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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3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수요일 휴관
뮤온 예술공간 Art-space MUON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18 (문래동3가 54-41번지) 203호 artmuon.blog.me
여승열 4회 『개인전 시간의 흐름을 가로질러』- 여승열 개인전의 단상 ● 무엇일까. 저녁 무렵의 어스름이 저만치서 밀려오고 있는 데, 행주산성의 등산로 길에서 그를 서성이게 하는 것은. 그가 화면을 통해 그려놓은 풍경은 잠시 빌린 작업실 근처의 행주산성의 등산로 길이지만, 그 길을 감싸고 있는 화면의 명암은 그를 알고 있는 미술 현장의 지인들을 과거의 시간 속으로 소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가 캔버스에 그린 풍경들은 목탄이라는 재질을 바탕에 칠하고 지우개 등의 기구를 이용해 조금씩 지우면서 풍경의 형상들이 점차 윤곽이 드러나도록 제작한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마치 오랫동안 내려놓은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몸을 푸는 습작드로잉들과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어두운 화면을 뚫고 어슴푸레 비치는 빛줄기는 아주 오래전 그를 처음 만난 쌈지 공간 뒤편의 조그마한 작업실로 이끌고 있다.
그 작업실은 와우산으로 오르는 언덕의 길가에 연립주택이 있는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 작업실을 처음 들르게 된 것은 93년도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가을 무렵에 지금 대안 공간의 김노암 대표와 함께 한번 그 공간 근처를 배회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다음해 가을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의 작업실을 잠시 들렸던 기억이 난다. ● 그 당시에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작업실에 들린 그는 나를 문전박대도 하지 않았지만, 작업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그때의 그의 표정은 양현미가 95년도에 대안 공간 21세기가 창간호로 발간한『작가들』이란 무크지에서 "지독하게 내성적인 이 작가에게 그 억압이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제어하는 기제에 대한 저항감 같았다."라고 한 비평 글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척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다시 기억나는 것은 97년도 대안 공간 21세기의 개인전 오픈을 하고 인사동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는 저녁 자리였다. 그때 그 뒤풀이 자리에서 대안 공간 21세기의 대표였던 최민화 관장이 그의 전시에 대해 축하하는 말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그 축하의 말은 이제 미술 현장을 입문하는 초년생을 대하는 태도라기보다는 미술 현장의 변화를 이끌 한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태도였다. ●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에 대해 들려오는 소식은 홍대 앞에 그가 아는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학원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이천년도 중반에 작가 대비 한이 홍대 근처에 머물 때 작업을 위해 입시생 석고가 필요하다고 하여 함께 한국미술 교육원에 들려 석고데생을 빌리면서 잠깐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후에 전시 뒤풀이나 그 밖의 저녁 술자리 모임에서 간혹 보곤 하였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전시 뒤풀이나, 또는 그 밖의 저녁 모임에 자주 참석하였고, 그 즈음에 나에게 이제는 작업을 할 거라고 애기를 했다.
그리고 7년 전에 인사동의 나무화랑에서 작게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그의 전시는 마치 시간이 그에게만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작품의 형상들은 97년도의 작업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개념은 97년도의 전시 작품의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이 보였다. ● 그리고 이번에 문래동에 있는 뮤온 갤러리에서 개인전 전시를 또 다시 열었다. 그의 전시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밤에 네오룩 대표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 94년도 다사리 모임의 멤버였던 송문갑과 함께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오룩 대표가 오랜 친구로서 그가 개인전을 여는 데에 전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자 네오룩 대표는 나에게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떠냐고 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쓰겠다고 했는데도 네오룩 대표는 그의 전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마음으로 지원하고자 그의 전시와 내가 글을 쓰는 것과 관련해서 한참이나 말을 이어갔다.
며칠 후 나는 그와 함께 그의 작업실에 가서 전시할 작품들을 보았다. 이번에 전시한 작업은 7년 전에 전시한 작업과는 달리 상당히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하며, 색채나 형태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다른 작가의 작업을 보는 것과 같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목탄으로 그려놓아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풍경들이 대부분의 작품들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무들 사이로 땅에 비친 아주 작은 빛살이 있는 작품이 그나마 미약하게나마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 그의 작업은 형태와 색만 바뀐 것일까. 아니면 생각의 변화들이 반영되어 나온 것일까. 그는 1997년도의 21세기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의 미술 현장에서 한창 활동하던 선배들과 동년배들의 축하와 기대를 받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7년 전에 나무 화랑의 전시에서 미술 현장의 지인들의 반응은 그때와는 달리 전혀 상황이 변해있음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화랑에서 개인전을 치루고 난 뒤에 그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7년 전에 개인전을 치루고 난 후에 미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인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저녁 모임에 자주 오곤 하였다. 필자 역시 그가 97년도의 작품 성향과 학원 원장으로서 생활하는 것과는 달리 그가 내성적이라는 것을 몇 년 사이의 모임에 자주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체감하게 되었다. ● 97년도의 작업은 외부적인 시선에서 보면 외향적인 성향을 띤 작가가 가벼운 마음으로 사회적인 현상을 팝적인 성향으로 반영하여 발언하는 모습으로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성향을 아는 미술 현장의 지인들은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통해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미술 현장의 지인들은 그의 작업이 마음으로부터 응축되어 작품을 통해 반영되었을 때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
이번에 그의 작업들은 「대화, 2018」의 작업을 제외하고는 1997년도의 개인전의 작업과 같이 사회적인 현상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 자신의 현재의 내적인 심리적인 상태들을 풍경이나 또는 「다리 없는 새, 2017」의 작품에서 보듯이 과거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무늬와 현재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새를 통해 상징적으로 반영하며, 작품을 통해 무엇을 발언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오랜 침묵을 통해 천천히 개인전을 통해 조금씩 맷집을 키우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번 작업은 그가 앞으로 작업을 통해 무엇을 발언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조관용
Vol.20181026f | 여승열展 / YEOSEUNGYEOUL / 余承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