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린 얼굴 Frightened Faces

김유진展 / KIMEUGENE / 金宥辰 / painting   2024_0430 ▶ 2024_0512

김유진_Sleepyhead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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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인스타그램_@eugenekim_ar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B1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 www.42art.com

인형, 마네킹, 모델, 배우 그리고 발가벗은 몸 ● 사이아트 스페이스에서 4월 30일부터 5월 12일까지 김유진의 개인전 『겁에 질린 얼굴 (Frightened Faces』이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 김유진은 사람과 인체의 일부를 닮은 사물, 그리고 마네킹, 인형과 같이 사람을 닮은 대상들에 관심을 가지며, 붓질을 통해 이들을 형태적으로 와해시킨다. 역설적으로, 김유진의 화면에서 이러한 붓질들은 대상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대상들의 표면을 더듬고, 쓰다듬고, 매만지며 화가와 대상들간의 애착관계를 매개한다. 언뜻 대상들을 견고하게 닮았지만 실제로는 엷은 속삭이는 붓질들로 구성된 형태는 익숙함과 동시에 낯선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 느낌은 알고 있던 대상에 대해 살피는 애정들을 토대로 새로운 서사들을 상상하고 또 다시 붕괴시키는 역설적인 과정을 드러낸다. ● 화면 위에서 몸의 껍질만 남아 텅 빈 인형들은 거침없이 몸을 관객을 향해 내밀고,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도 맨 몸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 위에서 이 두 다른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벗은 몸을 자연스레 내보이는 것은 대개 몸을 드러내는 이의 마음을 얻은 뒤에 가능하기에 인형과 인물들의 위치는 특별해진다. 아무리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운 신체와 얼굴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 모든 몸의 흔적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정서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분명 본래 모든 것을 드러내도록 설계된 사물일지라도, 사람을 닮은 외양에서 자꾸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담담하게 벗은 몸을 보고 있는 우리는 말이라도 걸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이에 상응하며 김유진은 제게 먼저 몸을 내민 이들에게 시간을 투입하여 그들이 비추는 이미지를 회화적 시간을 통해 읽어낸다.

김유진_Shelter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24
김유진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4
김유진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4

김유진은 인형들과 마네킹들을 다루며 특히 애착의 시간이 대상에 남아있을 법한 사진들을 모은다. 중고거래에 사용되기 위해 찍힌 마네킹, 사용감이 있는 오래된 빈티지 인형, 유독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형, 그저 새로운 것,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으로 남아있기 보다 이렇게 선별된 대상들은 애착이 들러붙을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한편 이 시간은 이들로 하여금 쉽게 공포스러운 미신들에 오염시키기도 한다. 빈티지샵에서 근거 없는 괴담들이 떠올라 갑자기 두려워지는 것처럼, 표정 없는 대상들에 묻은 과거의 흔적들은 내게 유령처럼 다가와 나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김유진의 회화 속에서 마네킹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입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고전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Shelter」처럼 겹쳐진 동일한 몸과 얼굴들을 두고 자세와 얼굴 표정에 의미를 담아 이야기를 만들게 되거나, 반짝이는 소녀 인형의 딱딱한 눈알 속에서 무언가 열망하는 욕심들이 반짝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화면 안에서 때로 텅 빈 자신의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My Plug in Baby』에서 몸이 잘린 얼굴들은 견고한 외곽선을 통해 텅 빈 실체가 드러나며 껍질뿐인 실리콘에 가득 찬 부풀린 서사들이 들어 차는 환상을 보여준다. 김유진의 이러한 붓질은 이내 다른 마네킹들이나 인형들을 그릴 때에도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 겹친 우연들이 나를 압도하여 넘어설 때, 따라서 주체인 내가 대상이 통제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두려움을 느낀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했던 '언캐니(uncanny)'함에는 익숙한 것과 은폐되고 낯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이 언캐니함이 단순히 마네킹이나 사람을 지나치게 닮은 무언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주체의 억압된 것들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김유진_My Plug in Baby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24

