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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세 블로그_blog.naver.com/tnvnfli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주말,공휴일_10:00am~06:00pm 4일_03:00pm~06:00pm / 17일_09:00am~04:00pm
원주문화원 Wonju Cultural Center 강원도 원주시 무실로 235 Tel. +82.(0)33.764.3794/6796 wjmunwha.or.kr
임진세가 그리는 인물과 자연은 언제나 도시 환경과 뒤섞여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다. 원래 도시의 한 부분이었던 듯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있는 인물들도 있었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모습을 바꾼 채 도시 곳곳에 포진한 자연의 모습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에워싼 인공적 환경들에 주목해 왔다. 초기작 「인물 풍경」(2005-7)은 도시 속 홀로 벤치에 앉아있는 인물을 흑백의 단순한 필치로 포착했고, 이후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작가의 시선은 삶의 구체적 풍경들로 확장됐다. 개발 이전의 주택가, 공사장의 가림막, 후미진 골목에서 쓰레기를 모으고 있는 사람, 밤길을 빠르게 지나가는 길고양이와 같은 것들로 말이다. 동시에 도시에 깃든 쓸쓸한 정서와 소소한 아름다움을 여러 회화적 실험을 통해 전달했다. 도시의 밤거리에서 마주한 가로등에 비친 꽃나무의 아름다움을 빛이 번지고 흔들리는 것 같은 속도감 있는 붓질로 표현했고, 공사 중인 공터와 도시 외곽의 환경을 황폐하면서도 광활한 풍경으로 재현해 냈다.
비교적 근작에 해당하는 「눈과 담배꽁초」(2017)는 눈 쌓인 더러운 길바닥의 한 부분을 택해 회화적 장면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풍경을 넓게 조망했던 기존작들과는 달리 대상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았다. 이 같은 경향은 바닥에 떨어져 짓이겨진 살구를 그린 「살구」(2019) 연작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발치에 내려다 본, 진녹색 보도블럭의 어둠과 살구의 밝은색이 강렬하게 충돌하는 길 위의 살구를 표현했고, 나아가 상상력을 발휘해 동일한 장면을 우주공간의 별처럼 보이는 추상화로 그려냈다. 살구로 대변되는 찰나에 빛나는, 곧 없어질 수 있는 생명에 대한 관심은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시들고 쇠락해가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는 이제 인공적 환경보다는 그 안의 인물, 자연, 사물에 더 깊은 관심을 표한다.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더 풍부한 회화적 은유를 사용하고, 풍경과 사물들에 인물과 관련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번 전시 『시든 자리 위에서』는 노인과 시장, 시들어가는 꽃을 주제로 한 신작들로 구성된다. 팬데믹을 포함한 지난 4-5년의 시간 동안 작가가 마주했던 삶의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은 전시 주제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끝없는 경제적 효용 추구는 환경 파괴를 야기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반성은 사회에서 가치를 다한 것으로 폄하되고 혐오에 노출된 노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임진세는 따듯한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그들을 연륜과 지혜를 가진,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정서를 지닌 존재로 그리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쇠락해 가는 전통 시장도, 시들어가는 꽃도 그 안에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재현하려 했다. 시든 꽃과 노인은 생명이 사그라지는 과정에 놓여 있고, 시장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예스러운 장소이다. 이 주제들은 모두 생명의 정점이나 세간에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가치들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소외된 가치를 조명하는 데 있어 임진세는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에 초점을 두거나 미의 위계를 부수는 미학을 지향하지 않는다. 단지 관객에게 그저 그것, 허름하고 소소하고 시든 것 나름의 환상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시장」(2022)의 점포 안에 있는 노인은 얼핏 잘 드러나지 않는다. 퍼런빛이 감도는 어두운 건어물 가게를 세 개의 전구가 약한 빛으로 밝히고 있다. 가게 앞에 쌓여있는 사각형 김 다발과 건어물 비닐봉지, 선반과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생선, 켜켜이 쌓인 물건에 먼저 시선이 간다. 그것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철제 프레임들을 또 지나서야 안쪽에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옷에 파란 앞치마를 맨 그는 김과 어두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주변과 어우러진다. 같은 연작에서 고추장, 된장과 식료품들이 진열된 가게의 할머니는 한 꾸러미의 물건 정도의 크기로 화면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진열대 너머에 앉아 관람자편에서는 보이지 않는 티비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노랗고 붉은 물건들이 따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갈색 가구 주변으로 노란 벽지가 발린 이 오래된 가게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렇게 공간, 물건과 인물의 관계를 긴밀하게 구성한 것은 의도된 것이다. 이 환경과 그 노인은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노인이 작은 공간 안에 손수 부리고 배열한 물건은 직접 가격, 종류, 특성 등을 고려하며 수없이 다루어 온 물건들일 것이고,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가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는" 품목들일 것이다. 이 가게의 물건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나아가 작가는 인물이 가진 이야기와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회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시장풍경-옷가게」(2024)에는 빨간 잠바에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가 입구에 간이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데, 걸려 있는 옷들이 바람결에 잔잔히 흔들리고 화면 전체에는 색색의 물감이 흩뿌려져 있어 꿈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인터뷰 중 노인의 치매라는 병이 옛날의 추억과 기억 속을 헤매게 한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이 그림은 회화적 실험 속에서 꿈같은 추억을 가진 노인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시장풍경-방앗간」(2024)은 정자세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방앗간 주인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가 시장에서 이 모습을 마주했을 때 느꼈다고 하는 그의 자존심 강한 내면은 그를 둘러싼 방앗간 기계의 강한 금속성으로, 머리 뒤로 인물의 후광을 보여주는 듯한 곡선의 추상적 붓질로 표현되고 있다. 「시장풍경_바구니」(2024)에는 색색의 곡물을 담은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쨍한 색을 뽐내며 아래쪽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면 위쪽으로 길게 뻗은 시장 골목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바닥에 놓인 둥근 바구니들은 작아지고 흐려진다. 뒤편에는 어느 점포에서 잠시 나온듯한 보라색 옷의 할머니의 모습이 작게 등장한다. 할머니 뒤로는 비닐 문이 드리워진 점포들이 긴 삶의 여정 끝에 닿을 공간인양 흘러내리는 회색과 연보라색이 뒤섞인 뭉개지는 붓질 속에서 몽환적으로 표현된다.
