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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B1 4관 Tel. +82.(0)2.735.3367 www.galleryh.online blog.naver.com/gallhi @hongik_uaa
조민숙-거즈로 채워 놓은 기억의 지층 ● 조르주 바타유에 따르면 물질은 담론적인 범주나 체계적인 사유, 또는 시적인 치환 그 어떤 것으로도 틀 지을 수 없는 것이며, 이미지의 숭고화 기능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반칙을 통해 이미지의 힘을 빼앗는다. 그는 물질을 복원시키고자 했고 물질의 비정형 속에서 어떤 질서를, 이미지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물질이 형태에 종속되거나 이미 주어진 선험적인 체계 안에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을 모색했다. 사물은 흔히 형태와 재료로 구분된다. 현대미술 이전에는 둘의 위계 속에서 재료/물질은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비천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반면 바타유는 이 자의적 구별을 없애고 원래 하나였던 물질의 상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즉 물질은 정신으로부터 형태를 빌려 입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고, 그 자체로서 형태를 산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로인해 현대미술은 물감의 반죽만으로도 그림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물감 이외의 다른 물질들이 화면으로 호출되어 그림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림을 이루는 다양한 질료만으로도 회화는 가능하며 이 비정형의 비확실성을 지닌 물질들이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그려나가게 되었다.
조민숙의 근작은 거즈와 솜, 그리고 실이라는 물질이 회화의 전통적인 매체인 물감과 붓질을 대신하고 있다. 작가는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과 시신을 염하는 과정 등에 착안해 그러한 물질을 선택해서 다루고 있다. 캔버스 표면 위로 얇고 투명한 거즈가 여러 겹으로 올라오거나 솜뭉치를 내재한 사각형의 형태들이 그 위에 부착되어 있는 형국인데 눈부시게 흰 거즈들이 밀집되어 이룬 독특한 표면은 섬유로 이루어진 회화이자 저부조의 촉각적인 피부를 형성하고 있다. 여러 조각의 거즈들이 콜라주 된 화면은 비정형의 사각형들이 겹쳐 올라오면서 이룬 레이어를 형성한다. 부분적으로 착색되거나 석고 거즈와 결합해 이룬 각각의 사각형 꼴을 지닌 거즈는 작가의 기억이나 회상, 혹은 감정의 물질화이고 그것들은 듬성듬성 이루어진 바느질에 의해 화면에 간절하게 매달려있다. 박혀있다.
이 작업은 일종의 부드러운 조각적 작업, 촉각적인 회화에 해당하기도 하고 일상의 오브제(거즈, 천)를 활용한 회화작업이자 일반적인 회화적 수단 대신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재료/물질 자체를 활용한 작업에 해당한다. 거즈는 상처를 치유하거나 감싸는 한편 보호와 위무 등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것은 주검을 감싸는 것이자 은밀한 은폐와 억압 등을 떠올려준다. 이 물질들은 생과 사,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간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상흔을 보듬고 이를 치유하듯이 거즈를 이용해 화면을 여러 겹으로 감싼다. 희미한 형태를 암시적으로 지닌 거즈로 이루어진 면들은 흰색 실로 화면에 박혀있는데 이는 마치 실로 드로잉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박음질 선이 보여주는 경로를 통해 관객들은 모종의 형태를 따라가 보기도 한다. 그러면 인물의 실루엣을 안겨주기도 하고 달, 치마, 집과 땅들의 여러 형상들이 떠오른다. 작가는 자신의 추억과 회상의 이미지를 아련하고 쓸쓸하게 이 흰색 거즈 위로 호명한다. 부드러운 질감과 눈부신 백색의 피부를 지닌 거즈(천과 석고 거즈 등)는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와 회환을, 사라진 시간에 대한 슬픔의 밀도를, 우울한 감정을 보듬어주는 두툼한 정신적 위안을,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대리한다. 거즈와 석고, 실과 천들이 집적되어 이룬 조민숙의 오브제 회화, 저부조의 작업은 물질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발화하게 하는 모종의 신비한 힘에 겨냥되어 있다. ■ 박영택
Vol.20241009c | 조민숙展 / CHOMINSOOK / 趙敏淑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