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정원, 낙원을 거닐다

영은미술관은 모든 동식물이 잠드는 계절이 다가오기 전 가을을 맞이하여 전시장에 세상의 모든 색들을 담은 작품들로 가득 채워 관람자들에게 예술의 풍성함을 전달하고자 한다. 사랑과 꽃이 가득했던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경화 작가는 꽃을 작품의 매개체로 삼아 오직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색을 작가만의 예술적 언어로 가감 없이 표현한다.

김경화_고운 기억은 일어서게 한다 Beautiful memory wakes me up_ 리넨에 유채_130.3×324cm_2019

김경화_빛으로 들어온 사랑 Light embraces love_ 리넨에 유채_130.3×324cm_2019

계절에 의지하여 피었다가 사라지는 자연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화폭에 담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시들지 않은 꽃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전통적인 소재가 일차원적으로 읽히지 않도록 작가는 붓질에 한땀한땀 노력을 기울여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투박하지만 빠른 필치로 느려진 물감의 터치는 화려한 색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현대적 미감을 작품 안에 녹여냈다. 자연의 결들을 평면적으로 그려낸 방법 또한 그 어떠한 부분도 소외되지 않길 바라는 작가의 미적 철학을 반영한다.

김경화_나의 길 그리고 나의 삶 my path, my life_ 리넨에 유채_521.2×972cm_2024

김경화 작가의 그림은 통상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정물화가 아니다. 중세 이후 알려진 정물화(靜物, still-life)는 해골, 꽃병, 커튼 등이 등장하여 사물이 가진 유한성과 허무함을 세밀한 붓필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며 회의(懷疑)의 단면을 비춘다. 이에 반해, 작가가 묘사한 꽃, 찻잔, 그리고 이것들이 한데 모여진 작업실은 차분하고도 희망찬 분위기를 보여준다. 각각 대상이 사진 고유의 색을 표현하는 방법도 섬세하게 설계되어 모든 색들은 화합하듯이 약간의 충돌도 없이 전체가 조화롭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어디서든 눈에 띄는 작가의 예술세계는 관람자를 작품 안으로 이끄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따스한 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김경화_꽃밭에서... In the flower garden_ 리넨에 유채_53×45.5cm×20_2024

이번 전시에서 가장 특별한 부분은 24점으로 이루어진 대작 「나의 길 그리고 나의 삶」(2024)이다. 제 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벽면 전체를 안정적으로 채운 작품은 24라는 숫자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듯 작가의 인생과 서사를 은유하고 있다. 화폭 안에 흐릿하게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과 커튼처럼 양쪽 끝을 장식하는 나무와 꽃,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테이블과 의자가 중앙에 위치한다. 작가는 나폴레옹의 인생을 3단계의 의자로 비유한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려지지 않은 나머지 1개의 의자는 작품의 건너편에 서 있는 우리의 인생을 상징한다. 이로써 전시장에 초대된 모든 이들도 작품을 통해서 삶을 되돌아보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일화들이 언젠가 열매를 맺고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깊게 잠자고 있던 꿈과 희망을 일깨우기를 소원한다.

김경화_꽃의 정원_낙원을 거닐다展_영은미술관 제3전시장_2024

김경화_꽃의 정원_낙원을 거닐다展_영은미술관 제3전시장_2024

"조형적으로 볼 때 김경화의 작품은 밝고 화려하게 보인다. 밝은 원색과 약간의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화병 속에서 분출하듯이 전개되는 꽃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은유적 표현인 것처럼 생명력과 아름다움 떠올리게 해주고 있으며, 다가가서 보았을 때 꽃잎 하나하나는 부드럽게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색채에 있어서도 화면은 물감의 혼색이 많지 않음으로써 채도가 높고 화사한 느낌을 주며 생명력을 담은 꽃들의 모습과 색채가 전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보는 사람들에게 기쁨, 치유, 희망을 전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대형 화면 속에 꽃들과 함께 표현되는 그 주변의 과일, 책, 찻잔 등의 소품들은 이 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주체로서 작가의 존재를 감지하게 해준다. 이번 출품작들 가운데 100호 캔버스가 여러 점 연결된 대형 파노라마 화면을 보여주는 「나의 가는 길은」(2021)과 「정금 같이 되리라」(2021) 등의 작품은 작가의 주요 모티브인 꽃이 놓인 작업실의 사적 공간에 관람객들의 시선을 초대하고 있다." (하계훈(미술평론가)의 '희망과 치유의 꽃' 중에서) ■ 영은미술관

Vol.20241009d | 김경화展 / KIMKYUNGHWA / 金景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