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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RASA 서울 관악구 관악로29길 2 3층 www.instagram.com/___rasa___
닳아버린 좋은 향을 내는 그림 ● 향수를 뿌리고 시간이 흐르면 내 몸에서 뭔지 모를 미시감(Jamais vu)1)을 가진 향이 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일과를 보내며 시간이 흐른 내 몸의 향수들은 어떤 시점에 거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향이 없는 것도 아닌 대답하기 오묘한 그런 향을 낸다. 이 향은 향수의 향이 인위적이라거나, 너무 강해서 나타나는 거부감이 아니다. 분명, 이 향수는 인식되진 않았지만 좋은 향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미시감은 오랫동안 향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언뜻 느끼게 되는 찰나의 향기이자 이상한 불안감이다. 도시에서 마주치는 일상들은 크게 다를 것 없이 예상된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진 내 몸의 향기가 계기가 되어 갑자기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이 짧은 미시감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이 오묘한 향은 내가 어디에 있건 같은 주체로 느껴지게 하는 폐쇄적인 안정감으로 변하기도 한다. 김유진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미시감과 안정감을 오가는 향이 난다.
1. 김유진의 회화는 그가 찍은 수많은 디지털 사진 속에서 선별되어 회화가 된 것들이다. 김유진이 도시에서 모은 사진들은 음식(「Bloody Blueberries」, 「Cucumber Sandwich」, 「Apple Crumble」, 「Wine, Beer and Popcorn」), 작가가 간 장소의 소품이나 물건(「Cold Morning」, 「Baustelle」, 「Last Night」) 등등 지극히 평범한 들을 찍은 것으로, 작가가 직접 먹고 있는 중이거나, 그 현장을 거니는 1인칭 시점의 개인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앵글로 찍혀있다.
김유진이 선별한 사진에서 도시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구도의 사진이 그렇게 많지 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유진의 사진에서는 도시의 삶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작가의 먹고, 자고, 걷는 행동에 취향이 묻은 도시의 모습들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무심한 크라프트지에 담긴 애플 크럼블. 크림치즈와 소금, 후추로 맛을 낸 소박한 큐컴버 샌드위치.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바로 변하는 독일어로 쓰인 복합 공간인 '바우슈텔러(Baustelle)', 호텔 침구를 닮은 흰 이불과 남색 매트리스의 조화와 같은 선택은 똑같은 도시적 일상에 특정한 방향을 부여한다. 세련된 감각의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자신이 선택한 음식을 음미하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는 사진들은 작가가 놓인 자리나, 상황을 너무나 투명하게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사진은 언제든지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자취와 기록이 되어버리고, 이러한 사진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투명해 보이는 것만큼이나 거짓될 수 있다. 사진들의 아카이브 속에서 김유진이 느낀 "사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느낌"은 이와 같은 디지털 사진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2. 따라서 김유진은 디지털 사진을 회화으로 옮겨내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를 그는 '발굴과정'이라고 부른다. 이 발굴과정은 매일매일 일정 부분의 붓질을 소화하고, 분절된 오늘의 화면을 SNS에 올려 기록하고, 이 분절된 이미지를 거쳐 작품을 완성시키는 일련의 수행과 이미지의 순환(circulation)을 포함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사진은 더 이상 수정할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닌 확고히 고정된 그림이 된다. 마치 프랭크 스텔라의 회화처럼 「7:19」가 두꺼운 캔버스를 사용했던 것처럼, 각각의 그림들은 회화가 되며 고유한 사물이 될 것이란 김유진의 기대를 받는다. 사진을 통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취향의 방향을 드러낸 각각의 도시의 물건들은 무채색에 가까운 색이 되거나, 넓은 붓질과 빛에 부딪히며 김유진이 부여한 향을 입는다.
각각의 사물들에 관객에게 은밀히 스미는 순간의 향기가 남을 수 있도록 김유진은 유화기름을 적신 선적인 그림자로 대상의 형태를 둘러싸고, 대상을 고도하게 태우지도,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가지도 않는 무표정한 빛으로 대상을 훑어보면서, 차가운 유화물감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화면에 남은 사물들은 추출되고(macerate) 남은 잔여물처럼 기묘하게 변형되어 현실의 사물로 완벽하게 복구될 수 없다. 대신에 추출된 좋은 향만이 남는다. 작가가 그 상황에서 좋아했던 오이의 아삭한 식감에 더해진 상쾌한 향, 빵의 달콤한 냄새, 와인의 향긋한 포도향기, 카페를 덮는 햇살의 따뜻함과 고소한 커피의 향은 도시의 향으로 변형된다. 여기서의 사물들은 「무지개 스토어」의 매대에 놓인 같은 라벨을 두른 제각각의 사물처럼 작가의 순간을 담은 특정한 사물이면서, 서로를 닮은 도시의 향을 가진 고정된 사물들이 된다. 작품이 가진 기묘한 미시감의 순간은, 회화 속에 그려진 대상들을 각각의 본래 자리에 회복해내고자 하는 순간에서 온다. 하지만 사물들이 고정된 전시장의 공간 속에서 각각의 작품은 같은 향을 내는 친숙하고 폐쇄적인 익숙한 좋은 향을 낸다.
3. 과거 김유진은, 도시 생활에서 느끼는 생채기와 같은 자극들을 재현적인 화면 위에 유화재료의 물성으로 은유하는 방식을 사용했었다(「Scratching」). 이번 전시에서 김유진이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는 유화물감의 물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에서 사물들의 표정이나 제스쳐를 통해서 드러나는 인위적이고 미약한 '향'과 같은 것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제 「Bloody Blueberries」와 「무지개 스토어」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 화면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된 시점(perspective)을 보여주며 도시의 사물들과 인물들이 맺는 관계를 관조하는 여유를 드러낸다. 좋은 향으로 무장하며 이제 도시생활의 생채기들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인물들을 배치하고, 제스쳐를 수정해 특정한 태도로 고정하는 김유진이 사진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조용히 숨죽여(Breath-holding), 2022」처럼 입을 앙다문 작업자가 좀처럼 눈빛을 비추지 않는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이제는 생채기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으며, 사물들의 냄새에 덜 반응하도록 만드는 인위적인 향에 심취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스쳐 지나가는 것을 두고 어느 것에 집중해야 할지 골몰히 고민하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 한슬기
* 각주 1) 흔히 사용하는 기시감(Déjà vu)이 처음 보는 것을 전에 겪은 적이 있듯이 느끼는 것을 말하는 반면, 미시감(Jamais vu)는 프랑스어로 "never seen" 이라는 의미를 가져온 것으로, 인식한 상황을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Vol.20221106d | 김유진展 / KIMEUGENE / 金宥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