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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3 전문예술 창작지원사업展
주최,주관 / 김도영 후원 / 세종특별자치시_세종시문화재단 아트허브_토지문화재단_키즈엠(발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박연문화관 Park Yeon Cultural Center 세종 갈매로 387(어진동 593번지) 1층 Tel. +82.(0)44.850.0537 www.sjcf.or.kr
문학적 서사로 빚은 기억, 한옥에 새긴 우리의 이야기 ● 1. '정서'(情緖)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분 내지는 감정을 뜻한다. 세월에 잊히거나 소외된 어떤 상황 등을 광범위하게 소환하는 촉매다. 예술가는 이러한 정서를 경험에 얹힌 내적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다. 관객과 묘사된 주제를 연결하기 위한 심리적 기제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화자가 지닌 정신과 예술관 등을 공유하게 된다. ● 작가 김도영 작업의 특징은 한국 주거문화의 거푸집이자 인간 공동체의 원형(原型)이기도 한 전통가옥(한옥: 韓屋)을 통해 작가의 사고와 감정을 포함한 의식적 경험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공간에 대한 이해 외에도 인간 삶에 관한 작가만의 인지와 느낌, 주관과 행동경향이 모두 녹아 있다. 따라서 그의 건축물은 개인적 자극에 대한 반응이지만, 경험과 추론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야기'의 연쇄적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건축물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이야기'에만 있지 않다. 겹겹이 쌓은 분채와 다시점의 구도를 통한 '의미'에 의존한다는 게 옳다. 그의 '한옥'은 전통적 한국 건축 양식을 사용한 재래식 집을 밀도 있게 그린 것임에도 사적 범주가 아닌 구성원 간 다양한 정보교류의 장이면서, 공동체의 생활특성을 함축한 공간이라는 점에 무게를 둔다. 삶의 거소(居所)이자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형식 및 격식을 보여주는 상징역할도 한다.
한옥이라는 건축물이 지닌 '의미'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일 수 있는 적합성의 문제와 맞닿는다. 적합성은 이야기의 확장성을 담보한다. 즉 '사이가 난 자리와 삶의 행간'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선 삶의 행간이 돋보인다. 부감법과 평원법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축물이 그렇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마당이 그렇다. 이곳에선 대나무 숲을 지나다 멈칫하는 바람의 고요를 느낄 수 있고, 기하학적으로 처리된 처마선과 시선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마루와 시공이 교차하는 문, 시야를 가리지 않는 담장 등에서 정겨움,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이들 작품은 시(詩)적이면서도 수필 같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다. 이를 '문학성'이라 정의한다면 김도영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문학적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 시골 외갓집에서의 추억을 밑동으로 하되, 현재에도 여러 고택이 존치되고 있는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장년 시절을 보낸 작가에겐 익숙할 수 있는 한옥마을에 대한 기억들이 직접 발로 디뎌본 고택 등의 한옥들과 어우러져 작성된 에세이인 셈이다. ● 정서적 공명 1) 역시 이와 같은 특유의 문학성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기억을 거닐다」(2016)와 「안녕하세요」(2016) 등이다. 평행의 도상 아래 다양한 사물(책과 한복, 부채, 악기, 식기 등)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들 작품은 우리 건축물의 절제미와 함께 '사이가 난 자리와 삶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어릴 적 그림을 그리던 흔적, 꿈도 새겨져 있다.
2. 행복함이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공포와 불안은 부정적인 영역에 속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2) 그의 '한옥'은 전자에 해당된다. 일단 서로 우열을 가리지 않는 채색만으로도 화사함을 포박한다.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채색화임에도 잔잔한 여울이 있다. 그만큼 잔상도 깊다. ● 하지만 그의 색은 다분히 고의적인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지정하는 조형적 방법이기도 하다. 동시에 밝은 미래를 덧칠할 수 있도록 하는 이중적 의도 또한 깔려 있다. 시공의 단락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호연함을 담고서」(2020)에서 확인되듯 김도영 작업의 또 다른 맛은 넉넉한 여백 3) 에 있다. 「안아 주세요」(2020)와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2018) 등도 마찬가지다. 여백은 구도를 가르고 그로인한 '비움'은 실제 대상의 채움을 유도한다. 사물과 관점은 현실의 공간과 그림 속 공간을 이어놓는다. 관람자들은 그 공간 속에서 밀려오는 내면의 감동을 전달받게 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의 의도처럼 시공간을 초월한다. 이밖에도 여백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명상적인 시간을 제공한다. 비움의 '무한함'과 비워짐으로 인한 '충만함'이 수반된다. 이 충만함을 '사유적 여백'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부드러운 채색과 사유적 여백은 "한옥의 형상을 재현하거나 풍경의 한 장면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한옥이 주는 정서에서 비롯한 풍류적 사유"에 근접하게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가 한옥과 대화하길 바라고 다시금 그들의 마음 풍경이 되기를 기대하는" 4) 작가의 의중은 완성된다. ● 김도영의 작품은 한국적 보편정서를 반영하면서도 정연한 미적 완성도를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미적완성도는 사물에 대한 작가의 예민한 시선에서 개간되고 상상력을 덧댄 세밀한 붓질에서 확연해진다. 작가는 그 세밀한 붓질을 통해 '한옥'의 재현이 아닌, 감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공의 조화를 생성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그림에 배어 있는 시공은 희석되어버린 가시성을 들춰내며, 교류되는 세월과 간극, 기억과 실체라는 양자적 관념 속에 존재해온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이것이 가리키는 건 결국 하나의 사변적 풍경, 경험, 기억, 존재 등의 명사를 평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분명한 사실의 한 풍경일지라도 그 너머의 세계로 관람자를 이끌면서 재현의 사실적 풍경은 해체되고 재조립된다. ●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세세하게 덧칠된 주관적 조작의 흔적과 과정을 통해 회화의 재현기능을 되살리면서도 가시적 실체와 시간의 층위를 접합시킨다. 시각 아래 각인되는 유무형의 그 어떤 것이 시간의 자국과 매우 강하게 교차한다는 것, 망막으로 확인되는 물리적 환경 자체를 현재로 소환한다.
