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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9_090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0)2.733.8295 www.galleryon.co.kr
과거는 '있다.' Past 'is', Present 'was'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에피소드로 더 잘 알려진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는 기억과 시간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이다. 마들렌과 함께 찾아온 어린 시절의 기억은 주인공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 언제나 필요하면 호출되는 '의지적 기억'이 아니라, 상대적인 무용함 때문에 심연에 가려져 있던 무의식 속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주인공의 경우 과자를 입에 넣는 순간, 즉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우발적으로 찾아온다. 이 기억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 프루스트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간의 철학자 베르그송에 따르면 과거는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것을 정의하는 순간 바로 과거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직접과거만을 지각할 수 있다. 우리의 과거는 기억의 형태로 망각 속에서, 잠재된 형태로, 빛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우리와 함께 있다.
현준영은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파란 가방 속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흑백사진 한 무더기와 만난다. 그리고 삼십 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단번에'대면하게 된다. 처음엔 그 양에 놀랐다.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가 쏟아지듯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현준영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수년간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군인 특유의 '각'잡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극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인 포즈인데 작가는 그 포즈의 독특함이 아니라 친숙함 때문에 더 놀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지금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반사적으로 사진에서처럼 '각'을 잡으신다는 것이다. ●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통해 단번에 어린 시절 콩브레로 이동했듯이 현준영은 아버지의 흑백사진을 통해 단번에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어느 지점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과거에서 아버지의 현재를 발견하게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진 속 아버지의 목에 걸려 있는 'RICOH'카메라였다. 그것은 작가가 스무 살 무렵, 사진을 배울 때 사용했던 첫 수동 카메라였다. 아버지의 과거가 자신의 오늘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가 출생이후부터 살아온 역사, 심지어 출생 이전의 역사를 응축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출생이전의 성향들도 더불어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존재는 지난 모든 과거의 응축이다. 하지만, 지난 과거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는 나의 전부이지만, 그런 과거를 호출할 수 있는 것은 '나/나의 신체'뿐이다. 과거가 '짐'이 될지 '힘'이 될지는 오직 오늘의 나에 달려있다.
기억, 각색 ●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은 시작됐다. 망각된 시간에 빛을 비추는 작업. 그것은 부모의 시간이자 현준영의 시간이다. 과거는 현재로부터 호출되어 이미지화 될 때 변형을 거치게 된다. '각색'된 '기억'이란, 과거가 현재를 만날 때 발생하는 질적 변화다. 그런 면에서 매우 아날로그적인 콜라쥬 기법을 사용한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작업을 거치며 과거는 변형되지만, 이때 탄생한 재현물은 다시 복제불가능한 원본성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콜라쥬처럼 기억이란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것, 연쇄성이 없는 파편화된 채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지 않은가. ● 현준영은 과거의 사진 속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었던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세월이란 이름으로 빛바랬던 청춘을 각색한다. 작가는 꽃, 하늘, 바다와 같은 자연, 그리고 현대화된 도시 속에 생기발랄했던 젊은 시절 두 사람의 모습을(흑백 이미지 그대로)호출했다. 그런데, 마치 작가의 지시에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재로 불려온 과거의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작가가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상당히 대조적인 방법으로 각색되어 있다. 아버지의 경우, 군인 시절 사진이 다수를 이루는데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에 단순화된 회색 톤의 배경을 매치시켰다. 반면, 어머니는 간호 복을 입고 있을 때(어머니는 간호장교였다)표정이 가장 굳어있는데, 작가는 마치 어머니를 위로라도 하는 듯 배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데, 작가의 아버지는 조종사로 어머니는 간호사로 각각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 시기 전쟁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무엇을 보았을까. 표정에서 드러나는 전쟁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상이한 태도-, 그것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 그런데 군복을 벗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머니는 바다, 하늘, 빌딩 숲, 어디서든 밝은 표정으로 배경과 하나 되어 있다. 특히 종로 광화문 일대 빌딩 숲 앞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세계를 만든 주역이 바로 나라는 듯,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광고판에 둘러싸인 도심 한 복판에서 군복을 입고 서 있는 아버지(사진15)의 모습은 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번 작품을 굳이 사회, 정치적 의미로까지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급속하게 탈권위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7,80년대 권위주의 군부독재 시절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무겁지 않다. '군복', '역사'라는 무거운 소재가 긍정적인 성격의 개인(실제로 작가의 아버지는 매우 유쾌한 분이다)과 만나면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과거가 힘이 될지 짐이 될지 조율할 수 있는 주체는 '개인'이므로!
다음 이야기 ● 현준영은 이번 작업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의 존재가 월남전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월남전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의 관심이 가족/개인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억은 그녀에 의해 어떻게 각색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될지 강력한 '힘'이 될지 궁금해진다. ■ 박민경
Vol.20090902d | 현준영展 / HYUNJUNYOUNG / 玄俊暎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