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하기 Intervening

임재광展 / RIMJAIKWANG / 林栽光 / painting   2024_1013 ▶ 2024_1020

임재광_20240614_채색한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60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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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광 페이스북_www.facebook.com/jaikwang.rim

초대일시 / 2024_1013_일요일_04:00pm

주최,주관 / 충청남도_충남문화관광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CN갤러리 CN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56-7 Tel. +82.(0)2.739.6405 cngallery.kr @cngallery_

생사(生死)의 오브제 또는 근대성에 개입하기"나에게 있어 작업은 '창조행위'가 아니라 '개입하기'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상에서 발견된 이미지들을 차용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을 해왔다. 돌이켜보면 작품활동 초기부터 그랬다. 일상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수집하고, 가공하는 것이 내 작업의 방법이었다. 물론 드로잉이나 페인팅은 기본적으로 하고있었지만 그것만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표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작가노트)

임재광_20240616_채색한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7×87cm_2024

오브제 아트의 발견 ● 임재광 작가는 헌물건을 구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칠하고 붙이고 재구성한다. 물건은 마치 신화 속 마술사나 연금술사의 손에서 탄생한 키메라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한다. 마치 연금술사의 작업을 닮았다. 눈과 손에서 유의미한 미적 감상과 해석의 대상이 탄생한다. 이름 없는 것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직관적으로 창의적이며 성실하다면 현대미술가들의 행위와 실천에 의해 형성되고 표현된 대상, 이미지들은 막 탄생했기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다중에게 공개하고 대화와 비평을 통해 이름을 부여한다. 이러한 독특한 활동이 작가의 일상이다.

임재광_2024051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8.2×290.9cm_2024

작가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오래도록 생활의 한 구석에 방치되고 폐기되어버린 사물을 발굴하고 다시 발견한 후 온전한 미적 대상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을 발견하는 행위이며 자신이 딛고 서있는 대지(세계)를 발견하는 행위이다. 모든 존재자는 대지 위에서 태어난다. 작가의 오브제와 이미지는 그것이 태어나고 발현되었을 순간을 재연하고, 소박하고 정결하고 그리고 쉼없이 감각을 일깨우고 견실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임재광_2024052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259.1cm_2024

작가의 관점과 작업은 지난 시기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작가는 서산에서 작업하던 1992년을 전후한 시기, 전통기법인 탁본(拓法, rubbing)에서 영감을 받고 초현실주의의 프로타주(frottage)와의 유사성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후 도미(渡美)한 후에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땅 캐스팅', '사물 캐스팅'을 시도하였고, 귀국 후 2008년을 전후한 시기 세종시 신도시 건설로 철거되는 폐가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박물관의 유물 전시대처럼 연출하였다. 이런 작업을 통해 버려지면 쓰레기지만 작가에 의해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 뒤샹의 레디메이드(변기)가 많은 현대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 다양하게 응용된 현대미술의 창작 방법이다.

임재광_20240824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지름 50cm_2024

작가는 '발견하기'를 '미술하기'로 이해하고 이후 발견하여 수집된 오브제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자신의 창작 개념을 강조해 왔다. 1) 작가는 2010년을 기점으로 발견, 수집, 개입, 간섭이라는 작업의 개념적 방향은 크게 선회한다. 작가는 페인팅, 마스킹테이프, 언어, 레이어, 색면추상 등을 다양하게 적용하면서 '회화의 재발견'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전 이공갤러리에서 있었던 개인전의 명제가 「회화의 발견」이었고 모든 작품이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평면 회화였다. 이 시기 다양한 기법적 실험을 동반하면서 전적으로 페인팅으로 회귀한다. 이후 2017년을 전후해 화면에서 공간성이 강조되었고, 2020년을 기점으로는 '공간'의 요소를 줄이고 채색이 강조되는 색면추상으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 작가는 몰개성적 표현을 통해 작가의 개인성을 제거해나갔다. 작가와 작품이 분명하게 분리되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몰개성의 제시는 '익명성'의 시대인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비평으로서의 미술을 떠올린다.

