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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정(정수모) 페이스북_www.facebook.com/twinjjj
초대일시 / 2024_0829_목요일_05: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2024년 원로예술지원 선정 프로젝트
관람시간 / 09:30am~05:00pm
세종뮤지엄갤러리 Sejong Museum Gallery 서울 광진구 능동로 209 세종대학교 대양AI센터 B2 2관 Tel. +82.(0)2.3408.4164 blog.naver.com/sejonggallery @sejong_museum_gallery
연금술사 펼쳐 보이는 신비의 세계 - 폴 정의 그림들을 둘러보며 ● 폴 정의 예술은, 평면 회화이거나 입체 조형미술이거나 모두 신비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태초의 세상을 보는 듯한 그의 설치미술 작품들,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한 대지를 펼쳐 보이는 그림들, 오래된 프레스코 벽화 같은 그림들이 하나같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풍경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외감을 가지고 그의 작품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 그런데, 그가 펼쳐내는 이 신비한 풍경들은 친숙한 데가 있다. 말하자면 충분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꿈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무의식의 잔상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화폭 위의 세계는 낯설고 기상천외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의 익숙한 장면들의 편린들을 펼쳐놓고 있다.
얼핏 보면 그의 그림들은 추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엄격한 구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이 다른 구상화 화가들의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대신, 눈을 감았을 때 들리는 소리와 느낌과 잔상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들리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을 화폭에 담으려 한다는 점이 폴 정의 독보적인 예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데 일생을 바치고 있는 것 같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부터 안셀름 키퍼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여하히 잘 그려내느냐 하는 문제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소명(召命)에 충실하기 위하여 소년시절부터 화가들은 수많은 뎃생을 했던지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tel quel) 그려내는 것, 그것은 예술의 오랜 과제였다. 이러한 명제는 현대회화에 와서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보는 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폴 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귀에 들리는 것, 눈을 감았을 때 느껴지는 것을 그리고 있다.
폴 정의 예술작품들은 시적(詩的)이다. 그의 작품들은 이제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태고의 서사시 소절처럼 느껴진다. 「바람-기억의 소리」시리즈의 작품들은 쓸쓸한 서정시를 읽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 전시하는 「신화-기억의 소리」시리즈의 작품들 또한 보다 깊이 있는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시들을 읽는 것 같다. ● 사실 그의 작품들은 시적 운율을 가지고 있다. 「바람-기억의 소리」의 그 춤추는 듯한 선들이나 「신화-기억의 소리」의 색의 농담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시의 운율과 다르지 않다. 수많은 선들과 농담을 달리하는 색들이 율동을 하듯 화폭 위에 펼쳐지면서 신비롭기 그지없는 풍경을 펼쳐내고 있으니, 그는 가이 연금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미술은 전혀 현란하지가 않다. 선과 색이 엄격한 내재율에 따라 절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격조를 느끼게 한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폴 정의 작업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작업대 위에는 온통 춤추는 듯한 검은 선들로 이루어진 그림들이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그 절제되고 엄격한 작품들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왜 색을 쓰는 것에 이렇게 인색합니까?" ●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가 왜 이토록 색을 억제하는가 하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색은 진실을 덮어버릴 수도 있고, 대상을 가볍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다소 짖궂게 계속했다.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색에 의지해요. 색이 없으면 불안을 느껴요."
그때서야 폴 정은 빙그레 웃으며 "내가 너무 인색했나요?" 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색이 억제된 폴 정의 그림들이 좋았다. ● 지난 5월에 나는 인천에서 열린 폴 정의 개인전 「신화-기억의 소리」를 보기 위하여 인천까지 갔다. 전시장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 그는 귓속말을 하듯 나에게 말했다. "접때 하 선생님이 색에 너무 인색하다고 해서 이번에는 색을 많이 썼어요." ● 전시장에 들어선 나는 500호 짜리 거대한 그림 앞에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페허 속에 묻혀 있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색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색 또한 절제되어 있었다. 그 절제된 색은 수많은 디테일들을 만들어내면서 쉰 목소리로 장엄한 서사시를 낭송하는 것 같았다. ● 나는 이 고결한 예술가, 신비한 연금술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 하일지
Vol.20240828c | 폴 정(정수모)展 / Paul Jeong / 鄭洙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