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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매향리 스튜디오 현대미술展
후원 / 경기도_경기문화재단_경기만 에코뮤지엄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화요일 휴관
매향리 스튜디오 Maehyangri Studio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웃말길 15 (매향리 315-4번지) 구 매향교회 Tel. +82.(0)31.853.9322
최종운의 유연한 표류 ● 1. 역사적 사건들은 항상 대치된 순간과 마주한다. 근 현대 한국사에서 큰 축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념 다툼은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 그로 인한 남과 북의 대치 그리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둘로 쪼개진 국가의 운명처럼 근 한 세기 동안 끊임없는 대립과 긴장된 상황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이념 대립에는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또 다른 양극단이 존재하게 한다. 여기서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반적인 사건이나 사고보다는 훨씬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가해자도 피해자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시대의 희생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의 아픔 속에서 개인은 사회 역사적 이념과 신념이라는 명목아래 자행되고 있는 각종 사상과 노동에 부역하거나 투쟁하면서 수많은 논쟁을 야기시켰고 실존적 물음 속에 내 던져지게 되었다. 또한 대의에 의해서 희생을 강요하거나 강요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적 갈등과 혼돈 속에서 개인의 소소한 삶은 그렇게 묵과되거나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2. 이번 최종운의 전시는 매향리(梅香里)라는 한국의 근 현대 역사, 사회, 환경의 맥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 특정적인 곳인 구 매향리 교회이자 현 매향리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즉 전쟁의 상흔과 공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오래 동안 주민들에게 지독하게 각인시켜준 서해 앞 바다 작은 어촌마을 미군이 만든 교회가 있던 곳에서 말이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매향리(옛 지명 고온리古溫里)는 지명이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따뜻하며 평온한 마을과는 달리 우리나라 근 현대 역사에서 아픔과 상처, 갈등이 혼재된 장소이다. 이 평범한 서해바다 어촌마을은 1951년 미군이 쿠니 사격장을 만들면서부터 2005년 사격장이 폐쇄되기까지 무려 5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주한미군의 공군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만선의 기쁨을 누려야 할 바다와 풍요로웠던 갯벌과 논밭에 하루 400회 이상의 폭격훈련이 자행(恣行)되면서 매향리는 더 이상 평범한 어촌마을일 수 없었다. 매향리 앞바다에는 현재까지도 민둥민둥한 벌거숭이로 남아있는 농섬(濃島)이 있다. 이 섬은 원래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마을주민들에게 땔감을 제공하고, 각종 철새들이 알을 낳아 생태계를 순환시켰으며, 하루 네 번의 물때를 잘 이용한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아지트로 훌륭한 놀이터를 제공했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물이 열리면 이 섬은 아이걸음으로도 30분이면 갈 수 있었던 친근하고 포근한 생활터전으로, 미군훈련전투기가 폭격목표지로 선정하기 전까지 흡사 낙원과도 같았던 섬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이도, 새들도, 푸르른 숲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누런 토산의 형상만이 흉흉하게 자리할 뿐이다. 이렇듯 매향리의 일대는 탄피와 포탄 그리고 폭격의 잔해와 같은 전쟁 이미지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 남과 북, 미군,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이미지들이 혼재되고 교차된 매향리는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고 있는 곳으로 한국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이번 전시에서 최종운은 국가방위와 안보라는 명목으로 전후 54년간 진행되었던 군사훈련으로 인하여 이곳 주민들의 터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공포의 대상이자 모순적 실체의 다름아닌 a10 폭격기를 소환한다. 