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

양대만展 / YANGDAEMAN / 梁大萬 / painting   2023_1201 ▶ 2023_1213

양대만_조용한 빛 Quiet Glow_오래된 사진 액자, 벨벳에 유채_78×188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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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만 블로그_yangdaeman.blogspot.com 인스타그램_@daemanya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아트필드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8:00pm

아트필드 갤러리 1관 ARTFIELD gallery Tel. +82.(0)10.5218.7859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9길 2-1 www.artfield.co.kr www.facebook.com/artfieldgallery @artfield_gallery

불면의 밤, 숲을 걷는다. ● 저녁 노을이 지면 / 신(神)들의 상점(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 성(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 누구나 사원(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 신비로운 그 城 / 어느 골동품 상인(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 그곳에는........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城)에 살고 있다 /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기형도 「숲으로 된 성벽」

양대만_Feel Flows_리넨에 유채_130.3×162cm_2023

1 고전과 낭만의 숲에서 ● 미술사를 뒤적이면 접하게 되는 밤의 마술사들이 있다. 스페인 화가 고야의 검은 밤, 세계를 잡아먹는 외눈 거인의 회화는 유럽 세계를 잡아먹으려는 광폭한 욕망의 폭력과 전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공포를 넘어서 신비한 경험을 제공한다. 하나의 대상에 몰입하는 하나의 눈만이 거인에게 주어진다. 외눈은 복수의 눈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경지의 체험을 준다. 두 눈이 현실과 이상을 모두 보려 한다면 외눈은 현실이든 이상이든 오직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보려 한다. 마치 외과 의사나 시계 마스터의 외눈 안경처럼 세계의 깊고 섬세한 작동원리를 보기 위해 외눈으로 보는 것이다. 고야의 거인은 검은 대지를 천천히 걸으며 세계를 잡아먹는다. 밤의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은 아니쉬 카푸어처럼 깊은 어둠을 홀로 독점하려는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눈을 아무리 감아도 완전한 어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완전한 어둠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검은색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갈등과 투쟁은 자연스럽다. ● 한편 개인이자 예술가의 탄생을 알려준 렘브란트의 거대한 집단 초상화 '야경'은 신실한 종교적 믿음과 세속적 이해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시민군의 얼굴을 모아놓았다. 누군가는 용기와 희망을 또 누군가는 겁과 절망을, 또 누군가는 의혹과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명의 복수의 초상은 한 개인을 초월해 집단적 인간의 깊은 내면의 초상이기도 하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양대만 작가의 이미지에는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검은 이미지는 심미적 형이상학의 우주로 우리를 빨아들인다.

양대만_Feel Flows_리넨에 유채_90×130.3cm_2023

양대만 작가의 풍경은 해가 진 밤의 성(城)을 떠올리게 한다. 해가 지면 성(城)은 검은 그림자를 키운다. 카프카의 소설 '성'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성은 개인을 위압한다. 사람이 떠난 관광지가 된 유럽의 성은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관광객 아니면 유령들이 성의 주민들이다. 오래전부터 세계를 성과 도시로 은유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성은 곧 부역을, 가족과의 이별을 뜻한다. 성을 짓기 위해 부역자로 나서는 남편과 아버지를 아들을 기다리는 가족의 애타는 슬픔과 그리움과 한(恨)의 심정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어둠이 내린 거대한 숲과 성은 험한 세상살이를 의미했다. 성(城)은 그런 것이다. 성은 인간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위압한다. 성안에 있든 밖에 있든 다르지 않다. 인간이 개인이 되는 순간 성은 거대한 거인이 되거나 공포와 미스테리한 숲을 닮아간다. ● 작가는 깊은 마티에르와 어둠의 부드러움을 품은 검은 천 위에 그림을 그린다. 천의 표면은 눌리고 미끄러지고 천의 올들이 미세하게 튀어나오는 질감을 담고 있다. 음악적 리듬과 운율이 어울리는 표면을 저절로 구성한다. 검은 융은 세계를 가르는 검은 장막이다. 중세를 바라본 근대인의 시선을 가린, 근대인을 바라본 현대인의 시선을 가린. 우주적 규모의 블랙홀처럼 세계를 집어삼키고 갈라치는 거대한 장막이다. 화가들의 검은 이미지는 이런 검은 장막처럼, 작은 블랙홀처럼, 요나를 삼킨 고래의 검은 뱃속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킨다. 고야의 거인이 인간을 입에 집어넣듯. 검고 두꺼운 이미지의 숲을 따라 걸어가는 유령들처럼. 양대만 작가는 이미지 안에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기묘한 빛의 꽃과 풀이 하늘거리는데 마치 유령처럼 창백하다.

