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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23_0708_토요일_04:00pm
백인백색 기획 시리즈 9
기획 / 김혜원 주최 /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후원 / 전북문화관광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진공간 눈 Photospace NO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권삼득로 455 (덕진동2가 27-43번지) Tel. +82.(0)63.902.2882 blog.naver.com/space-noon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는 아홉 번째 기획 시리즈로 ≪신체와 서사(Body and Narrative)≫展을 마련하였다. 지금까지 8회에 걸친 이 시리즈는 소비문화, 에콜로지(Ecology), 장소애(Topophilia), 타자, 언어, 추상, 산업, 지역을 키워드로 그와 관련한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을 초대하여 인문학적 담론을 제시해 왔다. '신체'를 키워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 실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체에서 이루어지는 서사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은 5인 사진가의 작품을 초대하였다. 그것은 생을 체험하는 일차적 수단으로서의 인간 신체가 매혹의 대상으로서 오랫동안 예술의 주요 관심사로 탐구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이후 근대적 신체는 '정신/신체'로 이원화되어 '타자'로 치부되어 왔고, 현대 철학에서의 신체 담론은 이성에 의해 억압당해 온 신체를 주요 테제로 하여 유효한 의미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왔다. 따라서 ≪신체와 서사≫展은 5인 사진가가 자신과 타인의 신체를 통해 구현한 다양한 서사 패러다임을 통해 신체의 새로운 존재 방식과 그 의의를 확인하고자 한다.
김대곤(Kim, Dae-ghon)의 「암병동(Cancer Ward)」은 임종을 앞두고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암환자들을 정공법적으로 촬영한 흑백 초상사진이다. 신체의 중요성은 육신이 쇠약할 때 가장 절실해지기 때문에, 신체에 대한 연구는 해부학, 생물학 등의 의학 분야에서 처음 유래되었다. 당시 전북대학교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재직하면서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한 김대곤은 세 번째 개인전 ≪암병동≫(1996)에서 암환자의 포트레이트와 영상 및 설치(X-Ray, MRA 필름, 초음파, 컴퓨터) 작품을 함께 전시하며 예술사진과 과학사진의 통섭을 시도하였다. 25여 년 만의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미 고인이 된 암환자들의 포트레이트와 사진을 이용한 동판화, 석판화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한다. 특히 망인과 그의 영혼이 자유로운 새가 되어 비상하는 이미지의 에칭 「서사 이후-자유롭게」,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물인 해골 이미지의 석판화 「대화 2」로 생명의 유한함과 삶의 허무함을 드러내고 있다. 의사로서 생물학적 종말인 죽음을 빈번히 목격해야 했던 김대곤은 죽음의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신체를 통해 죽음을 경고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환기시키고 있다.
김정현(Kim, Jung-hyun)의 「또한 바람과도 같다(It's also like the wind)」는 옷을 벗어버린 상태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남성 누드 셀프 포트레이트이다. 과거의 시각 예술에서 남성 누드는 영웅적인 신체나 섹슈얼한 남성미의 신체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김정현의 누드 사진은 산과 들과 숲과 물의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사진들이다. '바람'으로 상징되는 '자유'의 세계를 갈망하는 김정현은 옷을 벗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물아일체(物我一體)된 자연인으로서의 해방감에 젖는다. 자연 속에서 찾은 평화와 안식의 대우주적 서사는 남성 신체를 자연에 속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남성/여성, 이성/감성, 문화/자연 등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온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 낸다. 이 과정에서 김정현은 철염 사진의 하나인 사이아노타입(cyanotype)으로 고전 프린트의 매력과 함께 예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준다. 이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 고된 수공업적 제작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사이아노타입으로 사진의 본질적 특성인 복제성을 포기하고 원본의 유일성이 지니는 아우라의 미학을 추구한다.