작가는 마을 도처에 산처럼 쌓여진 폭탄잔재를 보면서, 이 곳이 축소된 우리나라의 현실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더 이상의 폭격은 없지만 아직까지 전쟁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마을 앞의 벌거숭이 농섬과 상처와 고통의 흔적이 묻어 있는 녹슨 탄피와 폭격기의 잔해 물이 자리한 이 곳에서 최종운은 삶과 죽음의 미묘한 경계를 보았을 것이다. 또한 흡사 생의 억척스럽고 질긴 생명의 끈과 닮아있는 마을 해변에 즐비한 어망을 보면서, 이 지역의 팍팍한 삶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시장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는 어망을 이어 만든 최종운의 실물크기의 a10 폭격기는 이렇듯 삶과 죽음이 중첩된 이중적 코드를 제시한다. 생의 상징적 코드로서 어망 그리고 공포와 죽음을 상징하는 전투기가 결합된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고요와 동요, 자유와 억압, 희생과 폭력간의 긴장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작가는 초창기 작업부터 주변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였다. 즉 그는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일상의 사물 속에서 사물의 존재이유와 그 물질의 속성 그리고 그 사물을 둘러싼 관계를 면밀히 살피고 연구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해석해 왔다. 아시다시피 물성으로서 어망은 질기고 거칠지만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도구로서의 어망은 어민들의 삶의 기쁨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사물이다. 즉 척박하고 퍽퍽한 삶 속에서도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어민들에게 어망은 어쩌면 애중과 같은 존재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이번 전시에서 주요 소재로 제시한 어망과 폭격기는 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기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물이라 볼 수 있겠다. ● 이러한 최종운의 A10폭격기는 흡사 거대한 물고기와 같기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어망에 포획된 폭격기로도 보여지기도 하고, 또한 늙고 병들고 지친 과거의 영웅이자 폭군이 초라하게 예배당에 참회하러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앞서 밝혔듯이 이 곳은 과거 미군이 세운 교회였다. 장소가 가지고 있는 맥락에서 최종운의 폭격기는 이와 같은 중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즉 매향리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이 늙은 장병은 이제 과거의 화려한 위용을 상실한 채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와 어망에 아로새겨진 반세기 이상의 반목과 대립, 평화와 자유, 생과 사의 흔적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 최종운은 사운드 작가 황병준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또 다른 시간의 층위를 생성한다. 엇박으로 첫 음을 조급하고 신경적으로 시작하는 피아노곡(바흐가 편곡한 아다지오 BWV974) 연주는 이내 차분하지만 다소 엄숙하게 전시장을 차갑게 울린다. 이러한 글렌굴드(Glenn Glould)의 예민하고 섬세한 연주는 느닷없는 전투기의 비행소리와 폭격음, 경보 사이렌 그리고 조종사의 경고 알림 등과 같은 공포의 굉음이 삽입되면서 순간순간 묻히기를 반복한다. 마치 밀물과 썰물에 의해 갯벌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지만 갯벌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듯이, 총성과 포화소리가 들고 나도, 차갑고 서정적인 피아노 소리는 묵묵하고 끈질기게 계속 되어진다. 이는 마치 폭우처럼 솟아지는 포격과 총포가 마을 하늘과 땅을 밤낮으로 들쑤셔 놓아도 끊임없이 이 힘겨운 삶을 이어나갔던 사람들의 삶처럼 말이다. 이러한 황병준의 사운드에 의해서 촘촘하게 분절된 시간의 협곡은 최종운의 그물에 걸려진 낡고 구멍난 폭격기에 다시 한번 쏟아지면서 거칠고 질겨진 기억의 순간들을 두텁게 쌓아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헐적이고 파괴적인 포화소리 속에서도 묵묵이 이어지는 피아노 소리와 간간이 이어지는 굴드의 나지막이 읊조리는 허밍소리가 마치 산 사람의 넋두리처럼, 혹은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는 진혼곡처럼 울려나올 때 최종운의 그물로 된 a10폭격기는 이제 이 곳이 더 이상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대적 대립관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혼을 통해서 화해의 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유연한 표류의 시작의 다름 아님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 김미령
Vol.20201230c | 최종운展 / CHOICHONGWOON / 崔鐘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