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0609c | 허문정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쉐마미술관 SCHEMA ART MUSEUM 충북 청원군 내수읍 내수로 241 Tel. +82.(0)43.221.3269 schemaartmuseum.com schemaartletter.com
삶 물든 일상 속 자연, 그 발견과 기록 ●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과 인생사와의 관계, 삶 속에서 쌓인 감성들을 묵묵히 쌓아감이 나의 작품이다." - 작가 허문정 ● 1. 세심함과 치밀함이 돋보이는 온갖 자연물1)이 화면에 자리한다. 사실적인 잎사귀의 잎자루와 형형색색의 꽃들2)을 비롯해 새, 나비, 사마귀, 무당벌레 등 온갖 곤충과 조류도 배치되어 있다. 원근법 없는 평평한 공간을 부유하는 그것은 전체적인 구성에마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을 만큼 계획적이고 꼼꼼하다. 그야말로 '질서의 미'다. ● '질서의 미'는 2000년대 중반 선보인 「in nature」 이후 2020년 근작인 「in nature」연작과 「My Garden」(2020) 시리즈, 「Forest」(2020)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고루 나타난다. 사실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리듬을 지닌 채 예술적 대상에 대한 인식과 관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체 및 집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촘촘하게 그려진 자연물의 심미성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홍엽이었다가 황엽이 되고, 다시 시간이 흘러 갈엽이 되듯 세월에 흔적이 열람된다는 게 특징이다.
세월의 흔적은 잠시 가려졌다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그것마냥 작가에게 순환의 과정과 다름 아님으로 비춰진다. 이는 유기체적 세계관이지만, 자연의 순리에 인간의 운명을 맞춰가며 현세의 삶을 초월하려는 의지 역시 배어 있다. 반문명주의(反文明主義)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위적인 것과의 대립이 내재되어 있음이다. ● 실제로 작가 허문정에게 자연은 일상의 한 부분3)이면서, 생명이 다한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생태학적 고리와 맞닿아 있다. 사적으로서의 자연은 그에게 행복을 일깨우거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이고,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는 촉매로도 아쉬움이 없다. 특히 어느 면에선 폐쇄된 자의식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하는, 작가의 마음을 대리하는 색다른 재현인 것도 사실이다. ● 그러나 기 언급한 내용의 소실점엔 '지금 내 안에 있는 무엇(something that is in my mind)'이 걸려있다. 그것은 곧 자아를 의미하고, 인간 내면의 공통분모적인 욕구와 무의식, 삶을 지탱해온 여러 알고리즘과 연계된다. 물론 그 욕구와 무의식, 삶의 요소에는 미로와 같은 인생에서 하루하루의 문제들을 담담하게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와, 존재일 수 있기에 들어차는 다양한 의문들, 생을 소모할수록 되레 성장하는 여타의 것들이 나란히 분포되어 있다. 여정에 관한 고뇌, 매 순간마다 다가서는 '감정의 복선들' 또한 복잡하게 내재되어 있다.
「나의 정원」(my garden)을 비롯한 일련의 연작들은 바로 그 '감정의 복선'을 전사한 것이다. 이 작품 모두 본질적으론 작가가 추구해온 '삶의 주제'(ego)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건 '자연과 나'의 현상학적 관계들을 보다 밀도 있게 보여주는 행위이자, 작가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발견하거나 기록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 다만 그 발견과 기록은 지시적이지 않다. 지시적이지 않기에 상상력을 가중시키고 해석의 여지 또한 넓다. 판에 눌려 한지에 옮겨진 다양한 자연물과 인물 등, 모든 소재들 하나하나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잎 작업은 자연 속 존재로서의 실존과 가깝다. 그 둘의 관계는 작가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서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순종하고, 순종함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한다는 게 옳다. 이는 물질 관계로 전이되지 않고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조건들로서, 작가는 이를 감성으로 걷어 올려 시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 "나의 정원 속 자연은 사색의 대상으로서 교감을 통해 작품으로 이어진다." - 작가 허문정
2. 꽃잎은 때로 매우 간결하다. 조형요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마치 한 폭의 문인화를 접하듯 여기로서의 작품이라는 여운까지 든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물을 주관으로 끼워 맞춰 또 다른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탓이다. ● 그렇게 재구성된 세계는 소박하다. 거창하지 않다. 대신 자연에서 느껴지는 맑은 기운과 섬세함, 미묘한 아름다움을 자연과 교감으로 인한 자신만의 감수성 아래 사라지고 변화하는 우리네 삶을 사색의 공간에 담았다는 게 옳다. 미학적 관점에선 꿈과 현실이 착종(錯綜)된 공상적 느낌도 배제하기 어렵다. ● 하지만 허문정의 여러 시리즈는 세상의 각종 재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순수한 심리적인 무의식이 내재된 조형이면서, 공중으로 맨드라미가 길게 뻗은 2009년 작품 「heart」처럼 간혹 치열한 현실성을 반영하는 무대이다. 희망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담보한 언어이고, 어느 땐 심연(心淵)의 이야기를, 감정이입이 뚜렷한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 쓰듯이 펼쳐놓는 장(場)이기도 하다. ●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을 보며 문득 자연과 살갑게 맞닿은 삶을 생각한다. 매일 적어나가는 한 장 한 장의 개인적 서사를 떠올린다. 그 서사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전개되기도 하나, 적어도 허문정에겐 사향(麝香)보다 진한 향기를 품고 있다. 그 향기 속에는 일상과 그 일상 속에서 읽는 자연, 나와 관계된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 더불어 숨 쉰다는 것,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리고 시간에 의해 재탄생하는 생의 섭리 등이 균등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밖에도 하루의 일과와 그 날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가의 그림에선 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능동적인 제스처4)를 목도할 수 있으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불안과 외로움, 인간의 욕망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론 현실에 대한 기존 관념의 탈출이자 자신을 찾아가는 자아실현의 여정도 개입되어 있다. 