이를 비추어 보면 가만히 놓인 대상들을 두고 특정한 힘에 이끌려 화면 속에 서사를 만들던 김유진은 두 가지 욕망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가감 없는 이야기들, 대상들이 스스로 드러낸 가장 설득력 있는 날 것을 보고 싶은 욕망과, 이미 그 서사가 나를 넘어설 때 그것이 다시 나의 화면 안에 돌아와 영속하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대상들을 구성하는 관객에게 거칠게 속삭이는 듯한 엷은 붓질들과, 마치 오랜 시간동안 풍화된듯한 색을 비추는 화면은 이 모순된 욕망을 암시한다. 이전 작업들에서 그가 도시에서 느꼈던 속도감처럼, 김유진의 회화속에서 이 모순적인 감정은 특정한 오가고 스스로 욕망들을 순차적으로 쫓으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것에 계속해서 미묘하게 어긋나고 긁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탐구된 정지된 얼굴들은 '겁을 먹은 얼굴'들로 투사되며 그것들을 바라보는 화가로서의 자신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장화홍련의 두 자매에서 영감을 얻은 「Girls」는 단순한 구도로 일견 투명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기만적인 느낌을 풍긴다. 산란하는 색채를 담은 산산이 부서진 붓질로 그려진 두 얼굴은 은밀히 열린 것처럼 보이는 두 입술을 통해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한다. 두 자매의 외곽은 급격히 스며든 핏빛 물감 위로 겹쳐져 있고, 따라서 배경이 갑자기 멀어지며 두 자매가 우리에게 소리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 그림의 색채는 문득 영원히 그 이야기의 진상은 알 수 없을 것임을 선언하는 듯 갑자기 우리와 거리를 둔다. 그 순간 이 얼굴은 어딘가 나를 얕보거나 혹은 반대로 나를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또 갑자기 내게 말을 거는 그들의 의도는 악한 동기를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스민다. 그 순간 몸이 서늘해지고, 오싹한 느낌이 스친다.

김유진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24
김유진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4

김유진은 이러한 오싹한 느낌이 주는 위협에서 물러나기 보다 연극적인 배우, 무표정한 모델, 서사를 연기하는 현실의 얼굴들을 찾아 이 관계를 가둘 방식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스스로의 몸을 기꺼이 내 주는 환대 속에 기꺼이 속아넘어간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어떠한 막 없이 생생한 살색을 드러내는 이미지에 붓질을 더듬거리며 다가가며 대상의 외곽선에서 머뭇거리다 다급하게 서사를 가둔다. ● 김유진은 최근에 자신의 몸을 직접 그려 넣었다. 유일하게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크게 확대된 몸은 어떠한 얼굴도, 몸의 형상도 온전히 비추지 않는다. 또한 붓질은 담담하게 대상만을 비추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전시된 작품 중 작가의 붓질이 가장 은폐된 몸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당당하게 어떤 상처들을 내보이고 있다. 마치 살들은 천을 기운 것처럼 갑자기 덕지덕지 발라져 있고, 상처들은 특정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긁었던 것처럼 보인다. 어떤 연유에서 인지 알 수 없지만, 드러낸 몸에서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마치 죽음이라는 단어는 유년시절과 달리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고, 먼 미래가 코앞에 다가올 정도로 가까워져야만 감각되는 것처럼, 이 상처들을 느끼기 위해서는 김유진이 느꼈던 과거의 시간과 욕망이 내 눈앞에 들어올 정도로 가깝게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불가사의한 애정의 투입이 야기하는 일방적인 생채기들은 김유진의 작업 속 원동력임과 동시에, 깊게 자리한 관객의 투입과 심리들을 끄집어 낸다. ● 모든 애착을 관리해야 하는 수고로움과, 모든 관계가 마치 모델로서 이용하는 몸과 같이 치환되는 무정함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서사와 애착의 포화상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포화상태는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감각을 무감각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적당한 시차를 가지고 시간을 늘인다면, 순간이 야기하는 정서들은 손에 쥐어질 듯 구체적이고 더 밀접한 것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한슬기

Vol.20240508b | 김유진展 / KIMEUGENE / 金宥辰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