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심상鏡 山水

김형기展 / KIMHYOUNGKI / 金亨起 / painting   2023_1123 ▶ 2023_1130 / 월요일 휴관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_한지에 먹_70×200cm_202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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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1124_금요일_05:00pm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본 전시는 2023 인천광역시, (재)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개최합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E1 전시장2 Tel. +82.(0)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상상력의 해방을 통한 숙성된 심경산수 ● 김형기는 분방한 조형 실험과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평면, 입체, 행위, 설치 등을 종횡해 왔다. 자연과 우주를 사유하면서 이에 구애됨이 없이 추상 충동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김형기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에 존재하는 미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 비견된다. 존재하면서 존재를 사유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숙명은 결국 미적 상상력의 세계로 몰입될 수밖에 없으나 작가는 이 상상력마저도 해방함으로써 그의 예술은 끝없는 생명 순환의 한 지점에 유동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상상력의 해방'이라는 사유를 바탕에 두고 '상상'과 '표출'이라는 미적 접근법을 통해 자동기술적으로 구현해 낸 것으로 강한 회화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水)_한지에 먹_70×135cm_2023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水)_한지에 먹_135×70cm_2023

생명순환의 표출 ● 김형기는 "내면의 욕망 표출로 무한한 생명들이 잉태되고 그 생명 순환의 과정에서 잉태된 예술적 발견을 통하며 새로운 동굴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플라톤(Platon)의 '동굴' 비유는 그 배후에서 본래적인 로고스를 감추면서 본질적인 가치를 탐색하는 서사시이자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도록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동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구제와도 같이 새로운 세계로, 자유와 해방으로, 진리의 세계로, 불멸하는 실재(idea)로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김형기에게 동굴은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상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 근원이자 마치 '흑'과 '백'의 양면처럼 어둠을 밝히는 유토피아적 욕망을 무대화"하는 영원회귀의 패러다임이다. 그것은 니체(F. Nietzsche)가 말한 영원회귀의 패러다임, 즉 "새로운 카논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보편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만,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건으로써 탈정초(脫定礎)로써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입장과 부합된다.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 순환한다. 이로써 동일자의 영원회귀뿐 아니라, 상상력의 해방, 창조의 영원회귀 또한 보증된다.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_한지에 먹_70×135cm_2023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水)_한지에 먹_35×135cm×2_2023

김형기의 예술은 이 지점에 부합된다. 작가는 형상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작가의 심상이 만들어낸 형태를 실험하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물질의 순환운동을 통해 회화 전통의 재현 개념을 해체한다. 우주를 담은 한글(기호)의 형태와 공간 드로잉은 대등하게 혹은 종속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보완하고 형상은 여전히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론적 타당성을 웅변하고 있다. 오토마티즘에 기반한 김형기의 드로잉은 소박하고 겸손하다. 일체의 기교나 인위적인 표현, 특히 도회적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잘 익은 술처럼 숙성된 조형미를 보여주다가도 어떤 때는 천진해 보일 정도로 자유롭고 유희적이다.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水)_한지에 먹_135×70cm_2023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人)_한지에 먹_80×40cm_2023

중첩된 묵의 물성과 자동기술법적 유동이 강한 생명성을 띠며 존재하는 김형기의 회화는 규정된 미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움을 견지하며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부단한 실험주의의 연속체다. 김형기의 화면에 겹겹의 층과 층 사이가 만들어 내는 습윤한 물성은 행위의 순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강령을 재소환하는 듯 하다. 그의 '심경산수'에서 나타나는 추상적이면서도 강렬한 심상의 이미지와 응축된 질감은 결코 화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박한 일상의 고단함과 노동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水)_한지에 먹_200×70cm×2_2023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水)_한지에 먹_135×70cm_2023

