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217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_10:00am~08:00pm
제이 갤러리_JAY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89-4번지 SK허브플라자 1동 B107,108 Tel. +82.2.2666.4450 www.jaypia.com
권성원의 작품 속에는 현실과 개념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가 동등한 지위로 혼재되어 나타난다. 화면은 도형 혹은 큐브 등이 여전히 기하학적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현실 속의 빌딩 혹은 구조물적인 그 무엇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한 개념들의 사이로 검은 개, 숭례문 화재, 여의도 국회의사당, 황소, 장난감 인형, 비누방울 등이 간헐 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분명 추상회화들 보다는 좀더 현실적 세계를 반영하는 것 같으면서도, 인상주의 그림이나, 아시아의 산수화들 보다는 좀더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히려 이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 일부 애니메이션 등에서 표현되는 현실로부터의 단절된 표현을 통해 느끼게 되는 또 다른 냉엄한 세계를 접할 때의 느낌과 유사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권성원의 작업에는 현실과 개념 혹은 무의식의 세계가 혼재하며 이들 각각의 세계는 각각이 고유한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화면상에서 동등한 차원으로 전개된다. 이는 개념 혹은 무의식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로 환원되었기 보다는, 각각의 세계가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전개되도록 설정된 어떤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권성원의 회화세계는 외형적으로 비교적 현실의 물리적 세계에 토대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가상적인 세계에 토대를 두고 전개되는 의식의 흐름에 토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들 화면에 등장하는 숭례문 화재, 장난감,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은 일상의 경험 혹은 TV 등의 미디어를 통해 일정기간 작가의 의식 속에 잔류하는 심상들이 투영되는 경우이다. 가령 2008년 숭례문 화재사건의 경우, 작가는 이 사건을 비록 현장에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TV 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충격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것은 현장의 생생함으로서 접근되기 보다는, 어떤 의식의 흐름에 큰 변화와 혼란을 부르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 심상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현실에서의 문맥을 통해 재생되기 보다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어떤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의 문맥과 연결시킴으로서 현실로부터 어떤 "단절"(alienation)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인가를 의심할 경우가 있다. 마치 우리가 꿈을 꿀 때, 꿈속의 광경을 현실로 착각하듯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역시 우리가 또다시 깨어나서 접할 수 있는 실재 세계를 보지 못하고 헤매는 또 다른 차원의 비실재 세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본래 불완전한 세계이며, 보다 완전하고 실재하는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세계에는 어떤 완전한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온 여러 흔적들이 존재하며, 이들 여러 흔적들을 통해 마치 우리가 사진을 통해 실제모습을 추론하듯이, 실재하는 완전한 세계를 추론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형이상학적 방법과 유사하게 권성원의 회화세계에서 역시 우리는 어떤 나름의 추론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창가에 서서 창밖의 광경을 바라 보는 응시자처럼,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서 또 다른 차원의 관객이 되어 개념, 현실 그리고 무의식의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를 동시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나레이티브(narative)가 현대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분명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신화를 통해 인간(the mortals)과 신(the immortals)이 혼재된 나레이티브를 구사하였다. 마찬가지로 권성원 역시 현실과 개념 그리고 무의식 등 여러 차원이 혼재된 나레이티브를 구사하므로서 고대 그리스적 나레이티브로 회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어떤 형이상학적 세계를 설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림 속의 도상들은 아무런 궁극적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그 자리에 그저 우연히 존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이영재
Vol.20100217f |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