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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성인 6,000원 / 청소년,65세 이상 4,000원 기타 자세한 사항은 ▶ 홈페이지 참고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이상원 미술관 LEESANGWON MUSEUM OF ART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지암길 99 Tel. +82.(0)33.255.9001 www.lswmuseum.com
마침내 드러난 안재홍의 세계, 그의 공간 ● "밖으로 보면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은 내가 침범할 수 없는 많은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요. "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이데아·지각』 김우창/문학평론가, 영문학자)
예술이나 철학, 종교의 핵심적인 주제 중에 한 가지는 '존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것이다. 안재홍 작가의 작품은 사람의 형상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형태인데,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인간에 대한 작가의 탐구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 존재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질로 표현되는 예술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느껴지길 기대하기에 그렇다. 마치 사람이 물질로 되어 있으나 생명이라는 신비를 담아 삶이라는 세계를 형성하는 존재이므로 물질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모호함을 품은 실존의 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문득 실제 사람을 대하는 평소 우리들의 태도가 적잖이 가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00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안재홍 작가의 작품은 재료인 구리선의 두께는 굵어지고 선의 개수는 적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덩어리로 표현된 육중한 형상이 주는 어둡고 묵직한 감각에서 '선'과 '여백'이 빚어내는 적절한 긴장감과 균형의 미감에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 더해 완성된 입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인물로 보이는지, 그 인물로부터 유추되는 감정과 상황을 통해 어떻게 공감과 감동에 이르는가가 중요해졌다. 감상자는 힘들이지 않고 작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감상에 빠져들 수 있다. 종이위에 연필이나 붓으로 그리기에도 쉽지 않은 곡선의 자유로운 변주를 견고한 금속의 파이프로 구현했다는 사실에 대한 경탄도 함께한다. 구리라는 금속이 비교적 연성의 재질이라고는 하지만 자르고 구부리고 용접하고 고정하고 연마하고 도색하고 안정적으로 세우는 일에 있어 최종적으로 원하는 형(形)과 여백의 느낌을 만들기 위해 모든 단계는 빠짐없이 작가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규모가 작은 작품일수록 평면 드로잉 기법에서도 어려운 자연스러움과 밸런스가 아름답다. 헤아릴 수 없이 줄기찬 노동과 끈기로 일궈낸 작가의 역량 때문이다. 현재 작가는 물리적인 한계, 즉 작품의 크기와 관련해서도 그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수작업과정의 특성으로 인해 크기가 커지는 만큼 형태를 통한 섬세한 감성적 뉘앙스를 잡아내기 쉽지 않은데 작가는 작품의 규모를 크게 만들면서도 구체적 감성이 담긴 고유한 세계를 구현하는데 도전하고 있다. 더욱 더 큰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숭고미를 향한 추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그에 다다르길 기원한다.
작품에서 눈에 띠는 선(線)의 미감과 한 쌍인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작품은 지면이나 좌대 위에 수직으로 놓이기도 하고 부조처럼 벽에 부착되기도 한다. 향후 천장에서 늘어뜨리는 형식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입체 작품이라면 당연한 속성으로 모두 일정한 공간을 차지한다. 재료인 구리선 또한 규격의 차이가 있을 뿐 삼차원의 입체이고 일정한 두께 이상의 구리 파이프는 내부가 텅 비어 터널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구리선의 형태와 여백인 공간의 모양새에 따라 인물은 고독감, 다정함, 쓸쓸함 등의 정서를 불러온다. 작가는 구리선이라는 물질을 운용하여 상상의 여지를 주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가령 가로, 세로, 높이가 일정한 두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다른 한편에 커다란 돌 또는 나무 하나가 놓여있는 공간을 비교해 본다면 두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질(質)적인 측면은 커다란 차이를 보일 것임이 분명하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산 정상에 오르거나 수평선이 보이는 해변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와 창문 없는 작은 방이나 지하 공간, 혹은 아파트 단지 집안에 있을 때의 느낌이 서로 다른 것과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휴일에 자연을 접하러 도심을 떠나고, 할 수 있다면 넓고 넉넉한 주거지를 선호하는 것도 공간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이 발동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은 존재의 물리적인 근본 조건이면서 물리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면에까지 폭넓은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재홍 작가의 초기 인물 작업은 손가락마디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얇은 금속선으로 빽빽하게 뭉쳐져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일반적인 시야로 본다면 그 안에는 공간이라고 할 만한 여지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작품이 변화하면서 점차 밀도 높은 육체 안에 빛이 부서져 스며들 듯이 공간과 선들이 다양한 구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선의 생성과 선의 부재로 말미암아 공간이 조성되었다. 뭉쳐서 혼재되었던 감정과 이야기들이 갈피를 잡아 선 사이의 조화 즉 서사의 조화가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선들의 출처는 작가의 삶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일관된 참조 대상을 찾아보자면 작가가 애정 하는 '나무'라는 대상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은 인물을 중심으로 아주 적은 단서만 제시하는데 풍부한 느낌을 전달한다. 작품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마음껏 덧붙이거나 뻗어나갈 수 있다. 작가의 삶속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상념, 고민과 통찰, 성취와 후회 같은 것들이 구리선이라는 재료를 통해 육화되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나무들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개성과 정체성으로 온전히 실존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나무의 형태가 보여주는 조형적인 자연스러움은 모든 예술가들이 발뒤꿈치라도 부여잡고자 소망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안재홍 작가의 거대한 신작 [The Way, 2024]를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여여하다는 형용사가 떠올랐는데, '여여(與與)하다'는 말의 뜻을 찾아보니 국어사전에는 첫째, '초목이 무성하다'였고 두 번째로는 '위엄 있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도가 있다'였다. 그밖에 불교용어로써 '여여(如如)하다'는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의 상태'라고 하였다. 관련된 뜻 모두 안재홍 작가가 추구해 온 길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 작가는 한 그루 나무와 같이 비교불가 한 자신만의 공간을 아름답게 구축하는데 성공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 신혜영
Vol.20241109f | 안재홍展 / ANJAEHONG / 安在洪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