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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이아 ARTSPACE IAA 제주도 제주시 중앙로14길 21(삼도2동) B1 전시실1 Tel. +82.(0)64.800.9339 www.artspaceiaa.kr
인생의 빛을 채집하여 색으로 응결시키다 ● 현대미술을 특징짓는 변화 중의 하나는 추상미술의 출현이었다. 세잔을 기점으로 큐비즘과 야수파를 거치면서 미술은 더 이상 외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선과 색 등의 조형적 아름다움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추상미술에 익숙해졌지만, 당시에는 추상미술을 왜 그리는지, 그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혼란스러워했다. ● 많은 비평가들은 이러한 대중에게 추상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노력했다. 그 중 빌헬름 보링거는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불안감으로부터 추상미술이 나왔다고 보았다. 그의 논리는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에 느꼈던 위기의식과 현대 추상미술의 시작을 연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반면에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회화라는 매체의 순수성'이란 측면에서 추상미술을 이해하고자 했다. 즉 회화는 2차원의 평면이라는 매체적 특징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환영적인 공간 표현 대신 선과 색의 순수한 조형성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비평가들의 논의와는 별개로 추상 미술가들도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많은 글과 말을 남겼다. 몬드리안은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선과 단순한 색채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연을 초월한 보편적 조화와 통일적 질서를 보여주고자 했다. 칸딘스키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내적 생명력을 회화의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이 추상화이며, 이를 통해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과 범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었다. 목회자가 되고자 했던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정을 주고자했다면,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음악처럼 감동과 정신적 위안을 감상자들에게 주고자 했다. ●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자였던 잭슨 폴락은 신체의 움직임과 힘에 의해 표현되는 붓터치가 만들어내는 효과와 함께 페인트의 질감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양상에 관심을 보였다. 한편 마크 로스코는 커다란 색면 작업을 통해 명상을 유도하였다. 추상 1세대의 선배들과 달리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과 그 에너지를 보여주거나, 2차 세계 대전 후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색채를 통해 숭고함으로 승화시켰다. ● 이러한 추상미술에 대한 비평가들과 작가들의 많은 논의는 추상미술이 감상자들과 소통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또한 우리는 작가마다 추상미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다층적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이는 그만큼 감상자들이 추상미술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볼 수도 있고, 역으로 감상자들에게 해석의 자유로움이 많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정하 작가의 작품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해보기로 하자. 정 작가 작업의 주재료는 색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물감의 색이 아니고, 건축용 페인트와 에폭시 레진이 사용된다. 작가는 건축내장재 위에 빠르게 굳는 특성의 에폭시 레진을 이용해서 컬러의 번짐과 발색 효과를 최대한 활용한다. 또한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는데, 입자의 브라운 운동을 응용하여 마치 연기처럼 색면의 윤곽을 흐리게 한다. 때로는 레진의 두께를 달리하며 다양한 빛의 투과와 반사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 결과는 보석처럼 영롱하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연출된다. ● 정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건축용 페인트와 에폭시 레진, 건축내장재, 나무판, 네온등 등의 재료는 공업용 재료를 공업용 도구를 통해 작업했던 미니멀리즘 작업 방식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정 작가의 「라이트 픽셀(Light Pixel)」을 포함한 설치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순한 형태와 패턴의 동어반복적 표현 방식 역시 미니멀리즘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정 작가와 미니멀리즘과의 공통점은 거기까지이다. ● 정정하 작가가 건축용 재료를 사용하는 출발점은 미니멀리즘과 완전히 다르다. 