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경계

양경렬展 / YANGKYUNGRYUL / 梁庚烈 / painting   2021_0611 ▶ 2021_0629 / 일,월요일 휴관

양경렬_Generational boundaries_리넨에 유채_195×18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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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경계에 대한 정확한 이유 ● 경계는 영역과 사물의 외형을 규정짓거나 시대와 시대 구분하는 유. 무형의 금(선)과 같다. 우선, 사물에 있어서 경계는 그 사물 자체와 외부와 구분할 수 있는 사물의 외형을 의미한다. 이때는 유형의 금(선)으로서 경계를 확고히 한다. 반면, 영역은 서로의 약속을 바탕으로 경계를 나눈다. 사회적인 금. 우리를 만드는 의미로서 지켜야 할 영역에 관한,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의미로서의 경계다. ● 그럼, 시대의 경계는? 단순히 세기의 숫자로 나누기에는 좀, 1세기와 2세기의 경계… 이렇게 나누기에는 경계의 의미가 세련되지는 않은 것 같다. 도대체 1세기와 2세기에는 어떤 문화적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무엇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로 인해, 1세기와 2세기를 나눌 수 있는 경계는 있었던가?. 아니면 1세기와 2세기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에 그 시대는 경계가 있을 수 없었다라고 한다면, 과연 시대적 경계는 무엇으로 정의 될 수 있을까.

양경렬_A mysterious landscape_리넨에 유채_180×180cm_2021
양경렬_Naked king_리넨에 유채_33×24cm_2021
양경렬_Naked kings_리넨에 유채_33×24cm_2021

양경렬 작가는, 과격한 변화 보다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시대의 경계를 바라보고자 한다. 그의 작업의 중심이 되는 광장, 즉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부터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광장으로 나오고자 하는 시대의 의지로부터. 그 경계를 찾고자 한다. 삶의 변화에 대한 동시대 문화적 변화에 따른, 소통의 방식의 변화에 대한 의지에서 생겨나는 시대적 경계. 따라서 그 시대적 변화에 의한 새로운 공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각적으로 의심하면서 작가는 그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의 경계를 더듬는다. 첫번째, 그 공간을 차지했던 사람, 사물 혹은 동물까지. 해서, 작가에게 경계는 소통과 공유의 또 다른 의미로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금을 그어 서로 넘지 못하는 것이 경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정체성에 대한 상대(시대)에 대한 이해의 의미인 것 같다. . ● 물론, 경계는 여전히 너무나 확고한 자신의 영역이라든지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경계에 대한 의미를 확장해야 결국, 시대와 시대는 변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막연하지만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고 진화이기도 하다.

양경렬_Naked kings_리넨에 유채_33×24cm_2021
양경렬_Naked kings_리넨에 유채_33×24cm_2021
양경렬_Naked royal family_리넨에 유채_54×45cm_2021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은, 외부와의 접촉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그것에 대한 받아들임과 경험적 이해가 없다면, 결국 우리는 그 외부에 적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외부와의 접촉에서 경계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 없이 우리는 외부 환경과 소통하거나 삶의 안정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따라서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변화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각 시대의 경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계는 이전 시대 혹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열려 있어야 한다. 시대의 경계는 단지, 금(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화의 연속이지 정체성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경렬_Naked king and queen_리넨에 유채_35×24cm_2021
양경렬_Naked king and queen_리넨에 유채_35×24cm_2021
양경렬_Naked king and queen_리넨에 유채_35×24cm_2021

양경렬의 광장은, 너와 나의 확고한 정체성으로 서로를 주장하는 공간이기 보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공간이었다.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었고, 서로의 공간이 되었어야 할 광장에는 늘, 나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람들과 그것들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지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의 경계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 경계의 의미는 너무나 다양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 결코, 경계는 금(선) 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으로, 그의 반사적 이미지들은 나름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 임대식

Vol.20210611e | 양경렬展 / YANGKYUNGRYUL / 梁庚烈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