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가장 긴 계절

현준영展 / HYUNJUNYOUNG / 玄俊暎 / painting.photography   2020_0729 ▶ 2020_0906 / 월요일 휴관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1×24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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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영 인스타그램_@hblue_journal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주말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과수원갤러리 Gwasu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106-9 (삼청동 56번지) 3층 Tel. +82.(0)2.733.1069 @gwasuwon

# 가장 어두운 때 ● 과로가 계속되어 잠이 계속 부족하던 어느 날,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져 의도하지 않게 아직 어둠이 깔린 새벽에 일어나게 되었다. 해가 뜨기 전 4시도 채 안 된 새벽은 모든 것이 멈춰있는 듯 적막했다. 잠자리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부터 일찍 잠을 청해 수면의 끝으로 달려가는 이들까지 어쩌면 가장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깨어있는 것은 좀 외롭지만 동시에 오롯하게 나만의 시간이라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빛도 없고 첫차도 다니기 전이라 새벽에 일을 시작해야 하는 농부나 노동자에게도 조금 이른 시간이다. 물론 새벽배송의 등장으로 아주 짧은 도시의 음소거 순간조차 또 다른 풍경이 되어가고 있지만. ● 물론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밤을 지새우고ᅠ하루의 피로를 끌어안은 채 새벽을 보낼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좀 비장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이 어둠의 끝자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간은ᅠ가장 어두운 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해뜨기 직전이 실제로 가장 어두운 순간은 아닌 것 같다. 해가 지평선 바로 아래에 있는, 빛이 막 열리기 직전의 하늘은 아주 옅지만 뭉근한 푸르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표현은 긴 어둠을 감내한 존재들의 심리적, 감정적인 표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터널을 지나고 있어 더는 고통을 참기 어려운 자들에게 보내는 위안 같은 말. '곧 해가 뜰 거야.'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9×30cm_2020
현준영_Untitled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20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0×39cm_2020

# 어둠의 이유 ● 완벽하게 암전된 어두운 곳에 들어서면 처음엔 모든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한 발자국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잠깐 패닉상태에 휩싸인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암흑 속에서ᅠ나타난다.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단계의 회색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어두운 곳에서 조심히 걸으며 알았다. 캄캄한 골목 끝에서 기척이 들리는지 청각을 곤두세우거나, 어두운 극장 계단에서 넘어질까 봐 벽을 더듬기도 한다. '어둠'은 관찰이나 통행에 걸림돌이긴 하지만 이 불편한 제약으로 인해 아둔해졌던ᅠ오감의 돌기가 섬세하게 깨어난다. 그리고 나면 이것저것 인지하지 쉬울 때 오히려 놓쳤던 것들을 '어둠' 안에서ᅠ포착하게 된다. ● 창밖을 바라보면 망망대해의 멀고 깊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흐린 날 밤이면ᅠ가로등 하나 있지 않은 곳에서 보는 밤바다는 하늘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위아래도, 안과 밖도, 너와 나도 없어지는 검고 광활한 적막이다. 하지만 그것이 디스토피아나 폐허는 아니다. 오히려 무음(無音)에 가깝다. 맑은 날 밤엔 도시의 빛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별이 뚜렷하게 보였다. 또 만월(滿月)의ᅠ밤바다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 달빛을 가득 비추었다. 달빛이 그토록 밝다는 것을 '어둠' 안에서 처음 알았다. 날씨와 절기 같은 너무 당연한ᅠ세상의 섭리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안에 있었다.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1×24cm_2020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0×39cm_2020
현준영_Untitled_종이에 오일파스텔_35.7×24.5cm_2020

# 밤의 질문 ●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은 날카롭다. 그 빛에 비친 장면은 예리한 칼로 잘라낸 단면처럼 첨예하며, 색은 강렬하고 분명하다. 같은 장면이어도ᅠ물에 희석한 옅은 물감의 무게나 따뜻한 필터가 더해진 사진의 온도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다. 이 빛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바라봐야 할 방향을 명확히 고지한다. 눈을 매혹하는 다양한 색이 부유하는 시간이거나 풍요로운 선택이 가능한 계절이라면 우물쭈물하거나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것들을 깨닫게 한다. 모든ᅠ동력이 멈춘 줄 알았던 달의 시간에 삶의 이치가 재편되고 있고ᅠ죽음이 묻히는 어두운 땅속에 생명의 뿌리가 자라난다는 것을 떠올린다.  ●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다시 읽고, 정치적 발언과 자신의 삶 그리고 작품을 치열하게 일치시키려 했던 '에이드리언 리치'는 결혼과 육아의 시기를 회고하며 '당시 나는 어떻게 해도 충분하지 않았던 단 한 가지, 바로 생각할 시간을 원했다'고 했다. 밤은 모든 것이 멈춘 시간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저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 이런 문장이 있다. "시는 바다를 건너거나 폭풍을 거슬러 어떤 '신세계'나 '약속의 땅'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날개를 접고 노래하지는 않는다. 시는ᅠ주어진 것에 대한 안주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향한 질문이다." 저자는 예술이 거대한 제안이 아니라 또ᅠ다른 나를 향해 계속 질문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나아가ᅠ죽은 자들의 말을 화석처럼 온전히 박제할 것이 아니라 어둠의 땅에서 꺼내와 권위와 견고함을 깨기 위해 집요하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 또 다른 문장 하나, “상상이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낮이 밤이 될 수 있고, 사랑이 미움이 될 수 있도록." 온전한 나의 시간에 물리적 밤을 다른 밤으로 전환하는 상상을 시작하는 것, 그렇게 균열을 내는 상상이 혹자에게는 피난처이고 혁명이다. ■ 김화용

* 각주 1)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이주혜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2020, p416 / 원제 : Essential Essays: Culture, Politics, and the Art of Poetry (2018)

Vol.20200729a | 현준영展 / HYUNJUNYOUNG / 玄俊暎 / painting.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