미니멀리즘은 감성 및 자아의식의 감정적 표출을 중시한 종래의 미술 개념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출발하여 감정이입이나 마티에르 등 작가의 개성을 최소화 시키고자 하였다. 그러한 노력은 결국 단순하고 기하학적 형태의 완전히 객관적이며 비표현적인 작품에 도달했다. 반면에 정 작가의 관심은 오롯이 빛이다. 그리고 이 때의 빛은 에너지이다. 과학적으로는 전자 에너지가 들뜬 상태에서 안정된 기저 상태로 안정화 상태를 되찾으면서, 그 상태의 차이에 상당하는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된다. 정 작가가 추구하는 에너지로서의 빛은 그런 과학적 차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작가가 말하는 빛으로서의 에너지는 타인들의 삶이며, 그 삶의 에너지를 색에 담아내고자 한다. ● 빛과 타인의 삶이란 에너지, 색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색 시험관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 「라이트 픽셀」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실험관이 줄지어 약 50개가 한 줄을 이루고, 그러한 줄이 20개 정도 한 벽을 가득 채운 모습은 마치 실험실의 내부 혹은 제약회사나 약국의 벽장을 연상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약장」시리즈가 떠올랐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약을 설치한 허스트의 작품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약장에 대한 기억을 포함해 그가 즐겨 다룬 주제였던 죽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정정하 작가의 「라이트 픽셀」도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다. 작가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페인트 매장에서 근무하며 매일 목격했던 일이 작업의 동기였음을 밝힌다. 매장의 다양한 페인트 색과 그들을 섞어 만들어 나오는 가능한 조색 중에서 원하는 색을 찾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감정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가를 작가는 매번 관찰하였다. 마침내 그들이 선택하여 페인트 통에 담는 것은 단지 화학물질인 페인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과 소망, 기대, 욕망이 뒤섞인 그들의 에너지이다. 그것은 곧 그들의 인생이란 빛이다. 작가는 바로 그 빛을 채집하고자 했다. 작가는 긍정의 에너지이자 인간다움의 편린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 목표의 구체적인 수단은 바로 색이다. 매장을 찾은 사람들이 지닌 꿈과 소망에 대한 물질적 대체물인 페인트를 담아주며 그 일부를 시험관에 모은 것이 바로 「라이트 픽셀」이다. 수백 명의 삶과 욕망이 채집되어 영롱한 빛을 발한다. 그들의 에너지가 색으로 응집된 것이다. 그 어떤 영화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고 파노라믹하다. 마치 수백 편의 색채심리극을 보는 듯하다. ● 또 다른 설치 작품 「라이트 픽셀」이나 「라이트 픽셀 A.R. 86-1 ~ A.R. 86-10」에는 동그란 파렛트의 틀 속에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은 점(dot)이 보인다. 이 점 역시 다양한 인생의 에너지를 채집한 것으로 하나의 색점이자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이다. 픽셀이나 도트는 현대 디지털 문화의 언어이다. 하나하나의 픽셀(화소)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 듯이, 수많은 도트(점)가 모여 인간의 사회와 역사를 만든다. 마치 잠자리의 3만개 홑눈이 모여 하나의 시각을 형성하듯. ● 술병 혹은 향수병 속에 액화된 빛으로 표현된 작품에는 글자와 숫자가 덧붙여져 있다. 이는 페인트 매장에서 고객이 고른 페인트 컬러의 고유 이름과 그 고객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기억하기 위한 작가의 표식이다. 작품 제목에도 A.R.이 붙어있다. 이는 absorb(흡수)와 reflex(반사)의 약자이다. 빛을 채집하고 모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작가의 작업 의도와 철학이 담긴 용어일 것이다. 작품 제목의 숫자는 작가의 작업 순서이자 작업의 진화 과정에 대한 표식이다. ● 뾰족한 깔때기 형태 혹은 선인장 가시 형태에 네온 컬러를 집어넣은 설치 작품인 「A.R.4」, 「A.R.23」, 「A.R.24」, 「A.R.1117」은 이질적인 컬러감과 함께 기묘한 그림자 효과로 시선을 끈다. 작가의 개인적 트라우마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 트라우마의 구체적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관람자 역시 자신의 아프거나 두려웠던 경험들을 떠오르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빛을 채집하여 색으로 응결하고자 하는 정정하 작가의 작업은 매체의 특별함에 감동하고, 또 그 신선한 아이디어에 감동하게 된다. 특히 에폭시 레진이 만들어내는 빛의 영롱함과 아련함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만큼이나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로스코의 색면이 명상을 통해 비극적 숭고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면, 정정하 작가의 응집된 색은 꿈과 희망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정정하 작가의 작업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과 즐거운 기대를 갖게 된다. ■ 김승환
Vol.20200522e | 정정하展 / JEONGJEONGHA / 鄭貞夏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