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719i | 황민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20_0104_토요일_05:00pm
후원 / 서물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더레퍼런스 THE REFERENC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Tel. 070.4150.3105 www.the-ref.kr
현실과 상상 사이의 징후들 ● 이것은 비단 주인공 지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꿈의 자리를 털고 나와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우리들의 희망과 꿈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완벽한 유토피아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황민규는 영상 「터전의 끝」(2020)에서 가까운 친구의 일상을 추적한다. 서른세 살의 지진은 누군가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는 목소리이자 실체로 등장한다. 그는 벅찬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특별할 것 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일상에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희망의 자리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평화는 지진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그를 4대 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으로 어처구니없이 무너진다. 이 단순한 행정적 처리에 따라 지진은 임대주택을 회수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외부로부터 작용하는 힘은 그를 가난의 지위에서 박탈시키는 동시에 또 다른 생존의 문제와 직면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진이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돌파해보려 할 때, 가혹한 현실과 이상의 낙차는 더욱 증폭되며 결국 지진에게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더욱 명확하게 암시한다.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편집된 1년의 시간은 결국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현재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공회전하다 겨울과 함께 공허하게 끝나버린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고용 불안정, 내 집 마련의 희망, 무한 경쟁, 일확천금의 꿈 등 동시대 청년이라면 대부분 공유하고 있을 세대적 문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황민규는 질문의 범위를 조금 더 확장시켜볼 것을 제안한다. 모두가 원하던 세상은 결국 도래했는가? 꿈의 끝자락에서 어떤 징후들을 감지하는가? 이 불안의 시기를 견뎌내면 무엇이 오는가? 2020년의 미래가 왔지만, 경제 불황, 빈곤, 실업, 재해, 폭력 등 퇴행하는 현실을 견뎌내는 개인들 앞에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공의 축은 묘연하다. 전시 『기적을 노래하다』는 작가가 포착한 시대적 불확실성과 긴장감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계속해서 환기한다. 여명인지 노을인지 모를 붉은빛이 드리운 하늘에 겹친 새들의 그림자, 전후 관계가 생략된 채 결말에 도달한 부서진 자동차, 이 모든 것들이 알 수 없는 사건의 끝을 상상하게 한다. 「아날로그 환영」(2020)의 일렁이는 은빛 덩어리는 극단으로 치닫는 세기의 단위 끝자락에서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존재를 닮았다. ● 작가는 주로 90년대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대사 푸티지 삽입, 상투적인 연출 효과, 현실과 가상의 교차 등을 활용하여 장면들을 완성해간다. 20세기 말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비관론적 세계관은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미된 하위문화가 대량 생산되고 흥행하는 데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그는 이 컨텐츠들이 기적을 기대하는 오늘의 허망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면서도 여전히 현재와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소환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서로 다른 시간 축은 기묘하게 겹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말하자면 그는 시대를 단언적으로 진단해내기보다 개인들이 공유하고 있을 정서의 토대 위에 현실과 가까이 닿아있는 가상의 이야기들을 세밀하게 엮어내는 방식으로 시대의 목소리를 그려내는 것에 충실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낭만의 낭떠러지에 도달한 오늘, 모두는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불안의 시기는 곧 희망의 시기이기도 하다. 종말의 직전, 혹은 역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기 이전에는 퇴폐적인 경향(decadance)이 나타나고, 그 이후에는 반드시 쇄신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상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시 황민규가 짜놓은 스토리보드를 살펴본다. 작품들에 드리운 어둠의 징후들 속에서 옅은 희망의 단서들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노을이 지는 서정적 풍경에 전형적인 애니메이션 푸티지 대사들을 겹쳐 만든 「전언」(2020)은 마치 지금껏 이 시공을 견뎌내고 있는 개인들의 우울에 공감하는 메시지 같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허구의 공간에 함몰되어 기적을 기대하지 말되, 언젠가는 이 고난의 순간들을 스스로 지나가야 할 것임을 이야기한다. 「지금 드는 생각」(2020)에서 지진은 본편에서 미처 다 드러내지 못했던 심경을 밝히며, 가난과 자립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는 곧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동기와 에너지를 찾아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 용기가 또다시 현실의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은 여전히 자명하지만 말이다. 전시장 곳곳에 남겨진 단서들의 틈에서, 결국 우리는 불투명한 시간의 끝을 마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음에도 우주와 현실 사이의 낙차를 조율해가며 언젠가 이 불안의 시대를 느릿느릿 관통해 갈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지진이 그러했던 것처럼. ■ 박지형
황민규 | preface ● 작가 황민규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영향에 주목하며 8~90년대의 서브컬처를 통해 대중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그려낸다. 특히 영상 매체에 기반하여 기록과 조작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세기말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동시대의 불행한 사회를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 이번 개인전의 메인 작업 「터전의 끝」은 친구의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의 친구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전세자금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지만, 서류상의 문제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친구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큰돈이 필요하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던 중에 힙합 오디션에 도전하게 된다. ● 황민규의 다큐멘터리 푸티지는 서브컬처의 대사들과 편집법을 통한다. 주인공의 음성을 제외하면 이미 존재하는 대사들로 채워져 있는 작업은 90년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재조합 과정으로 과거의 대사를 현재에 소환하여 미래를 바라보며, 이를 통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고충과 세기말의 우울한 정서가 시대를 관통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 황민규
Vol.20200104a | 황민규展 / HWANGMINKYU / 黃敏圭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