임재광_20240909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지름 50cm_2024

공명하는 작가들 ● 작가의 작업은 홀로 동떨어져 있는 고도(孤島)의 예술은 아니다. 2019년 작고한 성찬경 시인은 1950년대부터 일찍이 독특한 '오브제 아트'를 창작해왔다. 다만 그의 작업은 공식적으로 미술 전시로 거의 공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의 사후 유작전을 통해 비로소 우리 미술계에 알려졌다. 마치 고생물학자가 돌이 되어버린 죽은 사물에서 생생한 과거의 삶과 문화, 나아가 생동하는 생명현상까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처럼, 성찬경 시인은 버려진 물건들에서 한국전쟁 직후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가는 당대 한국인의 모습을, 인류의 한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유했던 것이다. 성찬경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활 한가운데에서 독특한 오브제 아트를 만들어냈다. 2)

임재광_20220414-1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지름 33cm_2022

성창경이 시적 언어에서 출발했다면 임재광은 현대미술가의 시선으로 나아간다. 임재광 작가의 오브제 아트 또한 성찬경 시인의 미적 감각(발상)과 연결해 볼 수 있다. 강단 미술사나 미학의 전통적인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과 길을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찬경도 임재광도 모두 뛰어난 인문학적 경험과 노련한 이론적 성찰을 체득해온 예술가들이다. 따라서 임재광 작가의 작업은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미적 가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표현의 쾌감과 미적 효과나 정서를 관통해 하나의 개념이며 하나의 가설의 구현으로서 '오브제'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고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단지 예술적 기교로서 키치나 패러디를 넘어서 한국인의 삶의 감각과 정서가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간다.

임재광_20240909-2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94×70×70cm_2024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일상의 소재를 오브제로 활용해 꼴라주 작업을 하는 주재환 선생의 작업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주재환 작가의 작업에서는 시적 또는 짧은 아포리즘과 이미지가 꼴라주되어 여유있는 독특한 사유에 바탕한 소박한 유머와 냉철한 사회와 일상의 비평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임재광 작가의 넓은 스팩트럼의 주제와 소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작업은 이러한 작업과 조응한다. 두 작가 모두에게서 반복해서 부처와 보살의 시선이 교차한다. 물질적 욕망과 소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시도가 공감을 낳는다. 또한 다양한 일상의 사물을 팝적으로 다뤄온 최정화의 작업과도 비교할 수 있다. 최정화 작가가 경쾌한 감각으로 무한분열하듯 기성의 물건을 조합해가는 반면에 임재광 작가는 보다 진중하고 우직하게 현대미술의 전형성을 고수하려고 한다.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경험을 이어간다. 3) 그러나 두 작가가 모두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작업에서 한국성이 어떻게 세계미술과 연결되고 상호 조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임재광_20240909-1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92×70×70cm_2024

다른 한편 매 순간 버려지는 일상의 물건을 수집해 드로잉과 오브제를 제작하는 윤진섭 작가의 작업과도 비견해 볼 수 있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이벤트, 퍼포먼스, 행위미술 등 다양한 이름의 실험미술에 작가로 참여하였고 전시기획과 비평활동으로 그 영역을 넓혀온 윤진섭 작가의 활동은 임재광 작가의 활동과 오버랩된다. 두 작가는 모두 한국미술평론가 협회의 중심적인 평론가로 교분을 나누었고 또한 다양한 협업을 수행해왔다.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 예술과 일상, 작품 활동과 비평활동의 복잡한 교차로를 만들고 현대미술가의 활동의 스팩트럼의 확장과 심화에 분명한 기록을 만들어 왔다. ● 그밖에 낡은 거울을 수집해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이열, 일상의 오브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조직하는 이완 등 많은 작가들이 오브제를 재해석하며 '발견된 오브제'의 개념을 적극 창작에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실험과 모색을 통해 일상의 내용과 형식을 풍부하게 만들고, 오늘날 현대미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미술평론가와 현대미술작가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만들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임재광 작가는 우리 미술계의 현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창작활동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임재광_202309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291cm_2023

발견, 수집, 개입하기 ● "...색면추상은 몰개성적이고 기계적이며 원색적인 현대의 문명적 채색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세월의 손때가 묻은 오브제와 몰개성적이고 기계적인 화려한 색채와 대비되어 예기치 않은 시각적 충돌이 발생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대비는 시간과 역사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발견자이며 수집가이고 참여자다."_작가 노트 ● 임재광 작가는 오랫동안 오랫동안 미술평론과 미술교육에 헌신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작가 임재광 보다는 대학교수 또는 미술평론가 임재광이 익숙했다. 그러나 임재광 작가는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지속해왔고 손을 놓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교직과 평론활동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가장 내적이며 특별한 활동으로서 창작을 해왔다. 다만 상대적으로 전시가 적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도 우리는 임재광 작가가 오랫동안 홀로 고투해온 다양한 사유와 창작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이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개인의 감각과 사유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활동을 통해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시도해왔다. 이번 개인전은 그 노력과 시간의 결과이다. 한 시기를 종료하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임재광_20211108(화천대유)_나무상자에 아크릴채색_31×38×6cm_2021