임진세는 그림 안에 인공과 자연의 관계를 긴밀하게 설정함으로써 우리 삶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가를 질문해 왔다. 전시에는 작가가 팬데믹을 겪으며 환경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지게 된 뒤에 그린 강렬하고 황폐한 풍경을 담은 대작 두 점이 포함된다. 「어느날 마주한 풍경」(2023)에서 먹구름으로 뒤덮인 어두운 바다의 건너편에는 연기를 내뿜는 공장과 우중충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햇빛이 수면에 내려와 반짝임을 만들며 오염된 바다 위에 잠깐 자연의 빛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색의 정원」(2022)은 코로나 시기 작가가 인적 없는 곳을 산책하며 마주했던 을씨년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쓰레기가 섞여 있는 웃자란 잡초들의 언덕 사이로 오염된 듯 시퍼런 색인 오솔길이 탁한 하늘로 이어진다. 인간으로 인해 병든 자연은 인간을 다시 불안하게 한다. 큰 스케일로 펼쳐진 이 황폐한 풍경은 우리를 위태로운 환경에 대한 사색으로 이끈다.
그가 바라본 꽃 역시 우리 삶의 환경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화단」(2022) 연작 속 대부분의 꽃들의 배경에는 꽉 막힌 벽이 있고, 앞에는 사람이 쳐놓은 줄이나 펜스가 있다. 화단에 있는 꽃들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욕구로 인해 '자연'으로부터 떼어 옮겨온 것이라 인간의 이런저런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가 그린 화단의 꽃들은 이렇게 인공적인 환경이라는 제약 아래 놓여있을 뿐 아니라, 시들었거나 고꾸라져 있기도 하고 규모 역시 소소한 것들이다. 작가는 완벽한 자연 속에서 활짝 핀 꽃을 재현하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임진세는 만개한 잠깐의 순간보다 더 긴 시간동안 시들어가면서 다채로운 색깔과 모양으로 존재하는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다. 또한 그가 그리는 꽃과 풀은 때때로 화단도 아닌 아무 곳에서나 피어나기도 한다. 「공터」(2022)는 어둠이 내려온 도시 외곽의 버려진 듯한 땅에 마구잡이로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그렸다. 어둠과 황량함을 배경으로 화면 전면을 뒤덮은 코스모스는 하늘하늘하다 못해 유령처럼 투명해서 독보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코스모스」(2022)는 아파트 단지 부근에 경계를 쳐놓은 녹색 철조망을 가로질러 피어난 또 다른 코스모스를 담았다. 코스모스는 으레 그런 경계지대들에 예고 없이 피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풀」(2022)은 전봇대와 철문에 가로막힌 막다른 인도, 그 발길이 끊긴 자리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그렸다. 거친 질감의 둥글게 휘는 풀이 밝은 색으로 빛나고 있고, 멀리 배경에는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대의 하늘과 뭉개진 붓질로 속도감 있게 표현된 길이 보인다. 도시 속에 있는 하찮은 생명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순간이다.
임진세의 작품에서 노인은 다시 꽃으로 은유된다. 「가을」(2022)은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 밑에 구부려 앉아 옆을 보고 있는, 빨간 옷에 마스크를 쓴 조그마한 할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며 작가는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있어서 더 땅에 붙어있는 꽃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다. 앞서 본 철조망을 가로질러 핀 코스모스와 대구를 이루는 것처럼 「또래」(2024)의 소녀들도 경계에 앉아 있다. 이들은 도로의 경계를 따라 쌓아 둔 돌들 위에 앉아 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이 얼굴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두 소녀의 뒤 배경은 회색 벽으로 막혀있다. 그리고 벽과 소녀들이 있는 곳 사이에 분홍색으로 그린 약간의 환상적 공간이 자리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노인의 정서와 개인사에 감정을 이입하고, 쇠락해가는 생명과 소외된 대상들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직접 대면하는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임진세는 우리를 둘러싼 불안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만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그가 대상들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시선에는 애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임진세는 시든 자리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담담히 전해준다. ■ 김수영
Vol.20240604a | 임진세展 / LIMJINSE / 林珍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