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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너트&아트게이트 7 KNOT Gallery&AG 7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7(안국동 175-61번지) Tel. +82.(0)2.598.5333 www.galleryknot.com
권기동-스크린에서 빠져 나온 도시풍경 ● 권기동은 자기 삶의 동선에서 문득 만난 특정 공간, 장소에 주목한다. 늘 빈번하게 보던 풍경이 어느 날 찌르듯이 다가온 것이다. 이른바'풍경의 푼크툼'이다.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고 의미심장한 존재가 되어 버린 순간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 그 풍경은 일상적인 장소가 특별한 '그곳'이 되어버렸기에 그림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그 풍경이 자신을 찔렀던 모종의 느낌, 저 장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자신을 덮쳤던 이상한 기운과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다소 격렬하게 유동하는 붓질, 환각적인 색채, 강렬한 빛, 흔들리며 소멸하는 형태/윤곽선 등으로 재현하고 있다. 특정 장면을 무척 기이한 감각이 맴도는, 사건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다분히 표현적 붓질과 생경한 색으로 포착한 이 도시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이제 막 스크린에서 빠져나온 저 풍경들은 스크린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장면들인 동시에 현실계의 비근한 풍경이기도 하다. 사실 그 구분은 무척 애매하다.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하듯 그림 또한 스크린과의 구분이 모호하다. 구체적인 특정 풍경의 재현이 작가의 목적은 아니라서 그는 풍경의 배후에는 밀려 나오는, 언어와 문자로 포착되지 않으며 묘사되지 못하는 모종의 기운과 정서를 표면으로 길어 올리고자 한다.
그가 그리는 도시는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며 소비와 욕망을 창출하기 위한 여러 유혹의 기제들로 구성된 인공의 풍경이다. 모종의 환상, 허영, 허구를 제공하기 위한 연극적 요소가 담겨있는 세트장과도 같고 어느 곳이나 균질화되었고 표준화되어 있다. 허상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서 모두가 디즈니랜드 같은 풍경이 된 현대 도시풍경은 공간적 차이를 떠나 대부분 유사하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과 한국의 도시 풍경은 매우 흡사해졌다. 유토피아와 행복의 환상을 무한히 제공해줄 것 같은 엄청난 환영의 얼굴을 한 도시풍경은 서구도시를 원본으로 해서 전 세계에 획일적이고 무차별적으로 확산, 모조 되었다.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들이 실재를 대체하는 사회, 그래서 원본이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극실재를 생산한다는 인식, 따라서 사회는 극실재로 구성된다고 본 보드리야르는 그 전형을 미국 도시가 가장 강력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1986)라는 기행문 형식의 에세이를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이메지너리를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미국은 현대성 속에서 태어난 사회이고 초현대성이며, 여타 세계에 대한 모델을 제공하는 곳이다. 동시에 그는 그곳에서 '현대성의 갖가지 도상들이 소실점'을 보고 있다. 모든 것이 사막화되고 화석화된 미국, 극단적으로 전개된 현대성/초현대성으로서의 미국이란 세계/풍경을 모델로 해서 이미 우리가 그 얇은 피부만을 고스란히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지도 오래되었다.
권기동의 그간의 작업은 초현대성을 보여주는 미국의 도시와 그 껍질만을 고스란히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한국의 도시 풍경에 주목했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미국에서의 체류와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가, 그리고 서울/서울 근교 위성도시에서의 삶의 체험이 작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이번 근작은 최근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체류하던 미국의 한적한 도시풍경의 주변을 그린 연작을 포함한다. 그곳은 흡사 영화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장소다. 거대한 건물, 광고판, 번쩍이는 네온과 조명, 적막하고 삭막한 풍경이 공통적이다. 보드리야르가 『아메리카』에서 묘사한 전형적인 미국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황량하고 거대한 장소에 고립되듯 놓인 주유소나 대형마트, 그리고 반짝이는 조명과 빠른 속도감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등이 그런 풍경의 일환이다. 무척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모호한 불길함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특정 풍경의 구체적인 재현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낯설거나 허구적으로 조작되거나 연출된 혼성모조의 풍경으로 다소 이상한 장면이다. 작가는 다양한 장소를 사진으로 수집한 후 이를 편집하고 재구성해서 그로부터 출발한 또 다른 풍경을 창출해낸다. 따라서 그가 그린 풍경은 특정 장소의 재현이나 묘사가 아니라 그로부터 출발하여 나온 변종의 풍경이자 그것에 기생해서 또 다른 개입, 편집의 들락거림을 허용하는 풍경이 된다. 따라서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이처럼 권기동의 풍경은 보는 시선을 헛디디게 만들고 트릭을 숨겨두고 과장과 강조가 은밀히 작동한다. 현실의 풍경인 동시에 그로부터 이격되어 나온 희한한 풍경이다. 아울러 사진의 납작한 표피성은 그의 유화물감의 점성과 특유의 물질감을 동반하면서 신체와 감각을 실어 나르고 그 풍경에 대한 작가의 감각과 견해를 발설하면서 축적되어 밀고 나간다. 이 시간의 과정은 동시에 감정과 사고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그림 그리는 과정이 겪어나가는 여러 변이를 허용하게 한다. 아울러 그림의 표면에 쌓인 물질감, 그 물질감을 보여주는 방식들, 속도감이나 번짐 내지 다양한 표정의 변화 양태가 보는 이의 상상력, 심리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흔들고 건드리면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층, 두께로 작동한다.
그의 그림은 마치 보드리야르가 『아메리카』라는 기행 에세이에서 보여준 시선을 회화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또한 그 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다. 권기동의 시선은 보드리야르처럼 차가운 냉소와 건조한 허무주의를 은연중 드리우면서 물감을 칠하고 환각적인 색채를 발산하며 마치 종말의 분위기와 같은 허영의 빛들을 기이하게 발산하다. 그리로 그 풍경은 실제 같으면서도 곳곳에 허구적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 그리하여 권기동의 풍경은 새삼 도시풍경이 이루어놓은 우리의 삶의 공간, 그 현대성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그림들은 붓질의 매혹적인 떨림, 빛과 색채의 환각성, 실제와 허구의 기이한 공존으로 인한 회화의 자율성이 빚어내는 맛을 함축하면서 은밀하게 주제를 감춘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온전히 정치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는 모종의 권태로움이 있고 냉소적이고 또한 날카로운 비판적 독해가 깃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회화가 거느린 재현술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여기서 그의 회화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작가가 다루는 소재, 주제는 이미 충분히 현대성이 극도로 발전된 시대, 그래서 재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시뮬라크르시대의 도시풍경이자 기계적 재현에 의해 반복해서 접한 풍경이고 감수성이다. 사진과 영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풍경을 아날로그적인 수공의 회화술로, 그것도 재현술에 입각해서 그리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현실을 새롭게 재현해내려는 시도, 특이한 형태의 리얼리즘의 가능성에의 타진으로 읽힌다. 어쩌면 이는'묘사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려는 모순적 시도이자 묘사를 포기함으로써 묘사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증언하려는 현대미술의 이른바'부정적 묘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재현을 통해 현시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그 예민한 통증 같은 감각을 가시화하려는 것이다. 권기동의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목도하고 느낀 특정 공간, 장소의 모든 것을, 그 현존에 대한 총체적인 감각을 현시하고자 하는 차원에서의 그리기다. 아마도 그의 그림에서 번지는 묘한 멜랑콜리는 바로 그러한 모순적인 시도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 박영택
Vol.20210622b | 권기동展 / KWONKIDONG / 權奇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