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응시하다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21_0504 ▶ 2021_0530 / 월요일 휴관

장용림_숨, 응시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73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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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1_0504_화요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봉미술관 GeumBong Museum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 91 Tel. +82.(0)62.269.9883 bukgu.gwangju.kr/shihwa

세한(歲寒)의 추위가 심했던 지난 겨울 시린 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푸른 숨이 곁을 스쳤다. 소나무 둥치 밑으로 전지를 하는 정원사들의 손끝에서 소나무 가지들이 속절없이 쏟아졌다. 싸한 기운의 숨이 주변을 휘감고 돈다. 잘린 소나무 가지에는 송진이 맺혀있었다. 햇빛에 닿은 송진이 별처럼 반짝인다. 공기마저도 날이 선 듯 얼어붙은 한파에 푸른 소나무는 맨몸으로 제 상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잘린 소나무 가지를 발치에 드리우고 그저 제 자리에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흙을 움켜쥐고 서 있는 것이다. 한 생애를 세운 자리의 그늘이 완강하고 단단하다. 사시사철 오고 가는 길목에 있던 소나무가 한겨울 세한에 숨으로 느껴지는 일이 사뭇 낯설다. 굳이 완당의 세한도(歲寒圖) 속 소나무와 잣나무를 말하지 않더라도 완당에 대한 이상적의 일관된 도리나 의리를 송백에 빗대지 않더라도 소나무는 그렇게 변함없이 시듦을 모르고 한결같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장용림_숨, 꽃을 스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73cm_2020
장용림_숨, 꽃을 스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100cm_2020

생이 그러하듯 꽃피는 일만을 바라봤던 시선이 잎으로 닿는 순간이 있다. 잘린 소나무 가지 하나를 주워와서 작업실 한 켠 작은 달항아리 곁에 꽂아두었다. 인식이 아닌 체험으로써의 경험은 또 하나의 세계를 엿보게 되고 꽃이 아닌 잎의 형태에서 숨의 형상을 겹치듯 찾아보게 된다. 솔잎의 푸른 빛은 오랜 전설을 품은 듯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듯한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소나무 가지의 솔잎과 한 공간에서 겨울을 나며 윤기 흐르는 봄 잎들의 반짝임이 이는 사월까지 함께 건너왔다. 푸른 솔의 청청함은 속으로 잦아들었지만 그가 품고 내쉬는 숨은 아직도 생생하다. 허공을 받치고 응시하는 소나무의 시선 끝에 닿았던 달을 공간 속으로 내린 후 살짝 다시 들어 올려본다. 달항아리의 형태가 갖고 있는 형상은 비할 데 없는 분별없음이 지상에 온전히 닿지 못하고 허공에 발 딛고 자신의 자리를 부유하듯 찾는다. 푸른 솔은 시선과 공간을 바꿔 달그림자의 질감 속으로 고요히 찾아 든다. 추위를 견디기 위한 솔잎의 바늘잎들은 달항아리의 품에서 온기를 찾고 순한 빛의 꽃잎처럼 개화를 한다. 소나무가 품었을 바람과 햇볕과 비와 난분분 날리는 꽃잎 같은 눈송이와 함께 했던 시간을 달항아리의 품에서 고요히 풀어놓는 것이다. 그 찰라를 지나는 붓의 반복되는 스침은 솔잎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숨의 축적된 시간의 흔적으로 번지기도 한다.

장용림_숨, 응시하다_장지에 석채, 분채_91×117cm_2021
장용림_숨, 응시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100cm_2021

달항아리는 숨의 원형으로써 모든 사물을 두루 품는 대지와도 결을 같이한다. 불 속에서 견뎌낸 흙에 닿은 따사로운 온기를 갖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 어떤 것이라도 품에 들여놓을 줄 아는 심성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소나무와 달항아리가 공간 속의 호흡으로 하나의 숨을 이룬다면 매화와 달항아리는 대지 즉 씨앗으로 매화 한 그루를 자신의 품에 기른다. 매실의 씨앗이 발아하여 여린 싹이 대지를 가르고 자라는 것처럼 달항아리의 호흡을 자신의 터전으로 여기며 매화나무는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달항아리의 미묘한 굴곡에 잔금을 그으며 가지를 뻗어 길을 내고 꽃을 피워낸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매화가지는 자신의 존재를 느슨하게 풀어놓기도 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당기며 뻗어 가기도 한다. 어쩌면 달항아리는 자신의 숨 속에 품고 있던 꽃들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피워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숨과 숨 사이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숨을 끄집어내듯 매화를 피워내고 매화는 침묵만으로 서로의 숨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장용림_숨, 응시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100cm_2021
장용림_숨, 응시하다_장지에 석채, 분채_53×45cm_2021
장용림_숨, 꽃을 스치다_장지에 석채, 분채_100×73cm_2020

들숨과 날숨의 반복은 꽃이 피고 지는 일처럼 꽃 진 자리에 잎이 채워지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 반복되는 행위는 다양한 겹침의 변주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달항아리의 둥근 형상에 꽉 채워진 숨이 조금은 헐거워질 때 어떤 암호나 기호처럼 읽혀지는 또 다른 숨이 있다. 들숨과 날숨의 간극을 오가는 호흡이 둥근 형상으로 모이기도 하고 붓의 흔적들로 날리며 흩어지며 색을 빚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달항아리의 유백색은 백(白)색을 우려내고 우려낸 듯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표정으로 꽃과 잎을 품는다. 달항아리의 둥근 형상은 그저 꽃의 그림자처럼 여백으로 남기도 하고 하나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공간을 채우며 자신을 밝혀내기도 한다. ●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끝끝내 남아있는 솔잎의 푸른 빛과 여백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는 푸른 숨 앞에서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춘다. 그리하여 붓이 지날 때마다 지층처럼 쌓이는 흔적으로 숨을 대신한다. ■ 장용림

Vol.20210506g |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