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Night and Day

임장순展 / IMJANGSOON / 任章淳 / painting   2024_0627 ▶ 2024_0707 / 월요일 휴관

임장순_1994년 10월 26일 (유람선참사사망 25·실종 4명)_한지에 연필, 먹_162.3×130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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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순 인스타그램_@imjangsoon_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kumhomuseumofart

기록과 기억의 우의물(寓意物), 임장순의 '신문' ● '신문(新聞, newspaper)'이란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사실이나 해설을 널리 신속하게 전달하고자 생성된 정기 간행물이다. 특정 기관이 뉴스나 정보를 수집, 처리, 기사화하여 신문지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공공성의 커뮤니케이션인 셈이다. 신문은 일정한 간격으로 발행되고, 자유롭고 반복적인 접촉이 가능하며, 시사성과 시의성을 지녔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문자 기록이 신문의 가장 큰 특성이기 때문에 독해 능력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단점도 있다. ● 한국화가 임장순은 '신문'을 그린다. 신문과 같은 비율과 프레임의 한지를 선택해서 코너를 나누어 기사를 싣고 이미지를 더한 창작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는 특정 연월일을 주요 제목으로 선택한 후 해당 일자에 발발한 사건을 부제로 첨가한다. 그가 창작의 소재를 고르는 기준은 어렸을 적부터 기억에 남아 있는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이다. 40대 중반인 작가는 1980-90년대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몸소 체험하며 성장했다. 주로 도시에서 생활했던 터라 다양한 사회 변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임장순_1999년 7월 1일 (유치원생등 23명 사망)_한지에 연필, 먹_162.3×130cm_2024
임장순_1999년 11월 1일 (인천 호프집 불 55명 참사 '피어나는 10대'누가 앗아갔나)_한지에 연필, 먹_162.3×130cm_2024
임장순_1997년 8월 6일 (KAL기 괌서추락) _한지에 연필, 먹_162.3×130cm_2024

작가는 개인전 타이틀로 1980-90년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현상을 선정하면서 이와 연관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예컨대 2022년 ART SPACE IN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개발, 재개발》이라는 타이틀 아래 도시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표현한 작품군을 소개했다. 또한 2023년 11월 해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은 《붕괴》였고 「1994년 10월 21일(호외 성수대교 붕괴)」, 「1995년 6월 30일(삼풍백화점 붕괴대참사)」 등이 전시되었다. 작품 제목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사건을 소재로 삼았는지 파악되는 것이다. ● 임장순은 왜 신문을 창작의 근간으로 선택했을까? 그는 주제와 재료에 있어서 '한국화'로 보이는 작업을 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오랜 기간 지필묵을 다룬 입장에서 한국화의 정체성 논란이 지속되자 자신만의 해법을 찾고자 노력했고 어느 순간 한국화가 과거의 무언가를 그리는데 꽤 적합한 매체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이렇듯 작가는 한국화를 지키면서 묵묵히 작업에 매진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신문이 떠올랐다.

임장순_1980년 9월 1일 (깨끗하고 서로믿는 정의로운 새사회건설) 1_한지에 연필, 먹_112×162.3×2_2024
임장순_1980년 9월 1일 (깨끗하고 서로믿는 정의로운 새사회건설) 2_한지에 연필, 먹_112×162.3×2_2024
임장순_1987년 12월 17일 (역시 地域(지역)대결 국민은「安定(안정)」을 택했다) 1_한지에 연필, 먹_112×162.3×2_2024
임장순_1987년 12월 17일 (역시 地域(지역)대결 국민은「安定(안정)」을 택했다) 2_한지에 연필, 먹_112×162.3cm×2_2024

