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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희 홈페이지_www.eunheej.com 인스타그램_@jeon_eunhee_dal
초대일시 / 2024_1029_화요일_05:00pm
기획 / 아트아카이브리드모어 협력 / 멜팅포트 디자인 / 스팟서울 북스튜디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아카이브리드모어 AARM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70 영화빌딩1층 Tel. +82.(0)2.322.0888 @aarm_official
검고도 흰 ● 거친 싸리 눈 같은 회색 모래더미들 위로 육중한 쇳덩어리가 충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파편들은 과거에 그랬듯 낮은 울타리를 부수고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우리는 길 없는 동굴속으로 직진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경고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길 없는 동굴속으로 ● 쓰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물을 모으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버릴 수도 없는 과거처럼 내 살갗에 붙어 있다. 수집된 사물 중에는 내가 갈 수 없는 장소의 사진들도 포함된다. 십 오 년 전 죽은 어린 아들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시작으로, 수집하는 습관은 이젠 점점 의무감 속에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죄책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나 그 사진을 토대로 울음을 참아내며 작업을 해야 했던 고통이, 알 수 없는 어떤 의무감이 나를 살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들을 통해 본 세상은 다른 이들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 나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다른 이의 몫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삶을 드러내고 기억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 확실한 명분은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한다. 이후로 수집된 사진들은 매번 같은 사진처럼 오버랩 되는 장면들로 계속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나의 의식은 지난 전시의 제목처럼 무심한 관람자였고, 나약한 몸짓과 침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면의 불안이 몸 전체를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무거운 의무가 나를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어두운 풍경들은 더 쌓여만 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수없이 많은 기록될 풍경들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뿜어내고 터트려야 할 그림자들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 다녔다. 아니 내가 도망치면서도 그 풍경들을 따라 다닌 것일지도 모른다. 풍경이 안고 있는 이야기의 감정들을 쏟아내야만 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 과거에서 다시 과거로 반복되는 풍경은 우리의 영혼을 바래게 만든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현장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은 직전의 일들이 떠오른다. 다른 기억으로 덮여진 일들은 차곡차곡 쌓여 오랜 시간 빛이 차단되고 색도 사라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제외된다. 인류의 반복된 욕망에 관한 오류는 사람들을 캄캄한 동굴로 안내한다. 소수의 견고한 이기심이 만들어낸 신념은 물에 뜬 검은 기름 같다. 그곳에는 길이 없다. ● 깊고 막다른 구석 어딘 가에는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려지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매일 몸에 자신을 증명할 이름을 써 놓는다. 그리곤 매일을 마지막날처럼 살아간다. 열 다섯해를 살면서 다섯번의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소년은 다른 이들처럼 ‘이름없는 무덤’에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선 죽은 엄마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름조차 갖질 못하고 언제 전기가 끊길지도 모르는 병원에 누워 가느다란 호스에 몸을 맡기고 있고, 까닭모를 사건으로 한 순간 마을 전체 사람들의 숨이 멎기도 한다. 무너진 것들의 더미 속에서 죽은 이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차마 떠올릴 수도 그릴 수도 없다. 내가 그리지 못한 얼굴은 그의 얼굴도, 그녀의 얼굴도, 또 다른 누구의 얼굴도 아닌 나와 우리의 얼굴이다. 아이의 부서진 몸을 부둥켜 안고 있는 아버지의 녹아 내린 마음과, 죽은 새끼 고래를 머리에 이고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은 검은 바다 그 자체다. 무엇도 담을 수 없이 모든 걸 쏟아낼 수 밖에 없는 부서진 그릇 같은 장면들은 슬프게도 반복된다. ● 항상 마주하던 이의 부재도, 갑자기 닥친 터전의 부서짐 같은 커다란 슬픔도 반복되면 일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는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린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숨쉬기도 힘든 장면들이 사소하다니! 공포스런 익숙함이 우리를 무디게 만든다. 너무 큰 슬픔은 망각이라는 현상으로 소멸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 되어버린 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경고를 하고 있다. 경고는 행위에 대해 조심하거나 삼가하도록 주의를 주는 것을 말한다. 또 규칙이나 규범을 어겼을 때 주는 벌칙을 뜻하기도 한다. 누군가 인간이 자신을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은 상상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정신의 한계가 빚어낸 미신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토록 나약한 우리는 어리석게도 세상을 계단식으로 바라본다. 모든 사람은 넓은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알처럼 비슷한 크기로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경고를 하고 누가 경고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 그 경고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이 생겨나고 주변의 사물들도 식어간다.
빛이 없는 동굴은 색을 담아내지 못한 흑백영화의 세트장처럼 보인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입구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빛은 결국 고요와 약간의 미세한 소음만 허락한다. 낮은 목소리의 메아리도 허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울음의 울림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어두운 동굴안에서 길을 잃었다. 조용히 사라져 간 것들에 관해 생각한다. 그리고 마모되어 가는 숨을 힘들게 쉬어 본다. ● 회색 모래더미도 검은 돌조각의 파편도 서럽듯 찬 눈의 물기가 스미기 시작하면 서서히 진해진다. 그리고 이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숨결 같은 바람에도 흩어지는 가벼운 눈이지만 내려 앉는 무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 세상으로 오는 눈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무겁다. 그 무거움은 하늘을 창백한 푸른 회색으로 만든다. 그리고 창백한 하늘에서는 커다란 눈이 오래도록 내린다. 3월이 지나도 푸른 싹 위로 눈이 내린다. ● 그렇게 세상은 평평해 진다. ■ 전은희
Vol.20241029g | 전은희展 / JEONEUNHEE / 田銀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