마루(Ma Ru)의 「untitled」는 신체를 현대 언어철학의 해체 개념으로 파악하여 이를 "텅 빈 기호"로 인식하고 있는 사진 이미지이다. 마루는 기의(記意, signifié)와 기표(記標, signifiant)가 1:1로 대응하여 명확하고 획일적으로 의미를 규정하는 구조주의적 언어 체계를 거부하고 신체가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를 통해 비결정형의 의미를 가시화한다. 마루 사진에서의 몸짓은 신체만이 영혼의 상태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다고 믿고 몸짓을 의사소통의 중심 수단으로 삼는 연극에서의 팬터마임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신체 언어는 말이 쇠잔해지는 순간 의사소통의 전면에 부각되어 순수한 기호, 모호한 시각적 메시지로 기능한다. 특히 마루의 신체 이미지에는 인물의 얼굴 표정이 제거되고 손, 팔, 목, 가슴 등의 신체 동작이 강조되어 있다. 이는 마루가 밝혔듯 "'의미'는 언어의 '사이'에 있"다고 굳게 믿는 그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적 의미에 의도적으로 "균열/구멍"을 내고 의미의 일탈을 시도하기 위해 신체 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한 결과이다. 마루가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는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인간 의식이 신체 행위를 통해 새롭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박새봄(Park, Sae-bom)의 「상처(The scar)」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여성들의 몸에 난 상처자국에 초점을 맞춰 신체에 새겨진 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진이다. 흉터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한 개인의 육체에 새겨져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갈등이 각인되는 장소로 작용해 왔다. 박새봄은 20대 또래친구들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신체의 흉터를 드러냄으로써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신체의 주체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상처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상처라는 내밀한 통증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몸의 주체가 되어야만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박새봄은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외상의 흔적을 끌어안고 소외되어 웅크린 여성들의 신체를 여성적 감수성으로 접근함으로써 그들의 불안한 심리나 내면의 고뇌를 가시화한다. 억압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침묵해야만 했던 여성들의 경험을 중심 서사로 끌어들여 여성의 삶과 의식의 변화를 이끌고 여성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페미니즘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오준규(Oh, Jun-kyu)의 「선미촌(Seonmichon)」은 흔히 홍등가(紅燈街)라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 전주 '선미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윤락업소가 불을 밝히고 성업 중이었던 이곳에서 오준규는 여성 육체의 상품화 문제를 제기한다. 가게 진열장 같은 '유리방'에 앉아 호객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육체와 돈의 교환 관계를 시사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로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오준규는 성매매 여성을 육체와 정신의 주체로 파악하고, 이들을 시장 경제 체제에 속해 있는 성노동자로 인식하고자 한다.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는 자기 육체의 시장 가치를 통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준규는 집창촌으로 낙인찍힌 이곳 어둠 속에서 은밀히 성을 교환하는 여성들을 공적 담론의 장(場)으로 이끌어내어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남성/여성, 가해자/피해자라는 젠더 관계와 권력 위계로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전주시 도시재생사업에 의해 모두 철거된 '선미촌'은 합법적인 육체의 자본화나 성노동자로서의 삶과 권리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요원함을 말해 준다.
≪신체와 서사≫展의 5인 사진가들은 신체를 의미 생성의 장소, 이야기가 각인되는 장소로 인식하고 신체 서사를 찾아 인물을 선정하거나 플롯을 구성하였다. 환자들의 주치의였던 김대곤은 인간 신체의 병적 징후를 임상학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였다. 사진 심리상담을 공부한 김정현은 자신의 신체를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해하여 자아 확인과 인간 정신의 해방을 위한 장으로 인식하였다. 서구 현대 철학을 만나 "말 대신 사진을 찍기로 했던" 마루는 신체를 언어철학적 관점으로 파악하여 고정된 의미의 틀을 해체하고자 하였다. 또한 당시 사진과 학생이었던 박새봄은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사회복지사인 오준규는 경제적 시각에서 타자로서의 여성 신체의 억압적 현실에 접근하며 이상화된 여성 신체를 거부하고 남성의 관능적 응시의 시선을 제거하였다. 이처럼 ≪신체와 서사≫展은 19세기 이전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경시되었던 신체에 임상학적, 심리학적, 언어철학적, 페미니즘적, 경제적 차원의 다양한 서사로 접근하여 신체가 이 모든 것들의 총체임을 드러내고 그 현대적 의미와 위상을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김혜원
Vol.20230707e | 신체와 서사 Body and Narrativ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