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고양이 Nietzche's Katzen

최순임展 / CHOISOONIM / 崔順任 / mixed media   2022_0219 ▶ 2022_0424 / 월요일 휴관

최순임_니체의 고양이展_무안군오승우미술관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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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6 www.muan.go.kr/museum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통찰하는 여행자 ● 소녀는 서 있고 고양이는 앉아 있다. 우주복을 입은 그들의 얼굴은 서로 닮았다. 소녀의 등에는 태엽이 돌아가고 고양이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들은 그렇게 어딘가를 바라본다.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의 주변엔 크고 작은 선인장들이 자란다. 신성한 우주나무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선인장들에서 한창 둥그런 별들이 태어나는 중이다. 그 별들 중 하나에는 우주복 차림의 작은 요정이 조그마한 아기 동물을 팔로 감싼 채 앉아 있다. 그리고 키 낮은 선인장에서 태어난 조각배에 또 다른 요정이 기대어 쉬고 있다. 이곳은 어디일까? 미지의 행성일까? 초현실적인 꿈이나 환상의 세계일까? 분명한 것은 선인장 숲 안에 있는 소녀와 고양이가 낯선 곳을 여행하는 존재들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들은 '여행자'다.

여행자의 시대 ● 지난 10년 동안 최순임 작가의 작업을 관통해 온 핵심적인 주제는 '여행자'라고 생각한다. 그가 추구하는 여행자의 이미지는 작업 초기인 2012~2014년에 처음 등장했다. 단초는 고양이였다. 2012년에 그는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선보인 작품들이 흙으로 빚은 고양이 조각상이었다.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유기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작가는 고양이에게 다양한 감정을 투영하여 작업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2014년 개인전에서는 고양이와 더불어 소녀 이미지가 회화와 조각 작업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고양이를 안은 소녀는 작가의 자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고양이와 함께 여행 가방을 끌고 있는 소녀가 여행자로 지칭되었다. 왜 작가는 고양이를 안은 소녀를 여행자라고 명명했을까? 그 이유는 작가가 '광주'라는 한 도시 안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가는 삶에 대해 권태를 느껴 늘 새로운 자극과 변화를 갈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욕망과 꿈을 대변해주는 인물이 바로 여행자인 셈이다. ● 흥미로운 점은 여행자로서 소녀와 반려동물인 고양이의 이미지가 초반엔 소박한 현실감을 주다가 점차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존재로 은유성을 띠게 되고 나아가 다양한 소재들과 함께 동화(童話)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쪽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몇 차례의 개인전에서 독특한 외양을 지닌 여행자들을 중심으로 동화적 환상성이 매우 강하게 표출되었다. 즉 이 시기의 작품들 속에 '동심(童心)으로 꿈과 환상을 추구하는 여행자'라는 개념이 명확히 자리잡았다. 이런 동화적인 요소는 작가가 대학 졸업 무렵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2018년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는 그의 건강 문제로 다소 침체된 시기였다. 2018년 10월에 암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2020년까지 투병을 위해 요양병원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는 상처입은 여행자인 자신의 모습을 주제로 치유의 드로잉에 몰두했고 이를 두 차례나 전시했다. 그리고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2021년에는 전통 동양화와 민화의 소재들을 차용해 새로운 환상여행을 표현한 회화를 선보였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작가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향후 작업의 방향성을 여러모로 고민하고 모색하는 중이다.

