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 : 집에 들어왔다. A vague fear : came into the home.

신정희展 / SHINJUNGHEE / 申定憙 / photography   2016_0723 ▶ 2016_0806

신정희_어느틈 / Crack_C 프린트_84×110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릴레이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777 RESIDENCE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03-1 3층 Tel. +82.31.829.3777 changucchin.yangju.go.kr

새로운 감각판을 직조하는 정체 모를 두려움막연한 두려움의 서막 이 이야기는 육신을 따뜻하게 하려고 정신을 어둡고 축축한 곳에 놓는 이야기다. 밖은 '오후 4시'이고 찬란한 햇빛이 가득하다(「오후4시」). 어쩌면 밝은 빛이 가득한 밤일지도 모른다(「개미의 사고」). 밖은 '그'가 있는 공간이다. '존재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듯 실존하는' '말'의 공간이다. 로고스λόγος의 공간. 그곳을 본다. 단지 말의 소유자와 그 자에게 '자발적으로 예속한 자voluntary slavery'(에티엔 드 라 보에티)에게만 친절한 그 곳을 바라본다. ● 그곳에서 무엇인가 들어왔다. 출입문으로 찌르는 듯 앙상한 나뭇가지가 들어왔고(「드리워지다」), 이빨 같은 빛이 들어왔고(「개미의 사고」), 탁한 물이 들어왔다(「합리화의 과정2」). 그곳에서 들어온 (아니면 내부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를) 검은 꼬리도 보았다(「그 구멍」). 소름이 돋는다. 당황한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말을 소유하지 못했다.) 꼬리는 도망칠 필요를 못 느끼는 듯 느릿느릿 움직인다. 이내 꼬리가 사라진다. 불안해진다. 이곳에는 그것이 숨어 지낼 수 있는 옷장(「클로셋」)이 있고, 틈(「어느 틈」)이 있다. 그것이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풀숲(「풀이 죽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의 사체가 잠길 수 있는 검은 물(「합리화의 과정1」)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려움의 덩치'는 머릿속에서 점점 커진다. 감정을 잠식한 두려움은 생각을 마비시키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기는 몸을 얼어붙게 한다. 밖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하지만 그곳 또한 또 다른 두려운 곳일 뿐. '막연한 두려움'은 이렇게 막이 오른다.

신정희_드리워지다 / Over the line_C 프린트_50×100cm_2016
신정희_풀이죽다_C 프린트_80×110cm_2016
신정희_Barefoot_C 프린트_65×100cm_2016
신정희_개미의사고(Ant's-Automatic negative Thoughts)_C 프린트_80×110cm_2016

