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

In homage to L'Imaginaire   김수진展 / KIMSUJIN / 金水珍 / photography   2024_0104 ▶ 2024_011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14.3×25.4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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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페이스북_www.facebook.com/jinbosujin

초대일시 / 2024_010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공휴일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 (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gallerybresson.com cafe.daum.net/gallerybresson

사진_저항으로서 변형 Transformation as resistance ● 김수진의 작업은 기존의 레이디메이드 이미지를 가져와 변형시킨다.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이다. 그중에서 뒤샹의 모나리자 그림엽서에 콧수염을 그린 「LHOOQ」(1919)와 여장 분장을 한 「로즈 셀라비 Rose Se'lavy」(1920~21)은 김수진의 작업 개념과 방식에 영감을 주었다. 워홀이나 뒤샹이 '드랙 퀸(drag queen)' 사진을 찍거나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와 작업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워홀이 주로 대중매체에서 생산된 이미지를 가져온 것처럼 김수진은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이미지 중에서 드랙 퀸과 킹(drag queen & king)의 이미지를 빌린다. 여기서 김수진은 이미지를 캡처하기 위해 마우스 드래그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것은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25.4×19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40.6×23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38×28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27×40.6cm_2023
김수진–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28×39cm_2023

이번 김수진의 전시 제목은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이다. 이 문장 역시 마우스로 이미지를 포착하듯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서 사르트르의 책 『상상계』에 대한 헌사 In homage to L'Imaginaire by Jean-Paul Sartre를 가져와 변형시킨 것이다. 이때 『밝은 방』 표지로 사용된 다니엘 부디네(Daniel Boudinet)의 사진과 매우 유사한 김수진이 촬영한 무대 위 커튼 사진은 드랙 쇼(drag show) 출연자의 얼굴 없는 하반신 사진과 짝을 이루고 공연이 펼쳐질 퍼포먼스를 궁금하게 한다. 여기서 커튼은 그 안쪽을 알 수 없는 아이리스(iris)의 베일과도 같다. 즉, 상상력의 원천이다. 김수진은 바르트가 왜 부디네의 커튼 사진을 표지로 사용했는지, 또 사르트의 『상상계』에 경의를 표하는 헌사를 남겼는지가 궁금했다. 공연을 위해 등장한 핑크빛 블라우스와 신발을 신은 하반신 사진은 바르트가 영화 카사노바를 인용하며 묘사하는 자동인형과의 춤을 연상하게 한다. 이 사진들은 바르트가 사르트의 『상상계』에 헌사를 표했던 것처럼 김수진은 바르트를 오마주(homage)한다.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90×50.6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90×50.6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90×50.6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90×50.6cm_2023

직접 공연장에서 찍은 이 두 장의 사진을 제외한 김수진의 이미지 캡처와 변형 작업은 대부분이 전체 이미지에서 얼굴만 부분적으로 잘라 가져오거나, 신체 일부만 보여주고 있어 그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작업은 인물들의 초상을 제외하면 그 배경은 지나칠 정도로 장식적이며 화려하다. 오히려 드랙 쇼의 등장인물들은 초점이 흐릿하기도 하며 주변부의 요동치는 인쇄 망점 같은 픽셀들은 선명해서 형상과 배경이 뒤바뀐 듯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추상적 형태의 주변부보다는 인물에 시선을 집중시켜 보려는 심리적 상태와 충돌하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녀와 그들은 누구이며, 김수진이 이 작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모든 사진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사진에 찍혀진 이미지만으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 앞에서 언제나 텍스트에 의존하거나,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수진의 모든 작업이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아니다. 워홀이 마릴린 먼로의 흑백사진을 가져와 컬러 실크스크린으로 변형한 것처럼 김수진은 퀴어(queer)예술의 시금석이 되었던 피에르 몰리니에르(Pierre Molinier)의 「샤먼 Le Chaman」(1968)과 성정체성이 의심되고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아자무(Ajamu)의 셀프포트레이트 「은색 하이힐 Silver Heeis」(1993)의 흑백사진을 특정 부분 컬러로 변형시켰다. 특히 이 사진은 포스터로 사용되었다. 김수진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행위와 텍스트를 변형시키는 과정은 앞서 뒤샹의 작업이 미술의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언어유희적 차원에서 작품을 제작한 행위와 일치한다. 그러니깐 김수진은 포토샵프로그램 장치를 마치 카메라처럼 다루면서 텍스트를 이미지화하고 이미지를 텍스트화하는 조각난 퍼즐게임을 즐기듯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때 상상력의 힘은 논리적 사고와 구별되는 정답이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50×39.8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60×47.7cm_2023
김수진_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_피그먼트 프린트_50×1.1cm_2023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그림을 사용하면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매체로서 그림은 이 세계를 표상하면서 암호화하고 추상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림이 지시하는 세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자를 발명한 이후부터는 인간은 상상력을 문자가 만들어 내는 규칙, 개념적 사고 의식으로 바꾸면서 상상력의 힘을 잃어버렸다. 상상력의 힘을 다시 찾을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바로 사진의 등장이다. 사진 또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아직 상상력의 완전한 힘을 복원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오랫동안 문자의 사용으로 인해 습관화된 우리의 개념적 사고 의식은 그림의 일종인 사진을 볼 때조차 상상하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해서 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사진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고 개념적 사고 의식으로 표상된 그림 속에 갇혀 그림이 지시하는 진짜 실제의 세계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즉, 사진은 고도로 추상화되고 암호화된 블랙박스처럼 그것의 해독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플루서는 현대사회를 암울하게 진단하면서 블랙박스를 양산하는 장치프로그램과 같은 사진을 위해 노동하는 인간은 자유가 없고 주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에 플루서는 장치프로그램에 맞서 저항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 대안으로 체스 게임을 하듯 유희하는 사진가를 추천한다. 장치 때문에 지배되는 세계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진가는 메타적으로 숙고하는 것이 의무이며 그와 같은 종류의 철학은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김수진은 플루서가 요구하는 사진가에 가깝다.

그녀가 선택한 드랙 쇼의 주인공들은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잃어버린 정치성을 복원한 쿼어미학으로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 언젠가 김수진 작가에게 이 작업을 왜 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드랙 쇼의 등장인물의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정확히 그녀의 심리를 알 수는 없으나 왜 바르트가 그토록 인물사진에서 시선을 강조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사진에서 시선은 타자와의 강렬한 마주침이다. 이것은 타자의 시선에 내가 노출되는 것이며 내가 수동적으로 보여지는 대상이 되어 나의 정체성이라 믿고 있는 주체는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그 후로도 김수진의 작업은 드랙 쇼의 그녀와 그들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거나, 쿼어미학의 정치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그녀의 관심사가 이번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르트를 읽고, 플루서의 이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것이고 그것의 예술형식에 대한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 이영욱

Vol.20240104b | 김수진展 / KIMSUJIN / 金水珍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