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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_GS SHOP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공에도사가있다 GALLERY Gong.Do.Sa 서울 영등포구 선유서로26길 13-2 인디아트홀 공 별관 Tel. +82.(0)2.2632.8848 www.gongcraft.net
사사로운 관계들의 태세 ● 관념으로 구성된 장면(constructed tableau)을 본다. 사물과 물질이 내려앉아 있는 지점에는 어떤 사건이 유예된 채 오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공간은 시간과 함께 존재하기에 어떤 작용에 의한 사건이 발생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 서로를 당길 수 없는 이들의 거리, 그 긴장관계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프레임에 물려있는 시각적인 마찰은 허락된 공간 안에서 하나, 둘, 혹은 셋 이상이 맺는 관계 안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내면의 잔흔 같은 정적인 이미지의 심상을 화면에 겹쳐 두었다. 그리고 사물이 어떤 인물처럼 보이고, 물질이 마음의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아 보일 때 돌연 선명해지는 은유들을 쌓았다. 이미지의 성질이나 표면의 결, 색, 모양새, 영역의 관계를 읽다가 어느새 화면이 유도하는 내러티브 속으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사진의 배경이 사적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이야기를 조금 더 내부로 끌어당긴다: 이것은 집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집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마이크로 커뮤니티다. 그러나 이리 작은 집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딸, 손자, 언니, 오빠, 이모, 삼촌, 배우자, 룸메이트로서 내가 갖는 자리와 다른 구성원과의 거리를 설정하고 있다. 내 것, 혹은 내 것이 아닌 집안의 사물들에게도 감정을 갖고 그 주변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집 밖의 세상에 비해 집이라는 장소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가에게는 아직 수많은 미완의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대상이다.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신정희는 집이라는 삶의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것은 거시적이고 건축적인 견지에서 나온 표상들이 아니라 집의 공간, 집에 있는 사물, 집의 규칙, 가족 혹은 동거인과의 관계, 그리고 집안과 집 밖에 대한 사사로운 범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는 그의 작업이 지금까지 조금도 인물 중심이 아니었다는 점을 재차 인식하게 되는데, 주제에 대해 줄곧 금 밖에 서 있었던 작가의 거리 두기 방식이 좀 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만큼 솔직한 것과 저만큼 드러내는 것이 열쇠가 아니라 집이라는 작은 생태의 복잡다기한 정서를 정제해 담는 것이 작가의 지향이었음이 드러나는 이유에서다.
작가의 작업적 태도는 여전히, 그리고 온전히 사물 중심적이다. 대신 정서적인 대입을 이끄는 요소들을 선택해 공들여 관계를 구축해 두었다. 장면(프레임)을 인공적으로 구성해 올리는 작가들이 양산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그러하듯이 신정희의 사진도 세트(오브제), 조명, 편집을 무결하게 해야만 작가가 원하는 중간 세계의 효과를 얻는다. 중간 세계란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집, 혹은 공동생활공간에서 함께 지냈던 구성원과 사물에 대한 응집된 감정을 발현시킨 장소로, 실재하지 않지만 허상도 아닌 관념의 장소다.
사진 속의 개체들은 서로 위태로운 자리에 있거나 물리적으로 모순된 현장에 방치되어 있다. 화면에서 우리는 그들이 서로 이룬 관계와 거리에 집중하게 된다. 누구도 주도하고 있지 않고 마치 진공 상태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지만 예민하게 돋아있는 치열한 테세다. 그것은 사회적인 관계 맺기에 어쩌면 유리되어 있는 사람, 자리를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비워주는 사람, 등을 돌려야 비로소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첫 번째가 될 수 없어 두 번째, 세 번째 출발선에서 기다려 본 수많은 이들이 아마도 조금 더 물끄러미 응시해 줄 것 같은 이미지다. ■ 김수정
앉을 수 없는 의자가 있었다. 의자는 줄곧 비어있었고, 늘 그 자리에서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쯤 앉을 수 있을까? 그 바람은 잊혀졌다. 더 이상 그 의자에 앉기를 바라지 않는다. ● 공간의 분배는 아주 서서히 이루어진다. 그래서 더욱 알아채지 못한 채 내 몸을 더욱 작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아지다 사라지더라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며, 사라지게 작아져도 나는 그곳에 있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공간에는 채우는 사람과 비우는 사람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자의 혹은 타인에 의해서 때때로 비워주는 사람이 되었다가 또 채우는 사람으로 역할은 교체 된다. 지금 나는 비워야 할 자리에서 채우고 싶은 바람으로 공간에 맞춰 더 작게 살아간다. 작은방 안에 그보다 더 작은 것들에 둘러싸여 안락함을 느끼며 하루의 일상과 마주한다. 마치 오래된 장롱과 내 몸에 꼭 맞게 맞춰진 침대처럼 그들에게서 안식을 느끼지만 사실 그들의 형태에 맞게 허리를 구부리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낡은 가구들은 타인과의 오래된 관계 사이에 형성된 단단한 매듭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고 흙탕물이 고여있는 얕은 물 웅덩이( 커튼이 있는 거실 /A living room with curtain. 168×108cm. C 프린트_2018 )가 되어 곳곳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네 장의 사진은 처음 공간을 점유 했던 사람과 이후의 개인들이 공간 속에서 벌이는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 신정희
Vol.20181113f | 신정희展 / SHINJUNGHEE / 申定憙 / photography.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