'거리두기' 미학; 새로운 감각판의 직조 ● 신정희는 이미지와 실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 관계와 개념을 재설정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사진과 조소의 개념적인 경계를 횡단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이미지를 형성해낸다. 물론 작가의 최종 작업은 사진 이미지이다. 이 작업의 시간은 이미지와 이미지를, 사물(오브제)과 이미지를 덧붙이는 소조塑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학부 전공이 조소였음을 상기하게 되는 대목이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먼저 감각에 따라 배경이 될 (다수의) 사진들을 찍고, (그 중 선별하여) 그 사진 위에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들어(혹은 기성품을 선택해) 배치한 후, 다시 사진을 찍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말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바탕 사진에 놓을 오브제를 구상해서 만들어야 하고, 완성된 오브제를 배경이 될 사진에 이질감이 없도록 배치해야 한다. 이때 상황에 맞게 크기와 형태, 색상, 위치를 조절하고 조율해야 한다. 바탕 사진과 오브제를 함께 재촬영할 때는 조명의 세기와 위치가 바탕 사진의 빛과 유사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작가는 완벽한 어떤 지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오브제와 조명, 사진기를 옮기며 수십 번이고 촬영을 거듭한다. 더불어 필름 카메라로 촬영•인화하는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고 힘든 작업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디지털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아날로그 색감을 작품에 담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작품은 이런 복잡한 과정과 오랜 수고 끝에 마침내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신정희의 작품은 보통 '바탕 사진', '바탕 사진과 오브제 설치,' '재촬영한 사진'이라는 세 층위를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몇 장의 배경 사진이나 오브제들이 더 겹쳐져 층위를 교란, 혹은 심화시켜 복잡함을 증가시키기도 한다(「오후4시」, 「풀이 죽다」, 「합리화의 과정1」, 「합리화의 과정2」).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층위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그 층위는 늘 증발하기 쉬운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진과 오브제라는 이질적 요소가 섞여 있는 신정희의 사진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어 너무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로 인해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평범한 사진으로 무심히 스쳐가기 쉽다. 복합적 층위의 민낯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왜일까? 작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노골적으로 표면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너무 '가짜예요'하는 식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작가와의 대화). 작가는 작품을 흘려보는 자에게 관심이 없다. 자세히 작품을 바라보는 자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그들의 내부에 새로운 감각판이 직조되길 희망하는 작가의 바람이 스며있다. ● 연극에는 사람들이 작품에 너무 몰입했을 때 갑자기 그 분위기를 깨는 형식이 있다. 바로 '거리두기distanciation'(베르톨트 브레히트)다. 극의 내용에서 벗어나 연극의 인위성, 이데올로기적이고 제도적으로 구성된 연극이라는 장치를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창안한 형식이다. 신정희는 자신의 작업을 이러한 '거리두기'로 설명하곤 한다. "의심하거나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작가와의 대화) 그것은 작품에 몰입한 자만이 이해하게 되는 새로운 감각판이다. 신정희의 작품은 일반사진과 차별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고,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까지만 엉성하다. 사진의 인위성, 조작 가능성, 실재와 이미지의 혼동 등은 작품에서 난류처럼 흘러 다닌다. 그 사실은 자세히 보는 자만이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 난류는 정지하고 사진이라는 장치, 그것이 만들어낸 사실의 허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는 자에게 조작의 흔적은 하늘의 은총처럼 시야로 쏟아진다. 이로써 '사실성'을 자양분으로 굳게 서 있던 사진의 장르적 특성은 힘없이 무릎 꿇게 되고, 이 순간 '거리두기'라는 감각판은 새롭게 직조되기 시작한다.

신정희_합리화의과정 1_C 프린트_82×60cm_2016
신정희_합리화의과정 2_C 프린트_82×60cm_2016
신정희_클로셋/closet_C 프린트_36×75cm_2016
신정희_오후 4시_C 프린트_65×100cm_2016