그러나 임장순이 그린 신문에는 구체적인 기사나 선명한 사진이 부재하다. 대량 생산되는 일간지가 고수하는 타블로이드판의 비율, 무채색 종이에 검은 인쇄 활자의 시각성은 유사하지만 임장순의 신문은 가독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숫자로 명시된 제목이 없으면 어떤 사건과 사고를 시각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신문이 문맹인에게 무용지물이라는 단점을 전복시킨 창작 방법이다. 문자 해독 능력이 있는 독자가 오히려 정확한 기사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과거의 순간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따라서 임장순의 신문은 실제 일어난 사건과 사고를 작가의 뇌리에 남아 있는 잔상으로 기록한 까닭에 암시적이고, 제시적이며, 은유적이다. 즉 다른 대상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한 '우의물(寓意物)'인 셈이다. ● 작가 자신도 신문 작업이 객관적 기록을 통해 주관적 기억을 표현하는 우의적 창작임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한국화 전공자답게 이러한 우의성의 근원을 문인화에서 찾으려 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문인화란 옛 선비들이 쓰고 그린 서화를 일컫는 용어이다. 북송대 문사 관료였던 소식(蘇軾, 1037-1101)과 그의 친구들이 여가 활동으로 창작한 글씨와 그림을 사대부화(士大夫畵)라 불렀고, 이후 명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 남북종론을 전개할 때 남종화로 분류한 화가의 그림을 '문인지화(文人之畵)'라 명명했다. 문인화가들은 서화뿐만 아니라 시도 탁월하다는 삼절(三絶)과, 시서화가 하나라는 일률(一律)의 개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나아가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 아닌, 대상의 느낌과 상징성을 표현(expression)하는 데 집중했다.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이러한 맥락으로 본다면 임장순의 신문은 시대성을 토대로 번안한 문인화라 할 수 있다. 대중 매체에 보도되어 다수가 알고 있는 사실적인 과거를 끄집어내어 주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다만 화폭에 정확한 텍스트 쓰기를 생략한 채 기사를 먹점과 먹선으로 처리하면서 관람자가 작품 제목을 보고 각자 기억의 창고에 보전된 사건, 사고를 유추하는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 과거의 일을 간단한 점과 선으로 기호화하여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관람자가 회고와 상상을 가미하여야 온전한 작품 감상이 마무리되는 시퀀스인 셈이다. ● 임장순의 창작 방식과 태도는 사물의 외관을 화폭에 그대로 옮기는 형사(形似)를 배제하고 대상이 간직한 함의만 표현하려는, 즉 사의(寫意)에 집중하는 문인화 담론과 닮아있다. 마치 대나무를 그릴 때 눈이 짓무르도록 대상을 관찰하고(熟看),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정신을 집중하며(專一), 관조자가 대상에 몰입하면(凝身), 대상 사이의 거리감과 구획이 사라져 하나의 마음이 이룩되는 물화(物化)가 된다. 이 상태에서 사물의 사실적인 묘사나 재현은 의미가 없다. 오로지 문인 사대부 사이에서 통용되는 사회성, 즉 군자의 이미지만 드러날 뿐이다.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작가는 미국 유학 시절에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형상의 객관적 재현이라 하더라도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는 증언이다. 그리하여 창작에 있어서 형식의 왜곡이나 변형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감정 표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사물의 형태가 허물어져 추상으로 전개되거나 색상이 가미되어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나아가 작가는 종이 신문과 기능은 유사하지만 버전이 다른 디지털 매체도 선택할 계획이다. 작가는 물성에 개의치 않고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적합한 매체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 임장순은 이번 전시 《밤과 낮》에서 더욱 강한 시각성의 신문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먹빛은 짙어졌고 필획은 활달해 졌다. 또한 그는 이 세상의 어둠과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 전시장을 두 개로 나누고 조명을 달리하여 밤과 낮을 연출했다. 장소 자체가 통합된 신문이 되는 셈이다.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으로 전환된 그의 색다른 신문은 한국 사회의 개발과 발전의 명과 암을 알려준다. 30cm 크기의 정사각형 신문 사진을 재현한 다음 바둑판처럼 진열하기도 했다. 건축물을 간략하게 그린 100개의 스퀘어는 텍스트가 사라진 이미지 기사로 기능한다.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임장순_밤과 낮 Night and Day展_금호미술관_2024

이렇듯 임장순의 신문은 멀지 않은 과거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감상자의 뇌리에 잠재해 있는 기억을 소환한 참고문헌(reference)이자 색인(index)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실화가 개인에 따라 흐릿해졌거나 왜곡되었을 때 이를 상상으로 대체한 간결하고 절제된 회화인 셈이다. 임장순의 신문이 형사가 아닌 사의를 추구한 문인화의 동시대적 오마주이자, 구상보다 추상성에 가까운 우의물로 평가받는 까닭일 것이다. ■ 송희경

Vol.20240627h | 임장순展 / IMJANGSOON / 任章淳 / painting

@ 제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