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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24_0518_토요일_03:00pm
백인백색 기획 시리즈 10
기획 / 김혜원 주최 /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아트갤러리 전주 ART GALLERY JEONJU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7-1(서서학동 51-2번지) 1층 전시장 www.artjj.info
『나를 지우고 나를 쓰다(Erase Me, Write Me)』展은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 마련한 열 번째 기획 시리즈이다. 지금까지 「백인백색」에서는 소비문화, 에콜로지(Ecology), 장소애(Topophilia), 타자, 언어, 추상, 산업, 지역, 신체를 키워드로 하여, 그와 관련한 사진·영상·설치 작품들을 초대하고 인문학적 담론을 제시하는 기획 시리즈를 9회에 걸쳐 진행해 왔다. '자화상'을 키워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표현 주체인 자신을 카메라의 피사체로 삼은 김미희, 문슬, 장영진 3인 여성 사진가들의 작품을 초대하였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가 예술의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자아 표현의 이미지들이 인간 존재를 둘러싼 다양한 삶의 양태와 의미와 가치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지우고 나를 쓰다』展 역시 3인 사진가들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그들이 현실적 자아를 지우고 자신을 표현 도구로 하여 새롭게 쓴 예술적 자아의 성격과 의미를 확인하고자 한다. ● 김미희의 「내색하지 못한 내色」은 자기 신체의 일부인 '발'과 일상의 단편(斷片)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제유(提喩)적으로 드러낸 셀프 포트레이트이다. 영문학과 중문학을 전공한 김미희는 부분으로 전체를 암시하는 제유의 문학적 수사로 시각적 메시지를 구현한다. 그는 신체 동작에서 흔들림을 이용하거나 배경 묘사에서 흐릿함을 강조하거나 정물 표현에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개성적 조형 어법으로 자신의 "내色", 즉 자의식을 "내색하지 못하"는 자신의 심정을 은밀하고 모호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발'의 이미지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꽃, 책, 향수, 과일, 정원 등 자신의 취향을 암시하는 일상의 사물이나 풍경 들은 그가 지향하는 이상이 투영된 오브제이다. 이때 클로즈업이나 블러나 패턴, 거울이나 그림자를 이용한 환영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는 모호함과 감춤의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김미희의 자화상은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경계에 있는 자신의 심리를 일상적 차원에서 보여주는 내적 독백이라고 할 수 있다.
문슬의 「존재와 불안」은 유한한 인간 근원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를 보여주고 있는 셀프 포트레이트이다. 영어교사로 명예퇴직한 문슬의 사진은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불안 심리와 내면의 고독과 그에 대한 연민을 가시화한다. 검은 손아귀에 붙들린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에 저당잡힌 인간 존재를, 조롱(鳥籠) 앞에 선 그의 모습은 자유를 속박당한 인간 존재를 암시한다. 하얀 쌀알을 배경으로 한 그는 창해일속(滄海一粟) 곧 광대한 대우주 속 한 알의 좁쌀처럼 미미한 인간 존재를, 흐르는 물을 배경으로 한 그는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 부재하게 될 인간 존재를 시사한다. 따라서 축 떨군 팔의 이미지에서 보듯, 문슬은 이러한 삶과 죽음의 근원적 관계 속에서 그간의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고자 한다. 문슬의 자화상은 생물학적 종말인 죽음과 그로 인한 삶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해방과 자유에 이르고자 하는 철학적 자기 성찰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 장영진의 「다시 태어나다」는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연극적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과 대지의 상처와 그에 대한 치유와 재생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셀프 포트레이트이다. 사진가이면서 문학과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테라피스트 장영진은 인간성 상실과 자연 파괴의 시대에 버려지고 상처받고 다시 태어나는 인간과 사물의 시간을 성찰한다. 죽은 나뭇가지에서 출발한 그의 사유는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는 '물/바다'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배우처럼 연기하는 극적 연출과 그 기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극적 행위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얀 가면과 가운과 검은 중절모의 소도구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벗겨진 가면은 지난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제사장이나 의사나 약사 등이 입는 흰 가운은 치유의 힘을 상징하는 우의(寓意)적 오브제이다. 검은 중절모는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썼던 왕의 면류관과 오버랩된다. 장영진의 자화상은 사물과 인간의 다시 태어나는 시간을 '재연/재현'하면서 대자연의 유기적 순환 체계와 생명 질서의 회복을 염원하는 사회적 성찰 행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나를 지우고 나를 쓰다』展의 사진가들은 자신을 작업 대상으로 삼아 자화상의 의미와 형식과 미학을 구축하였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문학을 전공한 여성 사진가들로 여성적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작업하였다. 다만 김미희에게 자화상은 자신을 진지하게 응시하여 자의식을 표출하고 자기애를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발'의 제유적 수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고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일상적 차원에서 시각화하였다. 