더구나 가느다란 선으로 다듬어진 인물과 눈동자는 작가의 삶, 그리고 멀리 있지 않은 세상을 묘사한 메타포(metaphor)적 형상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 그러고 보니 허문정의 그림들은 하나의 풍경과 진배없다. 단, 그 풍경은 단순히 사물을 모방하거나 대상에 대한 장식적 경향의 풍경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추상하는 공간이면서, 자신만의 살아 있는 상상력을 근간으로 한 무의식적 풍경에 준한다. 작가는 그 풍경 속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 흥미로운 건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의 구별이 없는 배치가 눈에 띄는 그의 작품은 우위(優位)를 구별하지 않는 작가의 평범한 삶과 평등한 삶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예술가인 자신의 내면과 현실이 은연 중 녹아 있는 셈이다. ● 이런 흐름은 회화는 물론, 꽃잎과 나뭇잎, 생을 다한 곤충을 거둬들여 작업에 응용하는 간접매체인 판화5)에서도 동일하게 발현된다. 즉, 자연의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작품을 통해 생태학적으로 사실적인 부분과 이질적인 부분"6)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나비가 꿀을 찾는데 꽃에 꿀이 없거나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나비와의 관계 등을 통한 아이러니"7)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 안에서조차 있는 그대로의 경험적 주체의 의식이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실 그의 판화8)는 원시적이고 비인격적인 무의식충동(이드)의 욕구가 그 결과로 드러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의식의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상태와 결이 같다. 이때 판화는 다양한 감정과 충동이 현실이라는 외계와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자아 그 자체로 지정되며, 이는 결국 그의 작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에고(ego)로 나아감이다. ● 에고(ego), 그렇다. 작가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주어지는 개인 내부 정사(正邪)의 의식을 미술표현이라는 예술장르로 소화한다. 이는 표현되어지는 많은 이야기들, 그 발원은 궁극적으로 '나'라는 존재성의 검증에 있으며 작가는 검증의 과정을 일종의 '코멘타리'로 부족하지 않다. 그것은 감성적인 관찰안에 의한 기록, 뛰어난 사색성, 그리고 그 내부에 안착된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과 인생사와의 관계, 삶속에서 쌓여진 감성들을 묵묵히 쌓아 감"9)에서 방점을 찍는다. 비록 가끔은 자아마저 비판하는 초자아(超自我)성을 엿보게도 하지만 그 삶 속 감성들을 묵묵히 그림으로 실어 나르기에 그동안 인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말이다.
이제 작가는 판화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삶과 자연의 연계성에 대해 한층 깊이 자문하고 있다. 스스로를 이탈시키면서도 물질을 뛰어넘는 정신성으로 생명의 은밀한 과정을 구현해 왔고, 서로 다르고 같음을 자연스럽게 배열한 채 나를 포박하는 삶과 자연의 이야기들을 은은함과 강렬함, 단아함 등으로 잘 담아내 왔다. ● 특히 여러 대상들을 평면 위에 다양한 색상의 어울림으로 완성하며 조형에의 강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은 스스로 한 예술가로서의 삶의 무게가 다른 무엇과의 조화로 존재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속박되지 않은 채 서로 공존하는 인간 삶과의 조화, 삶과 자연의 조화, 인간과 사물의 조화, 채움과 여백의 조화,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빛과 어둠의 조화, 채움과 비움의 조화 등이 그것이다. 허문정에게 회화와 판화는 그 조화를 가장 단단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무대이다. ● "작가 허문정의 작품은 폐쇄된 자의식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하는, 작가의 삶을 대리하는 색다른 재현인 것도 사실이다." ■ 홍경한
* 각주 1) 작가는 자연물을 직접적인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 작업이 등장한 시기를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채송화 꽃의 즙을 활용한 작업을 시초로 꼽는다. 2) 작업실 주위에서 발견한 칸나, 맨드라미, 수선화 등 3) 작가는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고 관찰하는 것은 삶의 한 일부분이다."며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적 소재들은 나의 감각과 촉각을 세우며 채집된다."고 자신의 작가노트에 적었다. 4) 작가는 이와 관련해 "마당에 있는 풀 한포기도 내겐 소중하다. 오늘은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오늘은 어떤 색깔의 노린재, 나비를 만나게 될지 설렘을 주는 마당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당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찰나의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은 자연의 사물들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선사해 준다. 어둠이 찾아오고 쓸쓸한 고독의 시간이지만 자연에 에워싸이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다. 하늘의 별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자신의 작가노트에 적었다. 5) 작가에 의하면 그의 판화는 주로 동판화로 제작된다. 그는 "에칭, 아쿼틴트, 연필로 얇은 유산지에 선을 그려 부식하는 소프트 그라운드 기법과 특히 실제 나뭇잎을 이용하여 실재감 있는 잎맥을 표현하는 소프트 그라운드 기법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6) 허문정 작가노트 중 7) 허문정 작가노트 중 8) 다만 그의 판화는 다소 복합적이다. 프린팅을 하지만 손으로 일일이 작품 이미지의 한 부분을 오려 수채화로 채색하거나, 동판 위에 꼴라주하여 찍어낸다. 판화 특유의 간접성과 복수성을 지니면서 에디션 없는 작품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단색 판화가 아닌 회화처럼 판 하나에 많은 색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9) 허문정 작가노트 중
Vol.20200907c | 허문정展 / HEOMUNJEONG / 許文丁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