3. 김도영은 과거든 현재든 분명 존재했던(존재하는) 것을 그림으로 남기지만 화상으로 남는 것은 비현실의 세계가 드리워지는 것이자, 그 비현실의 세계는 곧 실재와 비실재 간 거리감을 왕복한다. 그러나 파란 지붕 위를 종이비행기가 두둥실 떠있는 작품 「맞닿은 기억들」(2016)처럼 그 거리감은 우리에게 곧 도달할 것이면서 다시 비현실의 세계를 현실화하는 것과 갈음된다. ● 그중에서도 그의 주된 소제인 '한옥'은 현실의 기록이자 사물 혹은 대상을 환기시키는 매개다. 환기 내에는 (앞서 언급한)존재하는(해온)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 현재를 기반으로 한 현실과 어쩌면 잊혀져버린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목도되는 것과 내재된 것의 무게와 위치를 바꿈으로써 고정적 사고와 답습된 가치마저 무력화시키는 작가의 의도가 스며있다. 이곳엔 시간의 품 안에서 광범한 연계(連繫)로 드러나는 것이 자리하며 전환 방식을 이용한 시각언어, 파편화된 사고의 유연한 연결과 유영이 위치한다. 이는 김도영 작품의 매력이다.
한편 근작에서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매체의 확장성이다. 1997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작가는 기존 평면 외에도 설치작업과 영상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장르의 경계를 무력화한 채 가변적이고 공간 장악력이 훨씬 강한 설치미술의 일환으로, 특정한 스타일, 유행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는 현상은 동시대미술의 경향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이다. 5)
오는 8월 9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되는 '박연문화관'(세종시)에서의 개인전(한 걸음마다 하나의 풍경 Ⅱ)에도 한지에 우리 글을 입힌 공간 설치, 사운드아트, 모션 그래픽 영상을 선보인다. 시대변화에 맞는 언어를 찾아가는 것, 작가 김도영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새로운 조형방식에 관한 또 다른 탐구요 일종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오늘날의 한국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이란 인간과 자연 세계에 대한 탐미, 사색의 미,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포용 등이다. 윤동주의 서시와 노랫말 아리랑,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을 소재로 한 한옥 등의 작업에서 열람되듯 인문학적 문기와 품격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모두 형식상의 유사성이 아닌 '비가시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정신성이다. 이러한 정신성을 지속하면서도 형식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치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표현 영역을 어떻게 넓힐 것인가에 관한 의지는 당대 예술가에게 의미 있는 바람이다. 그러하려면 당연히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넘어 '시각예술'이라는 보다 커다란 통합적 무대로 진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동시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세심한 고찰이 요구된다. 다행히 작가는 전통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예술로서의 확장을 꾀하는 작업을 잇고 있다. 고무적이다. ■ 홍경한
* 각주 1) 예술가는 세상 모든 것의 수용을 미적 선택이라는 그물을 통해 분별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진동과 진폭을 확인하곤 한다. 이것을 우린 흔히 '공명'이라 부른다. 즉, 그 무언가와 조우했을 때 내적 진폭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바로 '공명'인 셈인데, 김도영에게 집은 '이야기' 가득한 미적 대상이며 동시에 시대적 상황과 변모를 강조할 수 있는 주제이다. 물론 스스로의 경험에 기댄 조형언어이기도 하다. 2) 당시부터 한옥에 한글 자음을 넣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3) 여백은 한국화에 자주 소용되는 조형원리다. '충만한 여백'이란 표현도 한국화에서 종종 쓰인다. 그의 작품에서도 '충만한 여백'은 합당하다. 그것은 시원한 공간감을 내뿜는 여백, 발색의 잔향을 가득 품은 흐름은 주어진 공간 속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며 화면에 스며든다. 김도영의 작품은 대상에 대한 의도적인 비움(기억, 추억 등의 흐릿함을 상징하듯)과 새로우나 보이지 않는 채움 아래 실행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인식은 그의 작업을 인상짓는 단초다. 4) 김도영 작가노트 중. 5) 모르긴 해도 이는 김도영의 작업들을 민화나 디자인, 일러스트로 묶는 그동안의 인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리라 여겨진다.
Vol.20230809a | 김도영展 / KIMDOYOUNG / 金度英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