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번져가는 시간

Time Flowing and Spreading

최인엽展 / CHOIINYUB / 崔牣熀 / painting   2024_1031 ▶ 2024_1112 / 11월5일 휴관

최인엽_낭만-혹은 겉으로 드러나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89.4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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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엽 홈페이지_inyubchoi.com 인스타그램_@yubyub17

초대일시 / 2024_1031_목요일

후원 / 강원특별자치도_강원문화재단 주최,기획 / 최인엽

관람시간 / 01:00pm~07:00pm / 11월5일 휴관

래빗앤타이거 갤러리 Rabbit and Tiger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세검정로1길 46 1층 www.rabbitandtigergallery.com @rabbitandtigergallery

시간 조각을 꿰는 백색 우주 ● 오랜만에 최인엽의 작업실에 방문했다. 불규칙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을지로 옛 건물 4층 위에 자리 잡은 열네 평 남짓의 방. 입구를 들어서니 맞은편 갓 유리창을 타넘어 들어오는 밝은 빛이 오래된 흰 벽을 때리면서 반사되어, 온화한 화이트로 온 눈을 휘감는다. 눈이 차츰 공간에 익숙해지면, 곧 작가의 손에서부터 섬세하게 번져 나와 용암 대지처럼 흘러 쌓인 절묘한 색감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형상이란 오묘해서, 흘러내린 점도를 잊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산뜻했다. 그 사이사이에 최인엽 특유의 신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드로잉의 잔영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찾은 이곳은 마치 지직지직 옛 라디오로 재생하는 화사한 봄과 같았다. 이 크림빛 화사함이 선선하게 감도는 작가의 요람에서 이번 전시에 관해 담소를 나누다가, 나의 귀를 번쩍 뜨게 하는 마법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저는 하양이 편안합니다." 그리고서 곧바로 나의 눈에, 그의 작품 세계가 하양! 즉 백색을 중심으로 스르르 재편되었다.

최인엽_그 시간은 흘러가고 계속된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307.7cm_2024
최인엽_마주하는 마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실_17.9×25.8cm_2024
최인엽_흐르다 생생해지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실_25.8×17.9cm_2024

2022년 봄에 발표한 『거울 속 원더랜드』부터 최근 2년간, 작가는 회화 속 '우연과 재발견'을 색채를 통해 영리하게 구현해 왔다. 그 때문에 언뜻 보면 화폭의 주인이 색채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의 오랜 주제는 바로 드로잉이었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그가 천착해 왔던 것은, 신체 감각에 뿌리를 두고 지면(紙面) 위에서 펼치는 움직임의 자유로움이다. 이 '움직이는 드로잉'이 지난 전시 『크레센도 유니버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전환의 국면을 맞이했다. ● 유니버스! 독일어로 우니베줌(Universum). 작가가 생각하는 우주란, 마치 밤하늘과 같은 풍경화적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흐름과 멈춤 사이에서 수많은 사건의 갈래로 분열하는 시공의 섭리를 말한다. 따라서 작가가 구사한 화면은 사분오열하며 확장(Crescendo)하는 우주의 경로 위에 놓여있는 한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움직이는 드로잉'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버린 화면이자 시간 조각을, 한 가닥 선으로 꿰어내어 다시금 하나의 새로운 화면으로 엮어내는 행위로서 거듭난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의 신작 『그 시간은 흘러가고 계속된다』에서는, 그 이전 시기의 작품 『계절의 시선』이나 『녹아버린 마음은 흘러가고』에서 확인된 '빙산 또는 날개를 연상시키는 하얀 색덩어리'와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보라색 계열과 노란색 계열의 번짐들 또한 익숙하다. 우주 속 서로 다른 지점에 멈춰있는 과거의 화면들을, 작가는 그때그때의 우연한 감각과 생각의 기반 위에서 새롭게 꿰어낸다. 우리는 이렇게 작가가 구사하는 이 '시간 조각을 꿰는 드로잉'에서, 크레센도하는 갈림길의 연결 법칙을 초월하며 그 어떤 인과율의 중력에도 갇혀있지 않는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¹⁾바루나의 끈을 해방하는 인드라처럼, 드로잉이란 예술적 결박으로 행하는 창조적 해박(解縛)이라고도 느껴진다.

최인엽_공유된 시간은 뾰족뾰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24
최인엽_흐르고 멈추고 다시흐르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실_25.8×17.9cm_2024
최인엽_눈이 멀어 벌어진 일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실_25.8×17.9cm_2024

한편, 이번 전시에서 또한 『크레센도 유니버스』에 이어서, 작가의 작업실을 닮은 화폭 안의 백색 영토를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최인엽에게 하얀색이란 움직임의 반대편, 즉 아직 드로잉 되지 않은 영역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수렴과 해방이 함께 일어나는 곳으로, 우주에서 꿰어진 드로잉이 발현되는 곳이자 동시에 그 완성 후에도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준비되어야만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크레센도의 우주를 바라보며 홀로 서 있는 이 하얀 영토 또한 우주만큼 무한하다. ●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서 또 다른 우연이 꿈틀대는 새로운 질감의 백색 영토를 마련하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이것은 이미 이전 전시에서도 천과 솜을 활용하여 시도한 바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야심 차게 공들인 도자기 드로잉과 반투명 비단 위에 구현한 흰 선 드로잉이 준비되어 있다. '흘러 번져감'이란 지금까지 작가가 구사한 드로잉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드로잉이 발현되는 이 지면(地面) 또한 흘러 번져가면서 드넓은 백색 우주로 팽창하고 있다.

이제 작가는 흐름과 멈춤의 우주 사이를 다니며, '시간을 꿰는 드로잉'과 다시 그곳에서 나아감의 반복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호흡 - ²⁾에르고숨(ergo sum)을 지속한다. 우리는 이번 전시 『흘러 번져가는 시간』에서 이 수행의 무르익은 잔존을 볼 것이다. ■ NONC

¹⁾ 힌두교에 나오는 창조신, 루마니아의 종교현상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그의 저서 『이미지와 상징』에서 고대의 신들을 언급하면서 결박과 해박(解縛)의 양가성에 대해 다룬다. ²⁾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말에서 가져왔다.

Vol.20241031f | 최인엽展 / CHOIINYUB / 崔牣熀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