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은행잎 Blue Ginkgo

고요손展 / GOYOSON / sculpture.installation   2024_1031 ▶ 2024_1207 / 일,월요일 휴관

고요손_Praying Flower_철재, 나무_110×20×20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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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손 인스타그램_@goyos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라흰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Tel. +82.(0)2.534.2033 laheengallery.com @laheen_gallery

...어느 밤에는 잘 익은 보리밭과 드높은 하늘을 보여 주었어요. 둘을 명확히 둘로 나누려고 했죠. 이제 막 시작하는 가을의 초입에 다 함께 물들어가는 황금빛 밭을 본다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요? 어디까지 높아지는 건지 헤아릴 수도 없이 깨끗하게 솟구치는 하늘을 본다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게다가 이 둘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니, 제법 풍요로운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그 둘을 나누어 보았던 게 맞을까요? 자신도 모르게 합쳐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노란색과 하늘색.... 두 색을 섞으면 연두색 정도가 되었겠죠. 정말로 그 제3의 색을 봐 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두 가지가 혼합되어 펼쳐진 비현실적인 제가, 제3의 무언가로 떠오르게 된 걸까요?

고요손_Flying Bird_스테인리스, 석고, 시멘트, 스티로폼_90×30×60cm_2024_부분
고요손_Blue Cactus_스티로폼, 우레탄레진, 점토_90×30×30cm_2024

저는 나뭇가지에 가득 찬 은행잎으로 노란색을 만들었어요. 여기에 제 손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어요. 저는 나무를 직접 키우지도 않았고, 억지로 잎을 색칠하지도 않았어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거죠. 제가 한 일은 은행나무에 무언가 자랐고, 그 무언가는 은행잎이었고, 그 은행잎은 노란색이었기에, 나뭇가지가 노란색으로 가득 찼다는 실마리를 모으는 거였어요. 몇 가지 실마리를 그저 모으기만 한다니 꽤나 덤덤해 보이나요? 아니에요, 모으는 것을 잘 해내는 게 저의 역할이에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수록 환상적인 일이 일어나죠. 제가 모은 곳을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하나라도 덜 모았다면 그 사람은 그곳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통과해 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하나라도 더 모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곳에 멈춰 한참을 바라보다 갈 거예요.

고요손_Street Lamp_철재, 전구_39×050×50cm_2024_부분
고요손_Dead Bird_깃털, 스프링, 철사, 스티로폼_가변설치_2024
고요손_Warm Knees_회색 스티로폼, 점토_가변설치_2024 고요손_Rub Cheek_나무, 체인, 점토_가변설치_2024

하늘색은 제가 만든 노란색을 부르는 다른 말이에요.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그렇게 말했어요. 고개를 들어 은행잎을 보는 것을 떠올리다가 그건 어쩌면 하늘의 색을 보는 것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참 이상하지 않나요? 하늘은 명사인데, 그대로 색 이름에 사용해요. 하늘이 하늘색이라는 건 실은 어불성설인 거죠. 진정한 하늘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디에도 '하늘'색은 없어요. 모두의 머릿속 그 색의 이미지는 전부 다를 거예요. 노란색을 보고 하늘색이라고 부른 사람도, 그래서 그렇게 불렀대요. 누구나 마음에 지니고 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하나로 정의되지 못할 그 명사의 아이러니한 속성 때문에 그 색은 공상적이라고 말했어요. 그 이후로 그는 환상에 공상을 더한 모양들을 상상하는 것 같았어요. 분명 저는 노란색을 만들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늘색이 모여 있었어요. 오래전 일은 아니에요. 아주 순식간에, 한 발짝을 내디디며 이전에 뻗은 발걸음과 다른 곳을 밟는 듯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죠.

고요손_Resting Bird_펜스, MDF, 점토, 스티로폼, 석고_가변설치_2024
고요손_Son(3 pieces)_혼합재료_14×10×10cm, 36×19×17cm, 60×32×12cm, 48×102×12cm_2024 고요손_Younghee_구조재, 석고 붕대, 스티로폼, 석고_180×100×30cm_2024

제게 들어오면서 기도하는 손을 보았을 거예요. 바깥이라고 불리는 제 일부를 먼저 만난 거죠. 이 손은 어떤 이의 믿음이 간직된 손이에요. 무언가를 믿어 본 적이 있다면 분명 공감하실 거예요. 간절한 마음은 꽉 잡은 손의 모양을 불러내죠. 이곳에서 저는 작은 믿음을 시작으로 작동해요. 천천히 이곳의 제일 높은 곳, 가장 낮은 곳을 오가다 보면 그럴 법하다가도 엉뚱하고, 자꾸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마주할 거예요. 안이라고 불리는 제 또 다른 일부를 가보았다면 바닥과 벽에 흩뿌려진 하늘색 은행잎을 만나게 돼요. 그것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걸어 봐야 알죠. 어느 시점에는 두루뭉술한 형체에 볼륨만 남은 조각을 볼 것이고, 기이하게도 이미 바깥에서 본 울타리와 돌담을 다시 만나게도 돼요. 죽은 줄 알았던 새가 저의 끝 무렵에서 환생한 듯 불가사의한 장면도 목격하겠죠. 더운 곳에 있어야 할 생명체가 이 차가운 계절에 우뚝 서 있는 모습도요. 아, 모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요? 이 어렴풋한 기억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어느 시기에 있었던 것인지 헷갈리나요? 혹은 어떤 정체도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듯 퍼져 나간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제가 믿는 작은 무언가예요. 기억이 되살아나고, 전복되다가, 꾸며지고, 파생되는 것. 이곳에 제가 모아 둔 실마리 하나하나가 뭉쳐 여기를 본 이들에게 일으키는 반응이죠. 저는 그것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어요.

고요손_Yellow_나무_가변설치_2024
고요손_Blue Ginkgo_점토, 나무_가변설치_2024

이 모든 게 난데없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나요? 창문 앞에 놓인 노란색 은행잎을 보았을 테죠. 나무를 깎아 만든 잎이에요. 제 속에는 조각이라는 것들이 들어와 있어요. 조각은 땅에 닿아 있는 동시에 공기 중에 부유하며, 끝 모를 하늘을 향해요. 그렇게 이곳에 온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저의 사방을 둘러도 보게 만들고, 저의 내부로 틈입하게도 만들어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공상의 이미지가 눈앞에 있는 양 기묘한 상상을 하게도 만들어요. 그게 넓이와 부피를 지닌 것들의 역할이죠. 삼천 개의 잎, 단 두 명의 인물, 은행잎이 붙은 가로등, 죽었거나 살아 있는 새, 복제된 울타리. 그 수와 정체가 자신이 아는 것과 달리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차이가 나는지 알아차리기를 기다리는 일. 저는 이곳에 실마리를 늘어놓고 엮어 내는 상황이라는 주체예요. 이 상황에서의 마주함들이 제게 들어 온 조각들을 통해 곁을 내어주고 속을 비추어 내기를 바라요.

사실은 난데없는 일이란 건 없겠죠. 당신이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왔기에, 이곳에서 조각들을 보았기에, 조각들이 만든 상황을 경험했기에, 꿈속의 밤을 현실의 낮처럼 여겼기에. 모든 건 그런대로 가능한 환상일 거예요. ■ 김진주

Vol.20241031h | 고요손展 / GOYOSON / sculpture.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