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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플랫폼 팜파 Platform Pamp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39 www.instagram.com/platform_pampa
수옥의 사물 ● 쓸모없이 부패하지 않고, 섬세할수록 허공을 매만지는 기술로 관계를 맺다 ● 그림을 배운다는 핑계로 그녀의 공간을 매달 방문하게 되었다. 물감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음질이 고르지 않는 낡은 음악을 듣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붓질을 하는 사치를 잠시나마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공간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이전 연희동에서 미장원을 할 때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커트를 하러 오는 손님이었다.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그녀에게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같이 하자 했다. 그후 몇몇 작가와 함께 모임을 한지 이 년이 다 되어 갈 무렵 그림을 배우겠다고 졸라 얼마 전부터 그녀의 집을 가게 되었다. 이제는 약속을 잡는 성가신 일을 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진행되는 연극처럼 그녀와 나는 서로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 심수옥은 여성작가다. 이 말이 성차별적 발언으로 금기시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작업에서 발현되는 여성성이 그녀의 삶과 분리될 수 없어 그냥 작가라고 부르면 내게는 모자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를 젠더적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그녀의 작업과 그녀에 대한 오류를 가지게 된다. 그녀의 여성성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출발한다. 존재의 밸런스를 지향하여 드러나는 관계적 특질로 그녀의 작업 곳곳에 내재된 이러한 특이성은 감상자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관조와 연민의 양립하지 않은 감정은 하나의 덩어리로 엉켜 색과 형태를 남긴다. 구체적으로 잡히지도 가담하지도 않은 서로를 목격했던 시선만이 붉게 혹은, 깊은 얼룩으로 드러난다.
작년부터 지켜보았던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그림은 원형이 사라지기 전 속살과도 같은 대상을 그렸다. 돌보지 않아 어느새 낡아버린, 그러나 비로소 돌출되고 튀어나와 세계가 되어버린 기억의 이미지. 겹겹의 없음은 소녀로, 꽃으로, 고양이로 치환되어 그녀의 공간에 이미 사물이 되어 놓여 있었다. 쓸모없이 부패하지 않고, 섬세할수록 허공을 매만지는 기술로 관계 맺은 다른 사물처럼 허술히 어우러져 바라보아야 보이는,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물로 있었다. ● 그것이 책이든, 그릇이든, 화구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마저 그녀가 관계 맺는 방법은 비슷한 모양새를 가진다. 간섭하고 가꾸기 보다 질문을 멈추고 그들이 말 걸어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사물로 곁에 둔다. 고양이 같은 개는 하루 종일 침대에, 개 같은 고양이는 그녀의 무릎에, 딸 같은 남의 자식을 기다리고, 남의 자식 같은 딸을 지켜보며, 식물 같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 같은 식물을 키우는… 그녀의 집에 있는 모든 사물은 공평하게 위치해 있다. 따뜻한 밥을 지어먹고 그림을 그리며 삶과 화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학수고대했던 그녀가 그 곳에서 팽창하는 것처럼. ●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고양이가 된다. 접시꽃이 된다. 오래된 언니가 된다. 그들이 내어 준 빈틈으로 그들을 베끼는 밸런스를 매일매일 끼니를 챙기듯 꾸준히 발휘하며 명멸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 명료한 사물이 된다. 한 달에 한 번, 나 또한 서로를 해명할 느슨한 거리로 그림을 그리며 풀이 되고, 딸이 되고, 정물이 되고, 풍경이 되고... 기꺼이 수옥의 사물이 되어 그녀의 공간에 있는다. ■ 이혜진
Vol.20200527a | 심수옥展 / SIMSUOAK / 沈守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