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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청북도_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동절기(11~2월)_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숲속갤러리 SUPSOK GALLERY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122번길 67 충북문화관 2층 Tel. +82.(0)43.223.4100 cbcc.or.kr
유재희의 꾸미기의 '꾸미기 회화' ● 유재희의 작업 속에는 여성 특유의 본능적 욕구에 대한 여러 가지 메시지가 깊숙이 담겨 있다. '그저 예뻐지고 싶고 꾸미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여성 본연의 '장식적 욕망'이 회화적 채널 속에서 새롭게 변신한 채, '장식성 자체'가 '이미저리'의 대상이 되는 그림이 유재희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 예컨대 몸에 바르는 화장품들과 그 포장 이미지들이 하나의 회화적 구조 속에서 되살아나(再生) 본인 속의 잠재된 욕망을 일깨우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구조 자체가 욕구해소(카타르시스)의 매개가 되게 하는 접속방식이 그것이며 그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적인 구성 속에서 회화적 조형성이 심리적 장식성과 공명을 일으킨 채, 일련의 환원적 질서(스스로가 스스로를 바라보고, 때로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코드)를 구축하는 절차를 거기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물론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광고 속에서 이미 실체 보다 더 부풀려지고 과장된 채, 심리적인 자극치가 극대화 된 것이지만 유재희는 그 나름의 회화적 어법을 통해 그 심리의 극대치는 물론 그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뒤섞어 기묘한 '표현적 장식성의 회화'를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모더니즘의 미술에서라면 그러한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적 장식성은 은연중 기피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금기사항에 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니멀과 단색회화의 전개과정이 스스로를 조형적 대상으로 삼는 순간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은 금방 눈치 첼 수 있는 요소에 속한다. 그것은 어떻든 조형적 이념의 완성태로서 존재해야만 했고 그런 만큼, 표현성이나 심리 따위는 오히려 객관적 조형전개의 장애물 정도로 이해되었고 그것은 팝아트에서조차 차가운 대중성을 빌미로 견제되고 최소한으로 절제 되었다. ● 물론 포스트모던 이후의 회화에서는 이러한 견제와 절제가 순간적으로 해체된 채 오히려 폭발적인 표현성과 심리성, 나아가서는 물감의 물질성조차 거칠게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유재희의 작업의 출발은 바로 거기 어디쯤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재희의 작업은 그러한 표현성과 심리성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의 추구에서 보였던 견제와 절제를 새삼스럽게 도입하고 오히려 정제된 장식성이 돋보이게 하는 표현적, 그리고 심리적 역설의 회화라 할 수 있다. ● 사뭇 복잡한 이야기가 된 셈 이지만 그의 그림이 그만큼 여러 각도에서 해석 될 수 있는 소위 열린 시점을 확보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모티프라든가 색감의 선정 등에 의탁하는 회화가 아니라 여성 특유의 '꾸미기'의 본능을 테마로 직접 내세운 채, 화장품과 그 포장의 이미지가 암암리에 부각시켜 왔던 화려하고 세련된 질감과 느낌에 대한 주관적 공명과 저항이 동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방법론의 회화라 할 수 있다. ● 펜으로 긁적거려 묘사한 실루엣의 수공적이고 편집증적인 복잡성과 대비시켜 색면의 단순하고 투명한 전사(轉寫)과정은 바로 그러한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모더니즘의 절제미가 절묘하게 개입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작업이라 할 수 있겠고 그러한 뜻에서 그의 작업은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포스트'라 일컫는 근자의 회화적 흐름과 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더 나답게, 나를 더 나 같지 않게. 화장이라는 것,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면 정확하진 않지만 인류가 생기면서부터 혹은 얼마 안돼서부터 생겨났을 것이다. 아마존에 사는 문명과는 떨어진 사람들이 얼굴에 분장을 하고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과, 공작새의 깃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화려해진 이유는 아마도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자 자기방어일 것이다. 자기의 약점을 감추고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을 불문하고 그 시대의 환경에 맞게 변화되어 왔을 것이다. 지금 이 사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화장이 필수 요소가 된다. 3초, 상대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시간. 그만큼 이미지는 중요하다. 또 새로운 사람을 짧게 만나는 자리가 많아지고,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 내에 보여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식이든 아니든 간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찰나의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한다. 단지 겉모습으로, 들어 내야할 것을 들어내는 것, 감춰야 할 모습을 감추는 것 모두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작가 작업노트2017) ● 작가의 작업노트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 이 복잡한 동시에 급박한 실존성을 감춘, 그의 꾸미기 회화가 결코 단순한 꾸미기가 아닌 '꾸미기' 자체에 대한 본인의 복합적인 심리상태와 그것을 둘러 싼 하나의 시대상, 그리고 그 메시지를 담은, 조형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잘 사색되고 잘 가꾸어진 하나의 간주관적(間主觀的)인 '전령(傳靈)'인 것임을 필연적으로 추론시킨다. ■ 윤우학
처음엔 그저 예뻐지고 싶고 꾸미고 싶고 그랬다. 예쁜 것, 유행하는 것, 잘 어울리는 것들을 찾았다. 그것들을 사기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보며 남들이 추천하는 것들을 찾았다. ● SNS가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SNS를 시작하였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점점 글이 아닌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지는 몇 개의 해시태그(: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메타데이터의 한 형태)로 연결이 되어있고 해시태그 하나에 여러 이미지가 얽혀있다. 해시태그 한 단어만 입력하면 그에 대한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고 나는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 앞에서 나의 수집은 점점 이미지의 수집으로 변화하였다. 사실 실제로 갖지 못하는 현실적 금전적 한계와 그런 욕구를 표출하기 위해 그리던 매순간, 아무 제약 없이 노출된 광고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화장품들을 찾고 동영상을 보게 되는 '나'를 되돌아본다. 타인의 관심을 위해 만들어진 광고 속 이미지들은 실체보다 더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감성을 이끌어내고 나는 그런 이미지들을 골라 저장한다. 나를 자극했던 이미지들의 집합. 저장한 이미지들이 쌓이고 그것들을 다시 찾아보며 묘한 희열을 느낀다. ■ 유재희
Vol.20181030c | 유재희展 / YOOJAEHEE / 柳在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