미적 욕망과 상상의 표출 ● 김형기는 거시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응축하는 모더니즘의 방법을 계승하면서 미시적으로는 앵포르멜적인 태도 즉, 감성적 반응이나 기억, 심리적 인상 등을 통해 사물을 해석하고 있다. 사실 오토마티즘에 의한 분방한 층위의 화면과 드리핑작업에 의한 선면의 유기적 관계는 외부와의 연결인 동시에 내부로의 단절이다. 열림의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절과 구분되면서도 닫힘의 기능으로만 정체되어 있을 때 실상 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섬세한 파장과 이를 통제하는 선의 관계성은 노쇠한 변증법적 사유를 우리에게 강요하여 우주와 존재 간의 이항대립(二項對立)적 관계성에 대하여 다시 사유케 한다. 먹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리적 요소와 요약된 심경산수가 만들어낸 초형상은 어느덧 형태, 혹은 재현의 요소를 초월한 절대형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 단순성과 입체성, 형상의 요약 혹은 해체라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이 숙성된 그의 작업은 자연과 우주에 주목하여 그것에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대상의 '해체냐 통합이냐'라는 문제의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이처럼 작가는 색다른 사유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난 심상의 이미지를 모던한 형식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김형기는 끊임없이 펼쳐진 공간, 구체적이진 않으나 향후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진입을 갈구하며 지향하고자 하는 예술적 욕망을 담담하게 표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존재적 형상이 지닌 신비함과 추상표현주의가 지닌 익명성은 미증유의 비논리적 연결성을 띠며 모더니즘 미술이 끊임없이 주입한 절대성과 평면성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결국 김형기의 「심상산수」 연작은 작가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인간이 '존재'를 자기 앞에 세우는 주체적인 활동으로써 '대상'과 맺는 관계방식을 스스로 설정함으로써, 다양한 존재를 생명의 지평 위에 표출하고자 하는 적극적 표현행위로 간주된다.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숙성된 심경산수 ● 평면과 입체, 설치와 행위의 영역을 종횡하며 작업해 온 김형기의 예술역정은 "상상력의 해방"을 통하여 예술의 본질에 더 다가서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의 「심상풍경」은 마치 도원을 몽유(夢遊)하는 선비, 혹은 무지개를 쫓는 소년의 부박함처럼 손에 잡힐 것 같으나 결국 이상적일 수 밖에 없는 가치를 현현한다. 자연과 우주를 사유하면서도 결국 내면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그의 예술은 또 다른 예술적 가치를 잉태시키며 새로운 동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심상 동굴」 시리즈를 통해 내면의 욕망표출로 무한한 생명들을 잉태시키고 그 생명 순환은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상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가 하면 어둠을 밝히는 유토피아적 욕망을 드러낸다.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김형기_동굴-심상鏡 山水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2_2023

적묵과 발묵, 연속과 비연속, 드로잉과 드리핑 등 동시대적 조형요소들이 '숙성'되어 있는 그의 작업은 현존이 부재가 되고 실재가 허상이 되며, 원본과 복제의 개념을 재정의 하도록 요구한다. 먹의 번짐과 겹침에 의해 구현된 유형·무형의 형상들은 분방한 구조와 응축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포지티브한 속성이 감지되는 작품의 표면은 그의 작업의 단계가 재료의 물성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시작부터 그가 찾는 것을 심상적으로 찾아가면서 결정적 순간에 '저절로' 되도록 유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가는 재료 자체를 날것 그대로 노출시키거나 반대로 산수와 같은 모티브를 부가함으로써 강한 흑백대비를 추구하면서 서로 숙성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김형기_동굴-한.산(한뫼.심상鏡 山)_한지에 먹_70×200cm_2023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예술과 노동이라는 접점에 위치한 작가적 행위, 즉 작업과정에서의 장인적 노고와 예술적 욕망의 결과물인 그의 작품이 본래 마음속으로 생각해왔던 '실재(산수)'와 일체된다는 점이다. 김형기의 내면에 존재하는 산수의 모습은 늘 생동하기 때문에 형태적 진위의 가치차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체의 독립적인 존재의미를 갖는 그의 화면은 상징과 재현, 추상화와 암시, 반복적인 노동과 매체의 실험들이 혼융된 시뮬라크르적 유희들로 점철되어있음을 보게 된다. 형태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그의 그림은 건강한 활력을 보이며 왕성한 생명성을 보이는 격정적인 화면으로 우리를 이끈다. 매력적인 그의 근작들은 유동하는 경물들과 조우하는 먹의 생동,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은 일체감, 기교를 멀리하고자 하는 태도, 수묵으로 주제를 숙성시키는 기지(奇智) 등 동시대 회화와 전통을 잘 융화시키고 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다기보다는 도구의 간섭과 회화적 기교를 가능한 배제하고 수묵 스스로 추동하여 활력을 보이도록 배려한 작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전능한 화가의 모습보다는 현상에 순응하는 동시대 장인의 모습을 본다. ■ 이경모

Vol.20231122i | 김형기展 / KIMHYOUNGKI / 金亨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