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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1214_목요일_03:00pm
2023 청주시립미술관 김복진미술상 수상작가展
주최,기획 / 청주시립미술관
관람료 / 성인(19~64세) 1,000원 청소년(13~18세) 700원 / 어린이(7~12세) 500원 기타 자세한 사항은 ▶ 홈페이지 참고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청주시립미술관 CHEONGJU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렬로18번길 50 (사직동 604-26번지) Tel. +82.(0)43.201.2650 cmoa.cheongju.go.kr
김영원의 인체조각 : 동양 사유를 구현한 탈근대적 인체형상 - 제1회 '김복진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붙여 1. 들어가며 ● 제1회 '김복진미술상'은 조각가 김영원(1947년생)이 수상하게 되었다. 정관 김복진(井觀 金復鎭, 1901~1940)은 한국 근대조각의 문을 연 작가로, 그의 고향 청주시에서는 그의 작품세계와 높은 예술정신을 기리고자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준비해왔다. 청주시립미술관은 청주 미술단체와 함께 2021년 초부터 본격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김복진미술상'을 제정하였으며, 2023년에 그 첫 수상자로 김영원을 선정했다. ● 김영원은 미술 비평과 교육 등 미술계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김복진의 예술세계와 맞닿아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제1회 '김복진미술상' 수상자로서의 상징성이 크다. 김복진은 김제 금산사 미륵대불 같은 불상이나 동상을 제작하면서도 조선미술전람회에 사실적인 인체조각을 꾸준히 발표하여 조각을 독립된 미학을 지닌 예술로 확립시켰으며, 이로써 한국 근대조각의 문을 열었다. 김영원 역시 동상을 제작하면서도 기존의 인체조각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인체조각을 표현함으로써 현대조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글에서는 김복진과 김영원이 인체조각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예술세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2. 김복진, 한국 근대조각과 근대 미학의 토대를 마련하다 ● 한국조각사에서 김복진의 무게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1959년에 이경성은 「한국조각의 근대적 과정」이라는 글에서, 근대기에 조각이 예술로 독립성을 확립하기까지 많은 곤란을 겪었으며 조각이 예술이 되는 데 필요한 자율적인 법칙이 결핍된 상태에서 서구의 조각 개념이 타율적으로 수용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언급한다.1) 이경성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김복진이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서양식 조각을 연구하고 또 그가 귀국한 후 많은 후배를 양성함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의 근대조각은 그 출발을 하게 되었던 것"이라며 김복진 작품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 김복진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사실적 수법을 딴 소위 그가 공부한 관학적인 작품이었으나 조각을 비로소 미술로서 의식하고 온갖 조형의 문제가 흙과 석고, 나무, 돌, 금속 등에 의해 표현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일으키고 한국의 근대조각을 출발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자못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좀처럼 미술의 대접을 못 받던 조각예술이 김복진의 서양 조각의 연구 도입 이래 새로운 미술로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는 토월미술연구회 및 고려미술원, 청년학관(YMCA) 미술과 등에서 서양식 조각을 敎授하여 이 방면이 계몽과 개발을 위하여 초기적인 작업을 하였다.2)
근대조각의 선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김복진의 위상에 대한 이경성의 평가는 이후 연구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복진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일본에 건너가 조각을 공부함으로써 전통조각이 지닌 종교적 제약에서 벗어났고, 조각이라는 장르를 독자적 조형 원리와 평가 기준을 가진 예술로서 정립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 그렇다면 김복진이 조각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복진이 1940년에 쓴 「조각생활 20년기 : 스승과 지기와 내 성격을 아뢰는 편지」를 통해 그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인 휘문고보 시절,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기술과 창의만은 신중"히 하였고, 톨스토이를 읽으며 예술에 대한 꿈을 꾸면서 영화, 연극, 문학, 철학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법률 공부를 약속하고 부모의 허락을 받아 일본에 건너간 그는 우에노 공원을 지나다 구경한 '일본미술원 전람회'에서 「노자」라는 석고 채색 조각상을 보고 조각을 전공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자」라는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이 작품의 어떤 면에 김복진이 감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이 사건을 그저 '우연'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숙명'처럼 최선을 다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3) 그가 조각을 전공한 것은 아마도 황무지에 가까운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선각자적 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복진의 조각작품은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양식이 주를 이룬다. 한국 전통조각에는 존재하지 않던 사실적인 인체조각상을 제작하여 미술전람회에 출품한 결과 순수미술로서의 조각이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면 김복진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예술세계는 무엇이었을까? ● 김복진의 조형관 내지 미의식은 작고하기 불과 몇 달 전에 쓴 「朝鮮彫刻道의 向方 – 그대로 독자의 변」이라는 길지 않은 글에 함축되어 있다.4) 우선, 꿈에 나타난 동경미술학교 선생의 말을 빌려 주문품이나 동상 제작에 청춘을 보내지 말고 "똑똑한 조각 만들기에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조각의 원리는 추사의 서예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례 균형의 규약, 필치의 생리적 심리적 통정(統整), 감각 충동의 전달, 배포(配布) 구조의 합리성, 이런 모든 조형 충동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글씨의 '조형미'이고, '조형미'가 있어야 진정한 예술이며, 나무, 돌, 금속 등의 재료로 표현되는 예술인 조각에서도 서예와 같이 열 이상 무한의 '옥타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휘문고보 시절부터 톨스토이에 관심을 갖고 '예술이 무엇인지'를 깊이 통찰해온 그가 추사의 글씨를 거론하면서 한국 조각가가 추구해야 할 길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아쉽게도, 근대 미학을 정립하고 동양미술사 집필하려는 그의 계획은 때 이른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김복진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조각이라는 분야에서 한국 고유의 조형미를 탐구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한국 근대조각의 태두이다.