양대만_조용한 빛 Quiet Glow_오래된 사진 액자, 벨벳에 유채_53.5×63.5cm_2023
양대만_조용한 빛 Quiet Glow_오래된 사진 액자, 벨벳에 유채_55.2×65cm_2023

2 검은 빛, 검은 숲 ● 밤을 둘러싼 깊은 감정과 사유를 자주 본다. 검은 밤은 특히 창작자들의 심미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섬세한 감각을 되살리며 일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낸다. 어둠 속 동굴의 비유를 떠올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고뇌. 고난을 앞둔 영적 지도자 모세가 고대 이집트의 궁정에서 바라본 한없이 무겁고 축축한 어두운 밤. 시인들, 현인들에게 밤은 빛의 결핍이 아니다. 존재의 빛이 과잉되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강렬한 빛으로 빛나는 세계의 그림자에 가려져 버려 어두운 것이다. 크고 깊은 어둠은 그러므로 크고 깊은 세계의 출현이다. 검은 이미지는 사랑과 죽음을 두 손에 쥐고 오랫동안 선택과 결단을 기다리던 인류의 무수한 밤을 떠올린다. 작가는 화구를 들고 홀로 숲을 걷고 산을 오르고 내려간다. 검은 밤, 검은 산 주위로 회화 이미지가 운무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 기형도의 '숲으로 된 성벽'을 우리는 어두운 도시의 성벽 같은 건물들과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는 길을 따라 복잡한 도형을 그리는 그림자, 유달리 길고 기괴한 그림자의 형상에서 경험한다. 우리는 성안과 성 밖에서 성벽을 경험한다. 숲으로 된 성벽은 마치 숲으로 만들어진 어두움, 세계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와 물질주의가 거인처럼 세계를 종횡하며 사람들을 잡아먹는 우리의 일상을 그 이미지를 양대만 작가는 기형도의 시에 빗대어 동조(同調)한다. 이미지의 근친상간을 낳는다.

양대만_Feel Flows_리넨에 유채_45.5×53cm_2023
양대만_Feel Flows_리넨에 유채_45.5×53cm_2023

당신은 짙은 어둠에 싸인 숲을 걷는다. 밤은 당신의 마음속 숨은 살을 드러낸다. 밤은 빛으로 가득하다. 밤에 비로소 세계의 속살이 드러난다. 세계의 진실은 이미지와 만나 진득한 질감으로 당신의 촉각이 돋는다. 시각으로만 세상을 볼 수는 없는 법. 우리의 귀는 밤의 세계를 듣는다. 검은 숲은 수많은 풀벌레, 밤새들의 소리로 더욱 소란스럽다. 깊은 밤을 지내는 생령들의 흐느낌과 뒤척임으로 가득 찬다. 생령들은 밤을 호흡한다. ● 불면의 밤. 이미지는 짙은 어둠, 숲은 검은 그림자. 붉고 푸른 조명이 꽃과 나무와 풀을 비춘다. 어둠은 천천히 배후로 물러서는 듯 움직이다 다시 다가온다. 찬찬히 느껴보라. 밤이 없다면, 세계가 빛으로만 채워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추레했을지. 모두가 잠든 밤 거꾸로 세계는 잠에서 깨어난다. 소리 없이 날개 짓하는 부엉이처럼,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 김노암

Vol.20231202d | 양대만展 / YANGDAEMAN / 梁大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