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ze Lens

전은희展 / JEONEUNHEE / 田銀姬 / painting   2023_0316 ▶ 2023_0428 / 일,월,공휴일 휴관

전은희_Haze lens-01_장지에 채색_117×91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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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희 홈페이지_www.eunheej.com

초대일시 / 2023_0316_목요일_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레이블갤러리 LABEL GALLERY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6길 31 (성수동2가 278-40번지) Tel. +82.(0)2.2272.0662 labelgallery.co.kr @label.gallery

전은희-호명되는 이름들 ● 전은희는 서울의 변두리, 오래되고 낡은 건축물의 피부를 수집해서 이를 재현하고 있다. 한지 위에 채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와 두툼한 질료적 마감에 의해 오브제성이 매우 강하게 감촉되고 있다. 그러한 실재성과 함께 변두리 서울의 후미진 산동네라는 장소에서 짙게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드리우고 있다. 여기서 색채/붓질은 특정 사물을 지시하거나 표현하는 동시에 모종의 심리적이며 시간성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 작가가 채집한 오래된 집들의 피부/벽에는 다양한 사물/이미지들이 무수히 서식하고 있다. 낡은 시멘트 위에 페인트칠이 얼룩져있거나 살아가면서 그때그때의 필요성에 따라 덧붙여진 여러 구조물, 다양한 낙서들과 문패, 우편함과 초인종 등이 가득하다. 소재가 워낙 재미있고 '쌔고' 텍스트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효과적인데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유연함과 그만큼의 다양함도 그에 비례해 더 비집고 들어섰으면 한다. ● 시간에 의해 문질러진 잔혹한 풍경, 또는 세월의 더께로 인해 눌려진 상처를 저마다의 얼굴로 치켜들고 있는 벽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가로막는다. 그 모든 것들은 개개인들의 삶/집이 만든 흔적이고 역사이며 부득이하게 살아남아 이룬 모든 상처들이고 이력이다. 그러나 그 세세한 생의 이력과 사연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알기 어렵다. 이때 허름하고 낡은 벽들과 그 주변의 여러 사물들의 상태, 그리고 문패에 새겨진 누군가의 이름은 그것을 연상시키고 환기시키는 매개, 통로가 되어 나와 타자를 은연중 접속시킨다. 한편 주소와 이름, 숫자와 문자들이 혼재된 표기는 행정구역상의 지시문이자 그림을 이루는 볼거리를 충족시키는 요소 모두를 아우르고 있기도 하다.

전은희_Haze lens-04_장지에 채색_117×91cm_2023
전은희_Haze lens-03_장지에 채색_117×91cm_2023
전은희_Haze lens-05_장지에 채색_117×91cm_2023
전은희_Haze lens-02_장지에 채색_117×91cm_2023

작가는 그 벽의 어느 한 부위를 줌으로 잡아당기듯 확대해 미시적인 시선에 의해 포착한 어느 부위를 다소 아련하게 안겨주는 것이다. 특히 문패가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다. 단독주택의 대문 옆에 부착된 한글/한문으로 쓰인, 집주인의 이름이 박힌 문패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어렵게 구한 집의 소유주들이 자랑스럽게, 훈장처럼 벽에 배치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주거환경이 편리한 아파트가 주택을 대신하면서 문패는 추억의 오브제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오늘날 문패는 도시에서 격렬하게 사라지는 중이다. 작가는 이 문패를 찾아나섰고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쓰고 있다. ● 이제는 몇십 년 전만 해도 까마득한 과거나 옛날이 되어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기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어느 곳은 과거의 풍경을 낯설게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재개발지역이나 산동네 등이 그런 곳이다. 신속히 사라지거나 교체되고 낯선 공간으로 변화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전은희가 그리고 있는 대상은 소멸과 사라짐에 대한 향수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현재에 대한 우울한 반향에 해당한다. 동시에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애를 다시 복기시켜줌으로써 타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유도한다. 저기 그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문패가 그이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그 이름은 그저 호명되는 문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죽여 불러봄으로써 그/그녀의 존재를, 타자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불러들인다. 그것은 사라지고 소멸되려는 것을 문득 막아선다. 오래되어 낡고 허물어지고 이런저런 생채기를 안고 있는 벽들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누군가의 생의 무게와 삶의 고단함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견고한 색층과 질감과 오랜 되새김과 같은 그리기의 겹침이 요구되는 것이 전은희의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 박영택

