와 부분이 하나의 물활론적 이미지를 잉태시키면서 신체의 특정한 부분을 재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공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형상 자체가 자연과 일체화되어 익명성을 드러내고 있다. 먹이 응고되거나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저절로 이루어진 형상은 작가가 창조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가 개입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김형기의 작업은 사람 혹은 산, 폭포라는 근거가 있으면서도 아무런 근거 짓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원본과 파생물, 사물과 허상들 사이의 차이를 정하는 모든 근거를 파괴하고 삼켜버린다. 이는 원본으로부터 이탈된 것이라는 차이의 종속적 위치로부터 차이를 분리시키며, 차이를 원본의 부차적 파생 효과로 존재시키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것은 근거로부터 자유로운 해방의 미학이자 영원회귀의 패러다임이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생명의 보고 ● 김형기의 작업은 미술사를 통해 예술적 규범과 질서로 자리 잡은 재현의 패러다임과 상징체계가 주장하였던 가치들에 대한 반어이자 해체이다. 그의 작업장에는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자연사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실된 의미와 기능은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잉태하며 또 다른 가치로 우리와 마주하게 된다. 김형기의 예술은 일종의 "행위의 기록 보관소"로써 시간을 소환하고 인지를 무력화하는 해체적 성격을 띤다. 김형기는 원본을 참조하든 차용하든 간에 표현의 자율성, 그리고 노동을 통한 행위의 기록을 통하여 새로운 미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김형기의 작업은 시간 위에 자신과 삶을 축적해 가는 작업이다. 작품에는 각 층위마다 작가의 경험과 사유가 겹겹이 배어있다. 작가는 삶과 예술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화면에 쌓아가며 시간의 흔적을 담아 둔다. 미로와 같은 화면에서 보이듯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시추하려는 듯한 미적 욕망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작가의 내면세계를 함축시키면서도 이념의 주입보다는 이의 시공간적 맥락에 주목하면서 작업을 전개해 간다. 그가 창안한 화면은 먹의 자유로운 유동을 방임한 가운데 작가의 무의식적 설계에 따른 행위의 장이자 또 다른 상상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중첩된 생명의 보고이다. ● 이처럼 중첩된 형상들의 물성과 자동기술법적 먹채의 유동이 강한 생명성을 띠며 존재하는 김형기의 회화는 규정된 미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움을 견지하며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부단한 실험주의의 결정체다. 김형기의 화면에 겹겹의 층과 층 사이가 만들어 내는 미묘한 형상은 행위의 순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강령을 재소환하는 듯 하다. 추상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의 물성과 이미지는 결코 화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박한 일상의 고단함과 참신한 노동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형기_동굴-深(墨)鏡(거울)-山水.人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4

풍성한 자연의 흔적 ● 최근 김형기의 「深鏡-山·人」연작은 표현주의적 화면을 유지하면서 농담을 달리하는 숙성된 작업을 통해 단색조의 정제된 색면들이 서로 흡수하고 반응토록 하면서 질량 또한 강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먹에 의한 단색 화면은 자율성을 드러내기 위함은 물론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된다.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본질로 돌아간 화면의 먹색은 그 순도 자체로 감각적인 요소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축적된 화면의 깊이는 시간의 추이에 대한 명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화면 안에 형상이 간간이 보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것은 존재보다는 부재를 사유케 한다. 오히려 부재를 통해 늘 보이지 않았던 우주와 자연의 현존하는 가치들을 더욱 풍성하게 드러내고 있다. ● 이처럼 '형상의 재현'이라는 욕심을 버린 작가는 일단 뒤로 한걸음 물러서 있으나, 존재적 형상이 지닌 신비함과 앵포르멜적 추상이 지닌 익명성은 미증유의 논리적 연결성을 띠며 모더니즘 미술이 끊임없이 주입한 절대성과 평면성의 원리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무채색으로 꽉 차 있으나 결국 텅 빈 색면, 마치 미궁처럼 끝없이 미끄러져 들어갈 것만 같은 회색조의 깊은 수렁, 화면의 일부에는 가시광선과 다른 찬란한 빛이 머무르기도 한다. 확산과 환원이 한 화면에서 요동치는 그의 작업은 그래서 더욱 자연에 다가서 있다. ■ 이경모

Vol.20241114b | 김형기展 / KIMHYOUNGKI / 金亨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