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시작 -'선' 위 에 서 2 차 원 으 로 바 라 보 다-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2020_1104 ▶ 2020_1110

권성원_Unstable balance 2, 1,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00×80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217f | 권성원展으로 갑니다.

권성원 블로그_blog.naver.com/forflam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36.6669/737.6669 www.galleryis.com

'walk a fine line' 얇은 '선'위를 걷다 라는 이 영문은 아슬아슬 하다라는 의미로 의역된다. 실제로 얇은 선위를 벗어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걷는 것은 어렵다. 선은 그림의 시작이고 형태를 구현할 때 사용된다. 형태는 흔들림 없이 대상을 이루는 선의 정합성이 맞아야 이루어진다. 형태가 논리적인 정합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선은 객관적인 설명, 정확함을 요구하는 곳에 용이하게 이용된다. 선을 가로 세로로 그어 공간을 구분하듯 현대사회도 공간적으로나 규범적으로, 계층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세한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 안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선'을 긋는다. 첫 개인전 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을 긋는다. 2차원의 선을 긋고 3차원의 내가 그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다. 선이 그림의 시작이듯 이번 전시는 내 그림의 시작이기도 하다. 얇은 '선'위를 걷는 것처럼. ● 선의 대한 관심은 이번 작품들에서 2차원적 그리기의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2차원적 그리기는 2차원을 이루는 요소만을 그림에 적용함을 의도한다. '선'자체를 지시하는 행위, 기하학적 기본도형을 그리는 것,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는 입면Elevation 방식 등이 2차원적 그리기 개념 및 방법들에 해당한다. 2차원적 방법을 통한 그리기의 목적은 '그리기'가 2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것임을 강조하고 우리가 보는 대상, 이미지 등에서 의미를 걷어내기 위함이다. 대상이 지니는 언어적 의미나, 상징성 같은 것은 언제나 모호하고 애매하게 다가온다. 2차원을 그리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면 애매한 의미의 미끄러짐에서 벗어나 그림, 회화의 조형요소에 집중할 수가 있다. 운이 좋으면 탈출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실재하지 않고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 (2차원적 그리기의 개념적인 방법)이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그림으로 변화되는 순간들이 2차원성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회화가 실재하지 않는 것들의 담지체가 됨과 동시에 존재의 이유일 수 있고, 내가 회화를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의 동인이 된다.

권성원_Unstable balance_부분
권성원_'Building Balance' Elevation 19-1-L / 19-1-R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00×80cm_2019

실재하지 않는 '선'의 물화 ● 구불구불한 직선을 그린다. 구불구불함과 직선은 모순된다. 부분으로 보면 구불거리는 파동의 곡선이 있으나 전체를 보면 직선이다. 선의 개념적이고 객관적인 성격과는 무관하게 구불구불한 '선'은 직선으로만 놓여진다. '선'은 물감의 얇은 덩어리가 긴 튜브처럼 늘여져 부피감을 이루고 있다. 직선을 이루는 구불구불한 움직임, 물감의 부피감과 반복적인 적층, 그리고 조형요소로써의 '선'의 특징들을 통해 선으로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선'자체를 그리는 것을 의도한다. 그런데 '선'자체를 그리는 것이 가능한가? 선은 그려질 수 없는 기하학적 개념으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선'자체는 간접적으로만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다. '선'을 움직임과 부피감올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하지만 '선'의 의미만을 드러내며 2차원에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권성원_'Building Balance' Elevation 19-5-C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19
권성원_형성,色 2 / Formation 2 Violet & Red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20

