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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 인 그랑서울 유혜경 초대전
기획 / 김정희(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 교수)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
아트 인 그랑서울 서울 종로구 종로 33 그랑서울 Tower 1 1층 Tel. +82.(0)2.2154.9049
『아트 인 그랑서울』은 종로 일대 가장 큰 건물 규모를 자랑하는 그랑서울에서 진행하는 초대기획전으로 많은 관람객 및 건물 방문객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보시는 아래 작품은 유혜경 작가가 그랑서울 주제로 그린 '그랑선경도(基朗仙境圖)'입니다.
유혜경의 작품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지에 가루 물감과 돌가루 물감을 아교를 섞어 그린 채색화다. 주 소재는 현대식 건물, 바위나 산, 그리고 사람 형상이다. 이 세 종류의 소재는 몽타주나 콜라주 방식으로 결합됐다. ● 이 소재들은 종류마다 사용된 기법이 다르다. 바위나 산은 이 그림에 사용된 재료처럼 전통 회화의 준법(皴法)으로 그려졌다. 가장 자주 사용된 기법은 베를 짠 듯이 선을 그어 바위나 산을 표현해 베주름, 즉 피마준법(披麻皴法), 실타래가 엉킨 모습이라 실타래 주름, 즉 해색준법(解索皴法)과 수직선을 사용한 수직준법이다. 바위나 산 이미지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녹색조로 표현되었고, 형태는 비정형적이고 평면적이다. ● 반면 건물은 일부 작품에서는 실루엣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작품에서 거의 자를 사용해 그린 듯한 엄격한 직선으로, 원근법을 적용해 실제 모습과 닮게 그려졌다. 이에 따라 건물 모양과 색이 다양하다. 건물을 형성한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 그리고 그것이 지닌 개별적 특성은 바위와 산을 형성한 곡선과 비정형적 형태, 그리고 서로 비슷해 패턴처럼 보이는 그것의 모양과 대조를 이룬다.
한편 인물 형상은 거의 모두 검은 바지를 입고 있고 남자 형상으로 보이며, 자세들이 다양하다. 이에 따라 그들은 세부 묘사는 생략되었지만, 사실적으로 보인다. 이 형상들은 등산하거나 앉아 있거나 걸어 다니고 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그림 속 다른 소재를 공간으로 만든다. 그들이 비율상으로 다른 소재와 비교해 지나치게 작고 그림자를 동반하지 않아 '공간'을 부유하는 듯이 보이게 되면서, 유 작가 작품의 주제가 드러난다. ● 원근법이 적용된 건물과 달리 화면에 흩어져 콜라주 된 것처럼 표현되었거나, 조립한 것처럼 뭉친 모습으로 표현된 산이나 바위와 인물의 조합은 유혜경 작가의 작품 주제와 도상학의 기원이 조선 시대 초기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보고 거닐었던 무릉도원(武陵桃源) 얘기를 해주면서 안견에게 의뢰해, 후자가 사흘 만에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은,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꿈 해석이론으로 설명하면 전자가 도연명의 시를 읽고 상상했다고 하는 곳을 가보길 원했으나, 억누르고 있던 소망(Wunsch, wish)이 꿈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무릉도원은 이상향으로 해석되고, 무릉은 지명이라지만 그 뜻은 거대한 언덕이다. 안견 그림이 보여주듯이 무릉도원은 거대한 언덕 뒤에 있는 복숭아밭과 그 나무에서 떨어진 꽃이 떠내려오는 개울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 꿈을 프로이트 이론으로 설명하면, 이 이미지는 꿈꾼 사람의 성욕을 반영하는 것으로, 무릉도원은 표출되지 못하게 억눌려 그의 무의식에 들어가 있는 욕망의 기표다. ● 유혜경 작가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그림 속 인물을 각자의 무릉도원을 거니는 안평대군으로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그러나 안견이 그린 안평대군의 소망이 이처럼 잠/꿈속에서 이뤄지는 바람이라면, 유혜경 작가가 그린 장면은 작가가 제복처럼 통일된 의복으로 익명화한 소시민이 바라는 것으로 연출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림 속 공간은 자연과 문명에 대한 상투적인 이분법에 따라 개념화된 곳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을 자연 공간과 인간에 의해 의미가 생산되는 사회적 공간으로 나누면서, 후자를 서술적 공간과 재현적 공간으로 나눴다. 유 작가는 자연으로 본, 그래서 녹색으로 그린 바위와 산을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자 소망하는 곳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을 건물 안에도 그렸다. 이를 통해서 유 작가는 클리세적으로 공간을 건물과 바위/산이라는 사물로, 그리고 안과 밖이라는 공간으로 나누고, 그것을 각각 일상과 외유(外遊), 현실과 소망을 재현하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이분화된 공간은 현실과 바람이 지닌 클리세적 위계도 표현하는 개념화된 공간이다.
유 작가는 바위/산을 건물 안에 그리거나 건물의 천장에 매달린 것처럼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에서는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사용된 낯설게 하기(dépaysement) 기법이 연상된다. 이 기법은 작가가 주관적 상상력에 따라 사물을 선택해 그림으로써 일상에서는 가까이 있지 않은 사물들을 결합하거나 나란히 놓고 그리고, 이를테면 머리빗을 그 옆에 있는 침대나 장롱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는 등, 사물의 크기 비율도 실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유 작가의 그림에서는 바위/산이 만들어낸 초현실적(surreal) 분위기가 사람이 너무 작게 그려졌지만, 건물과 산/바위에는 실제 규모가 반영됨으로써 비현실적(irreal)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서 유혜경 작가가 '생산한(produce)' 공간 속 '거주민들'은, 꿈속에서 소망을 이룬 안평대군과 달리, 백일몽을 꾸는 공상가로 보인다. ■ 김정희
Vol.20221017g | 유혜경展 / YUHAEKYUNG / 劉惠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