전은희_Haze lens-07_장지에 채색_91×73cm_2023
전은희_Haze lens-08_장지에 채색_91×73cm_2023
전은희_오래된 집-만석동_2023_장지에 채색_162×454cm_2023
전은희_Doorplate-04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Doorplate-01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Doorplate-02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사라지는 장면들 Disappearing scenes - 사라지는 모든 것은 이름이 있다.1. 길 위의 풍경은 시간만큼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온전한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다. 원형 그대로의 풍경은 왜곡되어 흩어지고, 잔상으로 남은 풍경과 사물은 안개처럼 흐려져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몸과 그것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흐려진 형상은 볼 때마다 조용한 침묵과 억지로 잊으라는 강제된 망각으로 가슴에 하얀 응어리를 만든다. 이번 전시는 잊혀져가는 존재들의 이름에 관해, 우리의 무의식이 멈춰버린, 흐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모두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스치는 풍경 속에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의 사라짐이 잠식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길을 따라 나는 한참을 걸어 다녔다.

전은희_어떤것들-02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어떤것들-01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어떤것들-03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2. 물의 주름에 일그러진 돌처럼 이름은 번지고, 희미해지고, 이제 서서히 사라진다. 공기의 움직임은 느리고, 존재의 기억도 천천히 소멸한다. 2022년 가을, 완전히 사라진 이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붉은 흙더미 아래로 잠긴 나의 발자취를 보았다. 10년 전 대단한 목적을 가진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흔하고 작은 서사를 발견하려는 나의 행위는 그로부터 몇 년간 이어졌고, 미로 같은 골목골목을 계절을 달리해 산책했다. 찬 공기에 시야가 흐려지기도 하고 비가 내리면 사물 전체가 흔들렸다. 존재 자체가 존재인 사물 – 문패는 숫자로 명명된 집과 함께 사라지고, 그 위를 거대한 덩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어떤 존재는 이렇게 소멸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평생 찍은 사진이, 매일 감정에 휘둘려 써 내려갔던 일기장이 어느 순간 불에 타 날아가 버린 것처럼 아픈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에게는 가끔은 잊지 못할 기억도 있지만 그 기억의 유효기간은 한정적이다. 망각위로 쌓이는 이야기는 다시 망각이 되고 또 다시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망각은 순환한다. 선명했던 것들이 흐릿한 기억으로 덮이고, 현재의 시간은 뿌연 창문 너머로 어두워진다. 필터를 끼고 풍경을 보거나 눈을 작게 뜨고 일부러 흐리게 보려는 시도는 풍경과 사물을 부서지게 한다. 미세한 분자가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산처럼 거대한 붉은 흙더미 안에 저장된 기억은 아직 살아 있다. 하나씩 꺼내 박제된 형상들의 시간을 그려본다. 모든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과거의 과거도, 현재의 현재도, 그리고 미래의 시간도 다시 과거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를 화면에 담고 싶은 생각에 과거의 작업과 현재의 작업에서 시간성을 포착한 작업에 관해 고민했고, 이번 작업에서 표현된 풍경의 시간 속에 남아있는 사물과 흔적을 또 다른 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전은희_Doorplate-03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Doorplate-05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Doorplate-07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전은희_Doorplate-03_장지에 채색_41×32cm_2023

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영화 『거울』을 개봉하고 사람들의 소중한 것들에 관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만든 영화가 영화 속 감춰지고 암호화된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그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들의 시선을 불편해 했다. 나의 작업에 대한 태도와 소재에 관한 이야기도 가끔은 이런 선상에 놓이곤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쉽게 이용하고 있다는 말을 나는 마음으로만 흘려듣고 또 떠나보내고 괜찮아져야 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서사를 통해 만들어진 생각을 바탕으로 숨어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정서적, 지적인 사고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물을, 주변의 풍경을, 그리고 어떤 현장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마치 시각 기능을 차단하는 간유리를 들여다 보 듯 자신만의 장막을 치고 주변을 평가한다. 기억하지 않으려는 풍경, 기억되지 않는 풍경, 보았으나 보지 못한 풍경, 알고 있지만 방관하거나 생각을 왜곡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흐린 유리 너머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형상처럼,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스치는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어수선한 움직임처럼 선택적인 생각과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어떤 태도들 또한 존중한다. 시각적인 시간의 속도와 빨리 사라지는 풍경, 왜곡되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 보이는 대로 보이는 사물의 느린 움직임은 여전히 만석동의 오래된 집처럼 변함없는 태도로 곤궁하지 않은 타인들의 삶을 계속 이야기하게 만든다. ■ 전은희

Vol.20230313d | 전은희展 / JEONEUNHEE / 田銀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