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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류가헌 사진책 전시지원 2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blog.naver.com/noongamgo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 볼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 '오리'를 만난 '죽음'은 이렇게 말한다.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버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그동안 죽 나는 네 곁에 있었어. 만일을 대비해서." ● 죽음은 늘 삶의 곁을 맴돈다. 다만 삶이 그것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떤 이들은 미처 알아채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죽음과 내내 함께하기도 한다. 사진가 현준영에게 삶은 '죽음과 줄곧 같이 해 온 삶'이다. ● 그녀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동안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죽은 이를 보러가는 길에는 언제나 새 생명도 함께였다. 삶과 죽음이 맞닿은 지점. 그 지점에서의 감정과 사유들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곧 여러 해에 걸친 일련의 사진 작업 『세사람』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납골당에 갈 때마다 죽은 이들의 공간에 자리한 산 자들의 흔적을 무심코 카메라에 담았었다. 사진에는 이따금 남편과 아이도 비쳤고 빈 봉안실의 모습도 비쳤다. 해를 거듭하고 아이가 자라면서 사진은 쌓여갔다. 그러던 중 어떤 사진 하나가 유난히 아른거렸다. 명절에 찾은 납골당에서 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망자들을 기억하며 이름 옆에 붙인 형형색색의 꽃이 무늬를 이루며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 그 한 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수년 동안 촬영한 사진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었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중첩되어있었다. 사진을 모아 직접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오롯이 사진만이 주인공인 책이 되기를 바랐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손수 사진을 배열하고 인화지에 인쇄하여 실 제본으로 엮었다. 내용의 구성부터 책의 형태와 크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본 사진집이 『세 사람』이다. ● 『세 사람』은 죽음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하여 남편과 아이에 초점이 맞는 사진에서 기억에 대한 사진으로 이어진다. 사진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현준영 작가 자신과 남편, 아이일 수도 있고, 돌아가신 남편의 부모님과 아이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세 사람을 관통하는 것은 생사의 겹침이다.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 마치 낮고 따스한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현준영의 『세사람』 전시작과 사진집은 류가헌에서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류가헌의 두 번째 사진책 전시지원프로그램으로, 대중유통이 되지 않는 소량 수제본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조예인
모두 다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준 사람들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내일 새벽 3시에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다. 마지막 곡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멤버인 이브라힘 페러(Ibrahim Ferrer)의 곡 Marieta가 나왔다. 이제는 모든 멤버가 고인이 되었다는 말에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늘 누군가의 죽음을 듣는다는 건, 비록 그 시간차가 상당히 벌어지더라도 익숙하지 않다. 나는 디제이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겨주지 못하고 떠났을지라도 누군가는 늘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 몇 년 전 11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와 한 집에 살게 된 이후 나는 그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거실 장식대 위에 두고 일 년 남짓 살았다. 그 시절 나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거실 소파에 앉으면 늘 같은 모습으로 그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것이 인식되지 못하던 시절에는 죽음 역시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내 배는 점점 불러오고 주인을 먼저 보낸 물건들과 하루의 긴 시간을 함께하니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기 이 집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어디로 긴 여행을 떠난 동안 내가 이 집에 잠시 사는 걸까. 어딘가로 이사를 가면서 이 짐들은 다 버리고 간 걸까. 생명은 어디서 오는 걸까. 태어난 아기와 함께 누워 나는 곧잘 너는 어디서 왔니 라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기는 응, 응 이라고 반응을 보였다. 어딘가에서 왔다면, 어딘가로 간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어디로 갈까. 사람들의 말처럼 영혼이 떠돌며 이 세상을 보고 있을까. 그의 어머니는 생전 아들의 결혼도 보지 못하고 손녀도 한번 안아보지 못했는데 어딘가에서 이 삶들을 다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승에서의 입장들이 있는 것처럼, 저승에 있는 이들은 살아있는 자들을 어떻게 기억할지 상상해본다. ● 누군가 이사 가는 날, 아파트에 걸린 고가 사다리를 보며 나는 누군가를 기억한다. 밤새 눈이 내린 아침, 순서 없이 빠져나간 자동차 아래에 눈이 쌓이지 않는 검은 아스팔트를 보며 나는 누군가를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심코 내려다 본 한여름의 한강 수영장. 수영장을 둘러싸고 사람들은 휴식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 가운데 텅 비어있는 수영장을 보며 나는 누군가를 기억한다. 그리고 추모공원에서 이제는 망자가 된 가족의 이름들을 찾아 그 위에 붙여놓은 작은 꽃송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늘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한다. ●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다가 성당 벽에 붙은 현수막을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주님,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소서. 작년 4월 엄청난 사건이 있고 난 이후다. 나는 성당 벽에 붙은 그 '기억'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곱씹어 본다. ■ 현준영
Vol.20150512b | 현준영展 / HYUNJUNYOUNG / 玄俊暎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