'목소리'의 합리화 ● 형식적 측면에서 작가의 작업이 복합적 층위를 내면화하고 있다면, 내용적 측면에서 그녀의 작업은 젠더gender의 정치적 지형을 내재화하고 있다. 이 지형에서 '그녀'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가 될 수 없기에 '말'을 갖지는 못한 자로 서게 된다. "말은 정당한 것le juste과 부당한 것l'injuste을 명시하기 위해 존재한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1권) 반면, 목소리는 그저 고통과 쾌감을 표시하는 수단일 뿐이다. 말은 로고스이지만 목소리는 소음이다. 자신의 언어를 명령으로 발화할 수 있는 자리, 그 말의 자리는 로고스의 자리이며, 거기에 속한 자만이 로고스의 인간이다. 그녀는 말을 충만히 소유한 그(권력자)의 세계에서 언제나 약자이다. 이러한 관계가 '말의 정치'이며, '그의 정치'며, 변질된 '이성의 정치'이다. ● 젠더의 정치적 역학 관계는 여전히 발성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말 또는 목소리로 발화되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 관계 속에서 그녀의 이전 작업은 목소리만 가진 자가 소리치지도 못하고 말의 자리에서 말을 듣는 수동적 태도를 보여줬다. (말을 알아듣는다고 말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다. 발화자는 자신의 말[발화 수반 행위문]을 실행할 수신자[말하지 않지만 말을 알아듣는 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코르셋의 착용처럼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는 시도가 너무 힘들고 피곤해졌다. 이제 순응은 부러졌다.(「합리화의 과정1」) "넌 전혀 귀엽지 않잖아"라던 주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작가와의 대화). 말을 갖지 못한 자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망칠 필요를 못 느끼는 꼬리(「그 구멍」). 그 꼬리를 두려워하는 약자인 '그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은 바스락거림에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작은 두려움을 점점 키울 수밖에 없는, 꼬리는 이제 사라졌다고 억지로 되뇔 수밖에 없는, 그렇게 제일 잘하는 '합리화'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그녀가,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막연한 두려움'에 짓눌린 채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신정희 작업에서는 그 목소리를 발화한 것,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이다. 습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탐구 그녀는 습한 것, 축축한 것, 어두운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은 습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곳은 절대 습하지 않아. 이곳은 축축한 곳이 아니야, 어둡지 않아.' 자기 합리화.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일. 속삭임에 실패할 위로의 온기를 실어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 속으로 거듭 되뇐다. '이곳은 절대 습하지 않아. 이곳은…. 이곳은…' * ● 신정희는 습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내부,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곳을 파고들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상황, 다시 말해 합리화가 이루어지는 상황, 그 혐오스러운 상황을 탐구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이번에는 내가 싫어하는 걸 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압박으로 다가온다."(작가와의 대화) 작가는 두려움이 극대화될 수 있는 폐쇄공간에서 본인이 느끼는 두려움과 그 합리화 과정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려 한다. 가식의 공간을 벗어나 자기가 혐오하는 내부의 공간을 탐구하고, 흰서리 같이 희미한 목소리로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괜찮아'라고 읊조리는 근원적 이유를 찾아 나섰다. ● 이번 작업이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정체 없는 '두려움'과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기 '합리화'이다. 사진 위에 오브제를 놓고 재촬영했음에도, 원판 사진(배경 사진)이 촬영될 때부터 오브제는 함께 있었고, 따라서 이건 자연스러운 사진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작가는 막연한 두려움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각화함으로써 '합리화'된 두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민한 자는 거기에서 균열과 틈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균열이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막연한 두려움과 합리화가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두려움과 합리화의 허상을 발견해주는 일일 줄도 모르겠다. 습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신정희의 탐구는 정체 없는 두려움을 촬영하고, 자기 합리화를 인화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진정한 목소리를 가진 자신을 만나게 한다. 이제 진정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육신을 따뜻하게 하려고 정신을 어둡고 축축한 곳에 놓는' 그 이유를 들을 시간이다. ■ 안진국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는 오는 7월 23일부터 8월 6일까지 신정희의 개인전 『막연한 두려움: 집에 들어왔다. A vague fear: came into the home.』전을 개최한다. 아날로그 트릭 을 이용한 연출사진을 통해 이미지와 실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거리두기(distanciation)'를 시도한다. 평면 위 오브제를 다시 평평하게 다지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만들어지는 작가의 이미지는 그것이 갖고 있는 이질적 요소들의 간극을 쉽사리 포착해 내기 어렵다. 이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낯선 요소들로 연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극에 비판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연출과 같고도 또 다르다. 실재를 전제로 한 사진 속 다른 차원의 오브제는 계획된 만큼만 자연스럽게 바탕 안에 녹아들고, 그렇기에 온갖 가능성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작가 자신으로 대변되는 '집'을 배경으로 그곳에 트릭을 심어 익숙해진 것들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자 한다. 믿고 있는 것이 기실 사실과 다르다면, 그곳에서 피어나는 감정에서부터 현실의 재인식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Vol.20160723b | 신정희展 / SHINJUNGHEE / 申定憙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