문슬에게 자화상은 인간을 탐구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수단이었다. 불안한 인간 존재, 나아가 인간 해방과 자유를 위한 삶의 통찰을 철학적으로 시각화하였다. 장영진에게 자화상은 대자연과 생태환경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자화상 작업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버려진 자연물을 채집한 후 이를 현지에서 설치하여 촬영한 작업과 이를 스튜디오로 가져와 재구성하여 촬영한 작업으로 생태계의 사이클과 힘과 영향을 사회적 차원에서 시각화하였다. 『나를 지우고 나를 쓰다』展의 사진가들은 자신의 자의식을 일상적, 철학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여 자화상이 개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관한 시각을 반영한 자아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 김혜원
김미희(Kim, Mi-hee)의 「내색하지 못한 내色(Uncolored Color)」 ● 음예(陰翳) / 그늘인 듯한데 그늘이 아니고 /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 거무스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 빛과 어둠 사이의 숨결을 의미한다 / 나는 음예 예찬론자 // 드러나는 것이 늘 어색한 존재가 나답고 / 눈에 띄기보다는 그림자처럼 /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나답고 / 색을 담기보다 무채색이 나답고 / 정물(靜物) 안에 숨어 있을 때가 나답고 / 그 안에서만 존재하고픈 욕망을 간직해 왔다 / '발'이라는 내 존재(存在) 안에, 조용히 // 소멸하는 하루들 중 / 일상(日常)은 내가 누릴 수 있는 / 최대한의 사치 / 일상 공간의 사유들을 / 내 몸의 일부인 '발'의 표정에 담아 / 타자(他者)로 보는 행위 / 꽤 매력적인 포착의 피사체가 되었다 / 내가 아닌 내가 / 네가 아닌 네가 반영(反映)된 자화상 // 내 새로운 이름, 아무도 아닌, '우티스(Outis)'로 / 모든 것을 담는다 ■ 김미희
문슬(Moon, Seul)의 「존재와 불안(Being and Anxiety)」 ● 두려움과 불안은 다르다. 두려움은 대상이 있지만 불안은 뿌리가 없다. 평소 잠복해 있던 불안이 느닷없이 찾아올 때 우리는 섬뜩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을 '불안장애'나 '이상심리'와 같은 증후로 간주하지만, 그것은 인간 존재의 유한한 삶과 죽음에 대한 염려일 경우가 많다. ● 나는 그러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찾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섬뜩함을 느낄 때 나는 그 불안한 존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품으려고 하였다. ● 뿌리 없던 불안이 스멀거리며 그 모습을 좀 더 선명히 드러낼 때, 강도는 다르지만 섬뜩함이 온몸을 덮칠 때, 나는 불안한 존재의 모습을 강렬한 흑백의 톤에 담았다. 그때 불안은 사진과 연대하여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나는 치유의 힘을 얻었다. ● 내게 사진 작업은 불안에 대한 제의(祭儀)이다. 나의 제의적 사진 행위는 유한한 삶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했지만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을 품고 있다. 막막한 저 너머의 것들을 사랑하는 나는 사진으로 죽음의 제의를 치르며 집착과 욕망도 함께 내려놓는다. ■ 문슬
장영진(Jang, Young-jin)의 「다시 태어나다(Reborn)」 ● 「REBORN」 작업은 새로 태어나는 인간의 시간과 사유를 표현한 자화상 작업,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비치코밍(Beachcombing)을 통해 얻고, 현지 설치를 통한 로케이션 작업, 바닷가에 버려진 오브제들의 재구성을 통한 스튜디오 작업의 세 단계로 진행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자화상으로 표현한 작업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에 떠밀려온 죽은 나무들을 통해 지나온 삶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연과 사물의 시간 앞에서 가면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들을 자화상으로 표현하였다. 흙과 바다의 기억을 품은 나무는 연약하지만 강했다. 바닷물에 젖고 바람에 마르기를 반복하며 더 단단해졌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를 단단해지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슬픔과 고난은 극복하면 우리를 강하게 한다. 버려진 나뭇가지들도 썩어 다시 생명을 품게 될 것이다. ● 다시 태어난다(Reborn)는 것은 물리적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지금 버려지고 상처받은 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REBORN」 작업 과정은 버려진 나뭇가지에서 꽃을 보고, 썩는다는 것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일임을 깨닫고, 우리들의 삶 또한 대자연의 순환의 일부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 모든 사물은 고유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버려진 나뭇가지에서 시작된 사유는 '너를 통해 나를 보기'에 이르렀고, 사물을 유기체적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 사진가이자 테라피스트로 살면서 치유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깊이 느끼곤 했다. 사물과 자연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회복의 순간과 과정들을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 사유의 눈으로 사물의 시간을 읽어내는 것은 자연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다. 바다의 시간에 대하여 나무의 시간에 대하여 깊이 들여다보니 삶과 죽음과 순환의 이야기가 보인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며 내 삶이 대자연의 순환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장영진
Vol.20240517e | 나를 지우고 나를 쓰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