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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토크 / 2020_0426_일요일_04:00pm
패널 / 황아람(SOSHO 기획자)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8-1 2층 Tel. +82.(0)2.797.7893 www.willingndealing.org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문장의 소개 문구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2020년 4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출몰하여 한국에서 극심한 전염을 일으키고 있던 시기였다. 전시라는 매체가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역으로 사회적 현상이나 사건 때문에 전시의 제작과정, 진행방식, 행정 나아가 개념까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개인전은 일반적으로 한 작가의 작업관을 개괄하여 소개하는 성격이 강한 만큼 외부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개인의 역량이나 완고한 개념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한황수 작가의 개인전'은 이러한 양면적 상황을 전면에 마주하는 동시에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수완이나 술책을 만들어야 했다. 전시 제목 'wheel and deal'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만들어졌으며, 전시공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Space Willing N Dealing)'과의 언어적 유사성도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8년이란 긴 기간 동안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근무하며 전시공간을 촬영하고 기록한다. 그렇게 아카이브한 사진들을 수집, 관찰, 조합하여 화면에서 새로운 공간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전시는 작가가 구현하는 공간을 실제 공간에 '진행'시킨다.
한황수 작가의 사진은 한 장소를 가리킨다. 이 장소는 작가의 근무지이자 미술공간이면서, 작업의 대상이자 작업의 참조이기도 하며, 작업의 결과물이자 전시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작가의 기억과 시간이 응고된 심리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다년간 이 장소를 드나들었던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겐 공동의 경험이 깃든 장소이자, 이 장소가 처음인 혹자에겐 그저 익명의 장소이기도 하다. ● 작가는 이 모든 장소를 각각 수집하고 관찰하며 조합하면서, 그것들을 과감히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작가가 구현하는 공간은 분명 실재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가 구현해낸 공간은 저마다의 시간과 기억을 불러내지만, 그것들을 결코 읽어내는 법이 없다. 작가는 공간을 구체화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수많은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의미가 축적된 장소들을 한 곳에 쌓아 올림으로써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장소로부터 공간을 분리한다. 작가는 그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보다, 공간이 '어떻게'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한정된 영역을 상정한 후, 일정한 규칙을 적용하여 작업 안에서 '플레이'하는 방식을 취한다. 약 4천 여장의 기록 사진을 작업의 지지체로 만든 상태, 다시 말해 제한적인 선택폭을 작업의 방법론 그 자체로 활용한다. 어떤 기록 사진이 최종 작업 결과물에 사용되었는지는 여기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작업의 재료인 기록 사진 아카이브 전체가 이미 작업 과정 전반에 걸쳐 활성화되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억, 시간, 조화, 조형 등 다양한 갖가지 요소들을 붙이고, 떼어내고, 합치고, 지우며 '플레이'할 뿐이다. '플레이'는 어떤 의미나 뚜렷한 목적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유희 혹은 행위 자체가 내용이 될 때 일컫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일련의 작업 과정이 바로 이러한 '플레이'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있다.
한편 사진을 조합하는 행위가 마치 빈 종이 위에 랩을 쓰는 것 같다고 느낀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 방식은 기록이나 재현보다는 발화에 더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발화의 형태, 즉 '무엇을' 말하기보다, '어떻게' 말하기에 작가는 더 관심을 둔다고 볼 수 있다. 작업 시리즈의 제목이 'My Rhyme'이라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운율이나 언어유희의 형식은 작업의 방법론과 여러 유사성을 공유하며 등치된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펼치는 작가의 '플레이'는 각기 다른 시간의 언어가 축적된 장소들을 스치듯 경유한다. 때론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치 있게, 때론 뻔뻔하게. 그러나 친절히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닌, '공간'이다. ● 발화점이 대화의 참조점으로 되돌아올 때 한황수 작가의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가 질문한다. 작가의 '말하기'와 관객의 '듣기'가 서로 어긋날 수 있기에, 우리는 장소로부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황아람
Vol.20200410b | 한황수展 / HANHWANGSU / 韓黃水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