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

김진열展 / KIMJINYUL / 金振烈 / painting   2023_0517 ▶ 2023_0530

김진열_그물질_혼합재료_72×83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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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투박한 존엄, 그 생명의 모심 ● (...전략...) 김진열의 작업은 투박하다. 몸의 궤적을 반영하는 제작 방식은 다듬어지지 않은 물질과 붓질의 아우성이자 생생한 향연이다. 디테일을 생략한 채 이르고자 하는 주제로 향하는 작업 과정의 거친 직접성과 함께, 해체되었던 폐물들이 재 조립되며 다다른 저부조 단층의 어긋남과 분칠하지 않는 날 것의 표현성은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 기실, 지난 40년간 김진열이 사용한 재료를 일별해보면 그의 회화적 스타일이 그만의 독특한 체질과 감수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볼 수 있다. 찢어발기듯 형태를 구축하는 두터운 골판지 베이스에 붙인 예리한 금속판 조각들과 그 표면을 거침없이 지나다니는 큰 빽붓의 흔적이 원시적인 뉘앙스를 불러일으키는 작품(80년대 중반). 한지와 기타 전단지 같은 종이를 겹겹이 이어 붙이면서 구축한 이웃 사람들의 형상과 페인팅(90년대), 그리고 폐지를 재생한 두터운 압축 판재와 남해 바다 '연도'란 섬에서 수거한 녹슨 철판들로 구성(2010년대 작품)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버려진 폐기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김진열_버려진 것을 거두어들이니_혼합재료_56×84cm_2023

용도를 다한 채 낡고, 찢어지고, 구겨지고, 휘어지고, 벗겨지고, 녹슬고, 갈라지고, 버려진 쇠락한 사물들. 그런 폐물들의 상태를 수용한 뒤, 조합하고 연결하고 접착해서 만든 형태에 가한 거침없는 드로잉으로 김진열의 회화의 과정과 결과는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잘 설계된 현대적 건축물보다는 즉발적으로 쌓아 올린 토담과 너와 지붕의 조합처럼 그 구조는 간결하되, 한편으로는 만만치 않게 안락하고 튼실한 주거지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삶과 조형의 경험과 힘, 거기에 물성의 일상적 체험이 바탕이 되었을 때 가능한 직관적 표현성이라 하겠다. ● 그러면 김진열은 어째서 일반적인 사각형의 캔버스로부터 일탈한 채 불규칙한 쉐이프트 플레이트(Shaped Plate)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의 독특한 감성이 그 단서가 된다. 김진열은 기하학적인 요소에 강박이 있다. 언젠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가 한 말이 단서다. 수학적 수치와 계산에 의한 도형의 직/곡선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고 반복되는 현대적 건축물과 같은 공간이나 환경에선 질식할 것 같다는 것. 적당히 낡고 벌어진 시골집 창틀 같은 틈이라야 비로소 숨을 쉬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거칠고 삐뚤빼뚤한 폐기물들의 표정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자신의 감성을 덧입히고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의 조형 방식인 이유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폐기물들은 그의 이런 감수성을 대변하면서 몸의 궤적으로 표현하는 페인팅의 주요한 어휘이자 감각의 원소가 된다.

김진열_먼 곳_혼합재료_90×42.5cm_2023

김진열은 이런 자신의 감수성을 "강원도스럽다"는 말로 비유한다. 모든 존재와 생명은 자본·권력·제도·관습과 인위적 상하·귀천의 구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 자체의 순연한 활동에 의해서 생로병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물활론(物活論)적 토대가 작품의 결과론적 이미지로 전치(傳置)를 이루는 미적 특성을, 김진열은 그의 정서적 원형인 강원도라는 지역적 특성과 기질로 비유한 것이다. 꾸미거나 가공하지 않은 이 "강원도스러움"이야말로 사물과 생명 사이 통일을 이루는 '자기 생성(autopoiesis)'의 과정이자, 그가 진술하려는 생명성의 정서적·조형적 단서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의 질료성은 정크아트나 아르떼 포베라와 일정부분 겹친 듯 보인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표면에 가하는 드로잉과 페인팅이, 그 오브제들의 사물성을 표현적 바탕으로 전환함으로 인해 그와는 다른 김진열 만의 어법에 복무하게 된다.