기본도형, 균형 쌓기, 입면(Elevation)으로 그리기 ● 선과 더불어 조형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 중 하나는 기본도형이다. 삼각형, 사각형, 원 등은 스스로 외부의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의미화 되어있는 모든 사물과는 다르게 기본도형으로 이루어진 장난감 블록은 입자화 되어있어서 자연풍경보다도 원형적일 수 있다. 장난감블록을 그린다는 것은 기본도형을 구성한다는 것이고 대상화 될 수 있는 형상화작업에서 2차원적 조형의식으로만 형상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 기본도형 블록을 쌓는다는 것은 수직으로 세운다는 의미이다. 수직성이 높이를 갖을수록 '대지만이 가로로 누워있고 대지위에 모든 것은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는 세잔의 말대로 형상성이 강화된다. 이아들의 블록 쌓기는 형상을 세우는 은유적 놀이일 수 있다. 블록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지만 서로가 관계를 맺을 때 대지위에 서있게 된다. 서있는 블록은 균형으로써 형상을 이룬다. 그 균형위에 사물을 놓아서 균형과 사물이 관계를 이루도록 하며, 그 관계는 일루젼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놀이가 실제 3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2차원에서 구현되고 있다. 블록 쌓기 형상들은 3차원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의미를 갖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균형 쌓기와 의미 쌓기의 불안함을 보여줄 뿐이다. 균형 쌓기를 통해 사물과의 형상적 관계와 의미적 관계를 만들며, 또한 불안정하고, 불가능한 균형을 통해 2차원으로 환원을 의도한다. ● 입면 Elevation 그리기 방법은 시점이나 원근을 고려하지 않고 균일한 스케일과 정면성이 적용된 개념적 그리기이다. 산업현장에서 제품을 설계 할 때 축을 달리한 세 방향의 입면도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입면은 대상을 스케닝한 것처럼 보여준다. 입면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화 시키기 위한 2차원적 방법이다. 그래서 입면이라는 개념적 그리기 역시 2차원으로 바라보기를 가능하게 한다.

권성원_형성,色 2 / Formation 2 Violet & Red_부분
권성원_놀이터에서 / In playgrou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20

실재하지 않는 2차원의 담지체 ●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다. 파란하늘에 비행기가 흰색구름 궤적을 남기며 지나간다. 비행기는 크고 완만한 곡선 뒤에 방향을 바꿔 작은 곡선을 남긴다. 3차원 공간의 거대한 궤적이 내 작은 망막에 맺힌다. 3차원이 2차원에 포섭되는 순간이다. 거대한 궤적은 유연한 자유곡선이 된다. 눈 밖의 세상은 사방으로 뻗은 3차원이지만 이를 받아드리는 시각의 창(窓)은 2차원이다. 2차원의 자유 곡선을 두 눈의 시야각의 차이로 3차원 궤적으로 읽는 것 뿐 이다. 지상의 포유류는 매 순간 눈에 맺힌 정보인 2차원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고 인간만이 그리기를 통해 3차원을 2차원으로 환원시킨다. 조각상을 감상할 때에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2차원의 장면들이고 다만 이를 이어 붙여서 3차원의 연속성을 경험케 한다. 읽고 쓰고 고도의 수학문제를 풀고, 비행기와 로켓을 설계하는 모든 것이 2차원에서 시작되고 진행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받아드리는 정보의 70%이상이 시각이라고 할 때 인간은 2차원적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인간도 2차원에 있다. 높은 하늘위에나 지구 밖에 거대한 존재가 인간을 바라본다면 2차원에 붙어 기어다니는 알갱이로 파악할 지도 모른다. ● 그러나 선처럼 2차원도 실재하지는 않는다. 물리적으론 2차원도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어떤 얇은 평면도 입체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이 실재하지 않는데 2차원이 실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리기'는 2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시도이고 그림은 2차원을 담고 있는 물리적인 담지체이다. 그래서 2차원에 담겨진 것들은 숨겨져 있으며, 회화는 숨겨진 것들을 찬찬히 드러내게 한다. 숨겨진 것들이 많을수록 회화는 거대해지고 우리를 다른 어딘가로 데려다 놓을 것 같다. ● 더 멀리 다른 어딘가에 있길 바라며 선보다도 얇은 예술위에 서있기(standing a fine art)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 권성원

Vol.20201104b |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