3. 김영원, 동양 철학적 개념을 시각화하다 ● 김영원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50여 년 동안 인체조각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세대 조각가들은 대부분 사실적인 조각을 하다가 추상으로 선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김영원은 인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형화해왔고, 그의 독특한 인체 해석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13년에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세계적인 인체조각가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와 2인전을 열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전시기획자이자 비평가이며 미술사가인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이 기공명상의 결과로 나오는 김영원 작품들을 직접 보고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한 글을 뉴욕의 미술 전시리뷰 전문 잡지(on-and-offline)인 Brooklyn Rail에 기고하기도 했다.5) ● 김영원은 사실적 인체 조각을 제작하여 《대학미전》과 《국전》 등에 출품하면서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다. 산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암울했던 1970-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비껴갈 수 없었던 그는 「중력 무중력」이라는 명제 하에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이고 은유적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냈다.
한국사회의 격변기였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김영원의 작품 경향도 파격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킬 만큼 이상화된 인체상을 제작한 후에, 이를 과감하게 깨뜨려 파편화시킨 다음 이 파편들을 다시 조합하여 복원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과감한 해체'라는 극단적 부정을 통해 그는 신체성과 정신성을 초월하는 절대적 긍정의 세계에 이르고자 했다. 해체와 복원의 시기는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참여적 성격이 강했다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 특히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에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기공명상 수련을 예술작품으로 연결하면서 시작되었다. 6) 기공명상의 수련을 예술 행위와 일체화하면서 불이사상(不二思想)을 창작의 기조로 삼았고 나아가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를 해체한 포스트모던 개념의 미술로 발전시켰다. ● 2000년대에 이르면 또 한 번의 변신이 있었다. 기공명상에서 생성된 에너지인 비가시적인 '기(氣)'와 참선하는 모습으로 가시화된 사실적인 인물상을 융합하여 전혀 뜻밖의 인체 조각상을 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이다. 정면 중심의 인체 부조를 3차원의 공간 속에 세운 작품으로, 전면은 입체적이지만 뒷면은 텅 빈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마치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부조 형식으로 표현된 인물상을 사방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어디에서 보더라도 작품의 정면이 되고 또 후면이 되는 독특한 인체상이 되었다. 그리고 인체 조각상이면 으레 드러나게 마련인 성별조차도 초월해 있으며 인체상의 표면을 매우 매끈하게 처리하거나 표면에 화려한 색채를 덧입힘으로써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이와 같이 인체를 자유롭게 절단하고 재조립하여 제작한 인체상은 부조와 환조, 앞면과 뒷면, 음과 양, 현실과 초현실을 융합함으로써 기성의 모든 인체조각 개념을 초월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 불교의 색즉시공( 色卽是空), 주역의 음양관( 陰陽觀) 같은 세계관을 사유한 결과물로, 한국 인체조각의 흐름은 물론 서구 조각사의 인체표현을 넘어서는 독창적 해석을 보여준다.
4. 나오며 ●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 통용되던 'sculpture'라는 예술 개념이 서세동점의 물결을 타고 19세기 후반 일본에 도착한 이래, 20세기에는 한국에서도 '조각(sculpture)'이라는 세계 보편적인 용어와 개념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는 불과 100년 전, 김복진이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흔히 조각은 회화에 비해 10년쯤 뒤처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대미술에서 조각만큼 혁신적인 장르는 없다. 종교적, 의례적 목적에서 제작된 불상과 무덤석물이 전부였고, 창의성보다는 장인의 솜씨가 더 중요시되던 한국 사회에서 사실적인 누드 인체상을 '작품'으로 인식하고 공적 공간에서 감상한다는 '예술로서의 조각' 개념은 김복진 같은 선구자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조각'이라는 낯선 씨앗을 척박한 땅에 뿌린 김복진 덕분에 윤승욱(1915~1950), 김종영(1915~1982), 김경승(1915~1992), 윤효중(1917~1967) 같은 제2세대 조각가가 탄생할 수 있었으며, 해방 이후 미술대학이 세워졌을 때도 조각이라는 장르가 깊은 전통을 지닌 회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김영원은 "이번 수상은 우리나라 조각예술의 개척자 정관 선생이 꿈꿔온 한국 근대 조각사를 정립하는데 더 열정을 기울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며 "앞으로 우리의 조각 예술이 세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7) 이는 비단 김영원만의 바람이 아니라 한국미술계 전체의 소망일 것이다. 그리고 '김복진미술상'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이순
* 각주 1) 이경성, 「한국조각의 근대적 과정」, 『한국문화연구원 논총』 1권(1959); 『한국근대미술연구』(동화출판공사, 1975) pp. 107-146에 재수록. 2) 위의 글, p. 112. 3) 윤범모 최열 엮음, 『김복진 전집』(청년사, 1995), p. 210. 4) 김복진, 「朝鮮彫刻道의 向方 – 그대로 독자의 변」, 『동아일보』(석간), 1940.5.10. 5) Robert C. Morgan, "Kim Young Won," The Brooklyn Rail: Critical Perspectives on Arts, Politics, and Culture, 2023, June. 6) 김영원은 기공명상 수련과정에서 기(氣)의 흐름에 따라 반응하는 몸짓과 그 몸짓의 흔적을 작품으로 남긴다. 때로는 춤사위처럼 때로는 무술 동작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 흔적을 원기둥에 남긴 작품은 「조각-선(Sculpture Zen)」과 「드로잉-선(Drawing Zen)」으로, 그리고 캔버스에 남긴 작품은 「명상드로잉(Cosmic Force)」으로 분리해서 명명되고 있다. 7) 굿모닝충청(www.goodmorningcc.com)
Vol.20231213g | 김영원展 / KIMYOUNGWON / 金永元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