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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장용림 10회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광주문화예술회관 Gwangju Culture & Arts Center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60 갤러리 Tel. +82.(0)62.613.8353 gjart.gwangju.go.kr
저만치 한 호흡의 거리만큼에서 피었던 꽃들이 저만치 그 호흡으로 진다. 절기를 외면한 듯 꽃들이 한꺼번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왔다가 그 길로 되돌아가는 봄날이다. 그 꽃이 진 자리에 여린 잎들이 꽃자리를 채우고 바람은 다정하게 지나간다. 꽃과 나의 거리, 나와 꽃의 거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꽃과 나를 이어주는 적당한 거리가 '저만치' 라는 단어일 것이다. 소월의 '산유화' 에서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라는 시의 구절처럼 가장 꽃을 이해하고 읽어내기에 적정 거리가 아닐까싶다.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저만치 라는 거리에서 꽃을 바라보는 일은 그저 무심함이 함께한다. 저만치 있는 꽃의 존재에서 시간을 읽고 꽃의 호흡을 느끼고 꽃의 표정을 확인 할 뿐이다.
추위가 길고 봄이 더디게 온 듯 싶지만 여전히 눈 속에서도 매화는 피고 향기를 전하던 날들이었다. 지난 겨울 동지 무렵부터 춘분에 이르기까지 겨우내 매화 작업을 했다. 옛 선인들의 낭만적인 매화사랑을 엿볼 수 있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떠올리며 매화와 함께했던 날들이었다. 한 겨울 추위가 시작되는 동짓날 이틀 뒤부터 81일이 지나면 3월 10일 즈음 매화가 필 시기이다. 그 매화 피는 시기를 계산하고 기다리며 이때부터 매화의 꽃잎과 봉우리 81개를 먹선으로 그려서 하루에 꽃잎 하나씩 붉은 색으로 칠하고 채워가는 것이 구구소한도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매화달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먹선으로만 그려진 백매가 붉은 색이 더해지면서 홍매로 하루하루 채워지고 또 한번의 개화를 즐기는 멋스러움이었으니 마음이 먼저 향을 전하고 꽃을 피운 셈이다. 그러한 봄에 대한 아름다운 기다림을 매화작업으로 대신 하고 싶었다. 꽃피는 절기를 붓이 따라가기 힘들기에 겨울동안 작은 꽃눈을 품고 있는 꽃봉우리처럼 그렇게 화면에 매화를 먼저 피워보고 싶었던 마음이 앞선 것이다. 그러나 작업은 더디고 매화가 다 지고 순한 연두잎이 돋아날 때 쯤 붓을 내려놓게 되었다. 겨울이면 해마다 매화를 그리지만 매화에 대한 감흥과 매화의 성정을 찾는 일은 늘 새롭다. 그 거칠고 마른 등걸과 가지 끝에서 꽃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허공에 꽃을 피우는 듯 그렇게 순간 속에서 매화는 피고 꽃잎이 날리며 찰나에 진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채워서 꽃을 피우는 일처럼 매화가 피는 순간과 지는 순간은 봄기운 속으로 스미며 풀린다.
언제나 매화 앞에서는 숨이 턱 막혔다. 겨울을 견디어 온 명명할 수 없는 향기에 먼저 숨이 막히고 꽃빛에 또 한번 현기증이 일게 된다. 매화향이 낮게 깔리면서 번져 오면 호흡은 느슨해지고 감각은 오히려 긴장한 듯 날을 세운다. 꽃잎 한 잎 한 잎을 마름질 하 듯 켜켜히 색을 올리고 올리는 붓질에서 매화는 본연의 색을 찾는다. 청매화 꽃빛이 자신을 속으로 숨기면서 밝히는 빛이라면 홍매화의 꽃빛은 오히려 밖으로 숨을 토해내는 꽃빛이다. 매향 또한 청매화의 투명하고 맑은 순연한 향과는 달리 홍매향은 난분분 날리는 꽃잎처럼 대기 속으로 번지는 향이다. 마치 청매화 향이 들숨으로 내향적이라면 홍매화 향은 날숨인 듯 외향적이며 그렇게 서로의 향은 한 호흡 속에서도 결을 달리한다. 매화향과 꽃빛을 경험하는 일은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꽃을 조우하는 일과 꽃의 숨(호흡)이 스치는 일 또한 그러한 인연과의 적절한 시절의 만남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오고 가는 만남과 인연이 그렇고, 사랑이 그러하듯 적당한 거리 저만치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 깊이 새겨지는 사월 봄날이다. ■ 장용림
Vol.20230512i |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