김진열_잡초와 더불어_혼합재료_78×79cm_2023

(...중략...) 김진열의 작업은 자신의 현실적 체험으로부터 정서화된 내면과 인식을 다시 회화적 양식으로 번안하는 순서로 구성된다. 그 행간에 김진열 식의 표현에 대한 미적 쾌감이 발생한다. 경험은 자신 내·외부의 세계가 만나거나 충돌하는 사건과 그에 대한 의식과 무의식을 작업에 투영한다. 미시적 일상성과 광범위한 대하서사, 섬세한 개인 심리와 집단성, 개별적 판단으로부터 사회적 지향성에 이르기까지 이 현실적 체험들은 그의 작업 프로세스에 수렴된다. 거기에서 강원도스러운 감수성·형식·장르개념·작가적 태도 등이 두루 얽히면서 작업 주제를 솎아낸다. ● (..중략...) 형상성은 작가고유의 형식과 비판성을 단서로 하면서 작품의 소통 과정에서 일종의 정치적 맥락을 발생 시킨다. 작품에 정치적 내용이 담기거나, 작품이 그것을 발언해서가 아니다. 작가-작품-관객 사이에서 미적 쾌감과 작품 내용에 대한 제시(제안)와 수용(혹은 부정), 거기에 따른 이견이나 공감의 과정이 마치 사회적 합의 기제인 정치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작가 개인의 '퍼스널 미디어'인 회화는 '소셜 미디어'로 기능하게 되며, 그 내용은 관객 하나하나의 개별적 관계망에서 공동체적 문제로 제시되고 확대된다.

김진열_평생 밭을 일구고_혼합재료_76×89cm_2021

김진열의 작품도 그의 경험과 기억의 '개별적 특수성'이 작품을 통해서 '추상적 보편성'으로 전환된다. '존엄'과 '모심'의 알레고리이자, 동시에 '존엄'과 '모심'이란 의미를 배태하는 상징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의 제시가 아닌 모호한 상황 설정과 표현성으로 인해, 그의 형상성엔 메시지가 선명한 표제성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보통의 인물화는 대상의 개체성과 성격을 최대한 부각한다. 당연히 명료한 표정과 정확한 묘사가 제시되고, 관객은 그 캐릭터를 쉽게 입수한다. 그러나 김진열은 오히려 등장인물의 정보를 소거하고 화면을 상징적으로 전환 시킨다. 전신미학(傳神美學)에서의 특정한 인물보다는, 이름 없는 일반 서민들의 감정과 삶의 애환에 포커스를 맞춰서다. 거기에서 배어 나오는 분위기가 메시지를 대신하므로 그 소통 회로는 간단 하지 않다.

김진열_바람을 품는 당산목_혼합재료_93×129cm_2021

한편 김진열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윤의 판화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에 등장하는 숱한 사람들처럼 익명적 민중성을 확보한다. 다만 오윤이나 리베라가 객관적으로 기호화된 인물의 전형성을 확보했다면, 김진열의 인물들은 정서를 환기하는 추상적 기운으로 기능하는 점이 다르다. 김진열의 작업이 사실주의적 재현성보다는 표현주의적 속성에 가까운 건, 정형적으로 패턴화된 캐릭터를 부여 받은 인물 구성 방식에서 이탈하는 그의 조형적 특성으로 인해서다. 그런 면에서 김진열의 비정형적 형상성의 회화적 긴장감은 오히려 싱싱하다. ■ 김진하

Vol.20230517g | 김진열展 / KIMJINYUL / 金振烈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