개성, 혼합과 조화, 결합과 분리 ● 새로운 작업의 방향성을 세우려면 우선 지난 작업의 성과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전체적으로 작업의 흐름을 보았을 때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는 역시 2015~2018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최순임 작가만의 독자적인 작품들이 여러 점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주복을 입은 소녀와 고양이가 있는 「선인장 숲」을 비롯해 「꿈」, 「여행자」, 「여행자의 노래」 등으로 불리는 조각 작품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만하다. '여행자 조각상'으로 집약되는 이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 첫 번째 특징은 '개성적인 캐릭터'이다. 여행자 조각상들이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 이미지를 지녔다는 말이다. 이런 캐릭터 작업들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보면 팝아트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팝아트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었고, 일본 네오팝(Neo Pop Art) 작가들은 1990년대부터 순수미술, 디자인, 만화, 애니메이션, 전통미술 등을 융합한 작업으로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동시대미술 전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같은 동시대미술의 분위기 속에서 특히 나라 요시토모처럼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우는 작업 방식이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았다. 최순임 작가의 작업도 이런 흐름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여행자 캐릭터는 하나가 아니고 다양하다. 그들은 모두 여행자로 불리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우주복을 입고 여행을 하거나, 한정된 시간 동안 돌아가는 태엽을 등에 부착한 채 부자유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혹처럼 자라난 지구와 고양이, 꽃, 물고기 등으로 장식된 환상적인 머리를 지니고 자유를 꿈꾸기도 하는 등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제약과 자연스러운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으로서 작가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여러 성향이 서로 다르게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 두 번째 특징은 '표현의 혼합과 조화'이다. 여행자 조각상들에는 표현 형식 면에서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행자 조각상들은 캐릭터 이미지와 밝고 따뜻한 색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견 가벼운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적 표현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고 도자 기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중량감과 밀도감도 충분히 느껴진다. 이는 전통적인 조각이 지닌 무거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여행자 조각상들을 보면 장식미와 단순미가 혼재하는데, 과도하게 장식적이거나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은 수준에서 조화를 이룬다. 또한 여행자 조각상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들도 과하게 드러나거나 감추어지지 않은 선에서 함축성과 상징성을 띠고 형상화되었다. 이런 함축성과 상징성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각 여행자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여러 표현 요소들이 적절히 혼합되고 조화를 이룬 여행자 조각상들에게서 결과적으로 최순임 작가만의 개성이 선명히 드러난다. ● 세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결합과 분리'이다. 여행자 조각상들이 하나하나 캐릭터로서 의미가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만나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7년작 「대면」을 살펴보자. 이 설치작품에는 그물망 같은 실들과 작은 평면 회화가 배치된 벽면을 배경으로 두 여행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뒷짐을 지고 당당한 표정을 한 좌측의 여행자는 자유로운 인간을 의미하고, 태엽을 등에 달고 어두운 보안경을 쓴 우측의 여행자는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의미한다. 이 두 여행자는 함께 실로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우측 여행자의 몸에 실이 감겨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임을 짐작하게 된다. 이 설치 작품에서는 상이한 성격의 두 여행자가 작가의 양면성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역할하지만 두 여행자는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완결된 작품이기 때문에 따로따로 전시되어도 무방하고 다른 평면, 입체 작품들과 조합되어도 재미있는 맥락을 형성하리라고 본다. 이런 식의 자유로운 결합과 분리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은 2015년작 「선인장 숲」이다. 서두에 묘사한 대로 이 설치 작품은 「선인장 숲」과 「지구별 여행자」(우주복을 입은 소녀와 고양이)가 결합된 것인데, 소녀와 고양이만 따로 놓고 보아도 완결성이 있고, 선인장들만 전시되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두 작품이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되고 작품의 의미는 중층적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두 작품이 합해진 「선인장 숲」은 무엇보다도 앞에 서술한 중요한 특징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최순임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이런 연유로 이 작품이 그동안 여러 전시회에 초대되어 주목을 받았고 이번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의 개인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인장 숲」이 지닌 미학적 특성을 조금 더 깊이 음미해 보자.

초현실적인 선인장 숲 ● 2014년 개인전에 함께 등장한 소녀와 고양이는 2015년 개인전에서 우주복을 입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선인장들의 이미지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에 서식하는 에키놉시스(Echinopsis) 선인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1200살이 넘은 초대형 선인장들을 보고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여 작품의 소재로 취했다. 소녀와 고양이, 이국적인 선인장의 조합은 '낯선 지구별의 선인장 숲을 방문한 여행자'라는 이야기로 발전하였다. 이 설치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SF만화 주인공 같은 소녀와 고양이의 이미지 그리고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선인장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온의 가마를 거치며 우러나온 흙과 유약의 온화한 색감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점들 외에 가장 중요한 특성은 선인장들의 초현실적인 이미지라고 본다. 이 선인장들은 현실의 선인장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처럼 선인장에서 별과 배가 태어나고 그곳에 요정이 함께 노닌다. 이렇게 이질적인 사물들의 낯선 만남을 통해 시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풍부하게 형성된다. 어떤 사물들을 맥락이 전혀 다른 곳에 두어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표현 기법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하는데 이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식이다. 물론 이런 표현 기법은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선인장 숲」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감성적으로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별들이 태어나는 선인장들과 그 사이에 있는 작고 연약한 소녀와 고양이를 보면서 직감하게 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주 대자연 속에서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과 동식물은 서로 의지하며 동행해야 하는 존재임을!

최순임_꿈꿔라_캔버스에 목탄, 콘테_120×80cm×2_2017
최순임_대면_세라믹, 실_2017
최순임_선인장 숲_테라코타_2015 최순임_여행자, H100(2P)_조형토, 장작가마소성_2015_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최순임_다가옴, 마주침, 충돌_나무패널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20×80cm×3_2022
최순임_인생회전목마_나무패널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82×244cm_2021
최순임_꿈꾸는 회전목마_세라믹_60×40×30cm_2017 최순임_태엽여행자_세라믹

또다시 새로운 여행으로 ● 최순임 작가의 작품엔 푸근한 기운이 감돈다. 삶에 대한 고뇌와 불안까지도 그의 작품 안에선 결국 낙관적인 느낌으로 수렴된다. 이는 작가의 내면에 깃든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작품에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어린아이 같은 심성, 즉 '동심'이란 단순히 순진무구한 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살아가면서 외부의 다양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성정을 지키며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으로 그의 예술적 상상력이 피어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예술적 상상력이 펼쳐 놓은 세상에서 주인공은 여행자다. 작가의 분신으로서 여행자는 사랑과 자유와 환상을 추구하며 낯선 세계를 찾아 나선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통찰하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정제된 모습의 다양한 여행자들이 탄생했다. 최순임 작가는 그들을 깊이 응시하며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 가는 여행을 꿈꾼다. ■ 백종옥

Vol.20220219d | 최순임展 / CHOISOONIM / 崔順任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