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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720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웃사이트 out_sight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가길 12 1층 (혜화동 71-17번지) 1층 www.out-sight.net
플라스틱 사랑의 세계 ●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등을 맞대어 앉은 두 사람이 있다. 가상과 현실,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한 이 장면이 전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해질 즈음 둘 사이에 놓인 문장으로 시선이 향한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물음이 이들이 나눈 대화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대신하는 어떤 애틋함일까? 하지만 전시의 풍경 그 어디에서도 애틋한 감정선을 이어갈 만한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문을 연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진 속 두 사람도, 반가운 인사도, 애틋함도 아닌 멸망을 앞둔 '세계'다.
예기치 못한 멸망을 앞둔 세계 어디쯤에서 시작되는 이곳은 불안한 현실로부터 세계를 지키려는 히로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를 지켜줘」) 인류 최후의 도시에 도착한 히로인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영웅을 찾고 있을 무렵, 맞은편에서는 재앙의 장면들 사이로 히로인을 향한 외침처럼 영웅의 다짐이 흐른다. (「나는 너를 지킨다」) 마주 보는 두 이야기의 화자는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듯 보인다. 히로인이 영웅을 찾게 된다면 세계는 모든 불안에서 벗어날 것만 같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다르게 재앙은 멈추지 않는다. 과연 그는 세계를 지킬 수 있는 걸까? 이러한 의심을 거두려는 듯이 작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설정에 힘을 싣고, 다시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한 단서들을 남긴다. 미시적인 인간사보다 더 거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붉은 행성, 자연의 지각변동을 연상시키는 화산 분화구, 소리 없는 폭발의 흔적과 심각한 분위기에 사로잡힌 누군가의 표정에서 어떤 징후를 읽어 보기로 한다. 각각의 장면들을 하나씩 연결해볼수록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부분들로 인해 서사 안으로의 몰입이 쉽지 않다. 화산폭발과 잿빛 뭉게구름, 심각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분위기에서 어떤 위기감을 떠올려보지만 깔끔한 프레임으로 정돈된 세계의 풍경은 오히려 이미지의 감상에 가까워진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의심을 뒤로하고 다시 히로인에게 다가가 본다.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오지만, 기대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의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결국 상황종료라는 말과 함께 세계를 지키려 했던 그의 여정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공원을 거닐며 자신을 위로한다. 평화로운 공원의 시간은 또 다른 희망을 내비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작고 매끈한 플라스틱 덩어리다. ● 황민규의 『이것은 사랑인가요?』는 주로 히어로물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형식인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세계를 지키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멸망의 기로 앞에 선 세계라는 설정과 함께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나를 지켜줘」의 히로인은 조금은 다른 결말을 향해 움직인다. 작가 역시도 위기의 단서로 추정되는 장면들을 늘어놓으며 세계를 멸망의 기로 앞으로 이동시키는데, 그의 단서들은 상황에서 진전을 끌어내는 장치보다는 위기라는 주어진 형식의 중복에 더 가깝다. 애니메이션에서 추출한 이미지와 실제 사진을 중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맥락이 소거된 장면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면적 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또한, 그가 줄곧 강조했던 "예쁘게" 보이려는 의도에 맞춰 제작되었으므로 불안의 징후라는 설정이 무색할 만큼 얇고 가볍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서들은 모든 허상의 진지함을 덜어내고 그 뒤에 가려졌던 세계의 그 허약한 실제 무게를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전시장 안팎의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를 떠올려본다. 목소리로만 나타나는 영웅과 세계를 지키려는 히로인, 이들의 대화가 공명하지 못하고 흩어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이 덩어리뿐이다. 세계를 위기로부터 구해줄 영웅의 실체가 실은 작가가 몇 시간에 걸쳐 녹인 작고 가벼운 플라스틱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이 불순한 생각은 이 세계 역시도 동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기적처럼 나타나 이 불안을 걷어 내주길 바라지만 희망은 내레이션과 자막으로만 읊조려지고 플라스틱 덩어리만이 신기루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신기루가 사라진 다음 나타나는 것은 가끔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전시장 중앙을 나누는 검은 기둥이 세워진 반지하 그리고 그 바닥을 딛고 선 평범한 현실이다. ● 모든 두려움이 해소되는 가상 세계는 지친 일상을 향한 위로일 테지만 작가가 펼쳐 놓은 이 세계는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세계의 시간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도 도시의 일상은 변함없이 지나간다.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와 히로인이 세계를 지키지 못했을 때도 공원의 오후는 평소와 다름없으며, 신기루가 사라진 현실은 제자리에서 또 다른 환상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 모습들을 단지 불안한 현실에 대한 회피만으로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므로 매 순간 이어지는 불안의 시간이 익숙해질 때까지 힘겹게 자신의 일상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반복되는 불안은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된 불안은 지루하다. 막연한 불안 속에서 헤매는 것보다 뒷일에 대한 걱정도, 절망감에 절여지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는 그 무엇보다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달콤함이 무엇을 감추고 왔는지를 생각해본다. 황민규는 다시 우리의 눈앞에 플라스틱 덩어리를 내밀며 이것이 사랑이냐고 묻는다. 플라스틱 그림자 뒤로 가려진 변함없는 일상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의 미래를 소비하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것은 사랑인가요?" ■ 이연지
Vol.20180719i | 황민규展 / HWANGMINKYU / 黃敏圭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