앞서 인용한 작가노트는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시각과 태도를 보여준다. 작품활동이 창작이라 명명되면서 인간이 신의 '창조'를 모방하거나 그것에 거의 근접할 수 있다는 오래된 관념에 대해 작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외형이나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일종의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구조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창작'이 아니라 '개입'이라는 기본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입은 어떤 현상에 인위적 변수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활동이 처음부터 '개입하기'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잠재했다고 볼 수는 있는데, 지난 시기 작가 창작 활동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개입하기'가 갑작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창작활동 과정에 쌓여온 성찰적 사유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임재광_20210803_나무상자에 아크릴채색_35.5×50×11cm_2021

임재광 작가의 창작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작가의 예민하면서도 직관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오랜 기간 현역 미술평론가로 활동한 경험과 미술 이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한 명쾌한 언어적 해석과 규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장점이지만 동시에 작품 해석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언어화 영역이 적을수록 작가의 작업에 대해 더 다양한 감상과 해석의 스팩트럼이 넓어지지 않을까? 작가 자신이 작가노트에서 개인사의 명료한 증언이야말로 이론의 여지 없는 투명하고 확고한 이해의 지평을 제공하지만, 작품을 비평하는 명쾌한 개념화와 설명이 자기 자신에게도 돌려졌을 때에는 매우 미묘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기성 미술이론이나 개념으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창작 활동에 있어서는 더 많은 해석 불가능의 영역이 존재할 것이다. 명료함보다는 불명료함과 모호함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미답의 영역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감각과 경험이라면 공중(公衆)의 공감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임재광_20210730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39×52cm_2021

오브제와 세계의 지도 만들기 ● 오브제는 반드시 선별된다. 그리고 그 선별 과정에는 반드시 우연한 만남 또는 사건이 관계한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시간, 장소에서 어떤 쓸모를 위해 누군가가 제작한 것들이다. 연원을 알 수 없는 것들과 작가가 우연에 우연을 거쳐 조우한 것이다. 작가가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부여하고 하나의 예술적 맥락에 자리를 부여하는 행위에는 필연과 우연이 혼재되고 혼융되어 작용한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이해하고 설명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구체화하고 규명해낼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배경으로 작가의 이번 전시는 새롭게 해석해 오브제를 변용해낸다. ● 그의 오브제 아트는 물건에 작가만의 방식으로 칼라링을 하는데, 대채로 기하학적 추상의 조형 언어를 선택한다. 다종다양한 일상성을 함유하고 있는 물건들에 특유의 개별성과 개성을 부여하는데 추상의 조형언어는 풍부한 미적 효과를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과거에 형성된 사물과 오브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여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해 또 다른 조형성을 지닌 오브제로 생성시킨다. 민예품이라 불리는 근대적 문화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물건에 깊은 향수를 갖고 매료되어 있다. '근대성에 개입하기'라고 확장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근대성이라는 세계를 탐색하는 지도를 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내 몸에 세계를 그려 주세요." 사우스 다코타 인디언들의 전승 민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야 한다. 나 자신이 어렵다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더 큰 존재에게 의존한다. 우리는 작가의 행위를 나의 몸과 너의 몸, 일상과 비일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세계를 그리는 과정이지 않을까. 모두가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 김노암

* 각주 1) 누가 만들다 말았는지 모르는 거친 나무 불상이 작가의 손에 채색된다. 꽃들이 그려진 둥근 오브제도 변형된다. 작가 특유의 '개입하기'의 방식의 작업들이다. 80년대 이후 국내 미술계에 붐을 이루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영향으로 대량 생산된 이미지나 오브제를 재해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스미디어의 영향관계 속에서 비판적 상품 미학을 통해 키치와 팝의 형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창작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2) 쓸모가 다해 폐기된 물건들의 가치를 재부여하고 모든 것이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 생성하고 사멸하고 다시 불활하는 과정으로 해석해 새로운 형태와 가치를 부여하는 오브제로. 시인은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물건들을 자식처럼 자신이 입양해 키우고 미적 대상으로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고아된 물건을 돌보는 고아원 원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톡특한 발상과 미적 감각이 시인의 세계관과 혼합되어 기상천외한 오브제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3) 그러나 서구문화에서 다다가 품고 있는 문명에 대한 환멸과 허무주의가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는 거의 없다고 보인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성숙과 발전의 경험을 쌓아왔다. 따라서 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며 심지어 낙천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윤진섭 등의 앞선 실험미술가들의 태도와 활동에서 어떠한 허무주의도 감지할 수 없다. 백남준의 경우도 허무주의를 발견할 수 없다.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고 생을 긍정한다.

Vol.20241013b | 임재광展 / RIMJAIKWANG / 林栽光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