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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사)캔 파운데이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오래된 집 Old House 서울 성북구 성북로18길 16 (성북동 62-11번지) Tel. +82.(0)2.766.7660 www.can-foundation.org
이 전시는 물길에서 마주한 살아 움직이는 숨(Breath)을 드러낸 드로잉과 회화 작품으로 구성된다. 물의 풍경을 따라간 길은 남해의 여수와 동해의 강릉이었다. 물과의 인연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레지던시를 참여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한 푸른 빛이 가득했던 한 겨울의 아이슬란드에서 매섭고 강렬한 바람과 깊은 바다를 마주했고, 상상 이상으로 웅장했던 대자연의 노르웨이에서 고요한 피오르드를 경험하며 물과 대화를 시작했다. 물이 바람과 빛을 만나 끊임없이 이어가는 대화에 몰입하면 숨이 멎을 듯 귓가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보고 있는 대상에 시선이 고정되어 비가시적인 영역을 탐지하듯 서서히 색이 연상되고, 감각과 감정이 외부의 자극과 함께 동시에 섞이기 시작한다.
드로잉과 회화에 등장하는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G-Drawing」(2022-2023) 시리즈는 강릉 안목해변을 중심으로 물길을 따라 걸으며 만난, 미처 다가가기 전에 재빨리 사라지는 포말의 움직임을 순간의 곡선으로 드러내고 담담한 표면으로 완성시킨다. 「Y-Drawing」(2021) 시리즈는 여수의 섬들을 탐방하는 여정에서 마주한 물, 바람, 섬을 향한 움직이는 시선을 기억 속 현장의 기운과 함께 종이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경험한 그 상황에 몰입했던 대상의 인상을 즉흥적인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회화의 경우, 움직임의 진동은 화면 속 색면에 그릴 때마다 조색한 맑은 색의 선으로 수없이 쌓아 올리는 붓질의 행위와 맞닿아 있다. 느릿한 물의 호흡이 빛을 만나 윤슬을 드러내듯, 섬세하게 다른 색상의 선들이 서로 무수히 겹쳐 우연적인 면을 만들어낸다. 그 선은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이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과슈를 사용하되 동양화 채색방식으로 표현한다. 즉, 캔버스 화면의 질감, 색의 투명도, 붓의 크기, 붓끝의 사용 면적, 그리는 손의 힘, 붓터치의 속도 등 여러 요소들이 동시에 작용하여 화면 속 깃털같은 표현이 완성된다.
회화 작품에 등장하는 덩어리는 바다의 바위, 산길 위의 바위, 자연에서 만들어진 우연적인 형태의 바위와 사람의 손길이 닿아 놓여지고 쌓여진 돌이다. 대상이 바위인지, 작은 돌인지 그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대상을 바라볼 때, 인지하는 대상과 그 주변의 환경, 그 당시의 감각과 감정이 만나 실제 대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환된다. 숨이 닿아 움직이듯 그 숨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인다.
이 전시의 드로잉과 회화 작품은 최근 진행해오고 있는 '상상풍경(想像風景)' 시리즈이며, 바다, 섬, 산, 바람, 물 등 자연으로부터 영감 받아 떠오른 사유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관찰하고 경험했던 기억을 되짚어 직접 느꼈던 감정을 함께 표현한 상상풍경은 이상향의 세계로 안내한다. 여기서 이상향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은유적 상상이다. 막연한 이상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 매우 가까이 존재하고 모호한 그 경계에서 보일 듯 상상의 장면을 곧 실제 마주할 공간처럼 그림으로 구현해낸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구름을 만지려 손을 허공에 저어보고, 바람의 속삭임을 헤아리기 위해 청각, 촉각, 후각, 시각으로 무형의 대상을 감지해간다. 이러한 공감각으로 느껴진 연상적 형상, 즉 마음속의 생각을 담은 사의(寫意)를 표현하기 위해 손과 붓을 즉흥적으로 움직여 추상의 상(象)을 작품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전에 눈에 보이는 공간 속 경계 또는 심리적인 경계에 초점을 두었던 시기를 너머, 대상과 대상의 사이를 찾기보다 경계를 허물고 그 너머로 현실에서 곧 일어나길 희망하는 요소들을 작품 화면 안으로 소환한다.
바라보는 대상을 묘사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마주한 대상과 그 주변 환경, 그로부터 움직이는 감각 및 감정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색과 선의 조형언어로 드러난다. 보는 이미지가 아닌, 시간과 공간의 현장성이 담긴 그 때,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실제의 풍경과 적극적으로 어우러져 상상의 장면을 이룬다. 작가는 풍경을 마주할 때 현재 상황과 과거의 기억을 교차시키고,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겹쳐 자신의 상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그 길을 열어간다. ■ 정유미
Vol.20230413d | 정유미展 / CHUNGYUMI / 鄭唯美 / drawing.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