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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24_수요일_01:00pm
작가와의 대화 / 2018_1110_토요일_01:00pm
기획 / 정지윤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아티비타 Gallery ArtiVita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34길 19 1층 Tel. +82.(0)2.2088.3373 www.arti-vita.net
2003년 작업실의 정물과 테이블 위의 가방 등 일상 기물을 그린 연작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해은은 이후로도 정물, 화분, 정원 등 일상의 장면을 소재로 하여 굵고 리드미컬한 색선을 중첩시키는 표현적 회화 연작을 선보였다. 10여 년간 전원 풍경과 콘서트홀, 경기장, 다리와 선박, 대도시, 증권시장, 역동적인 군무의 무용수 등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이해은은 일상과 영화, 게임 등에서 모티브를 얻지만, 그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거기서 얻은 감흥과 에너지, 시각적 영감을 화폭에 옮기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척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은이 반복적으로 그리는 화면 위의 색과 선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해은에게 회화면은 현실보다 즐거운 세계이고 무궁무진한 흥미의 공간인 것 같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인 색선의 중첩,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필치, 밝은 원색의 단선으로 이해은은 일상과 여행에서 얻은 감정과 활기를 펼쳐놓는데, 이러한 그녀의 그림에서 변화무쌍한 빛과 대기에 매료된 인상주의 화가들,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기 위해 햇살 가득한 남부 유럽을 찾은 야수파 화가들, 북해와 발트해 연안에서 격정적 필치의 회화를 모색한 다리파 화가들, 포효하는 경주용 자동차와 역동적인 기계문명에 열광한 미래파 화가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이해은의 그림이 20세기 초 유럽 전위 회화의 답습일 필요는 없다. 모네의 지베르니 연못 위에서 씨름을 벌이는 21세기 초 이해은의 자화상은 회화면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낱낱이 검증하고 샅샅이 실행에 옮기겠다는 다부진 고심이자 야심만만한 도전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유럽의 여러 화가들을 격동케 한 회화의 자기 발견, 이해은은 거기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무엇보다 회화면이 그녀의 관심이고 조형적 실천이 그녀의 흥미이기에, 책과 사진에서, 영화와 게임에서, 여행에서 얻은 소재가 딱히 무엇인지는 중요하지는 않다. 거기서 얻은 인상과 감흥을 회화적 요소로 구현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기에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거기에 실제로 가 봤는지보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화면에 옮길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내적 감성의 표현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과거 10여 년간의 표현적 회화가 최근의 건축적 구성으로 바뀌는 것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표현적 제스처도 건축적 구성도 이해은에게는 화면 위에서 이룰 수 있는 회화 세계의 여러 면면일 뿐이다.
2010년대 중반 이해은은 물감 대신 파스텔을 사용하고 붓 대신 나이프를 사용하며 표현적 선의 회화에서 건축적 면의 구성으로 관심을 옮겼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최근 2~3년간의 작업결과인데, 유기적인 선과 색의 역동적인 리듬감은 견고한 면과 색의 구조적 공간감으로 대체되었다. 모니터와 패널이 가득 찬 증권시장, 연주가 한창인 콘서트홀, 경기가 열리는 대형 스타디움, 유리와 콘크리트, 강철의 고층건물이 즐비한 대도시, 그 사이를 오가는 분주한 움직임과 긴장감 넘치는 활기가 최근 이해은의 그림을 채우는 주제인데, 그것을 기하학적 색면으로 화면에 중첩하여 역동적인 회화적 공간감으로 실현한다. 20세기 초 파리의 시가를 빠른 걸음으로 활보하며 건물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에펠탑의 시각적 인상을 포착한 오르피즘 화가들이 떠오른다. 마치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짓듯 납작납작한 작은 사각형의 색면을 견고하게 바르고 중첩하는 과정으로 화면 위에는 재현적 공간감이 아닌 시각적 일루전의 얕은 공간감이 만들어진다. 작은 사각형을 바르고 쌓는 과정에서 회화 평면의 견고한 직조감 또한 확인되는데, 화면 위의 시각적 일루전과 캔버스 표면의 물리적 실체는 서로 밀고 당기는 상호교차의 자장을 이룬다. 현실의 건축가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3차원의 물리적 공간을 만든다면, 회화의 건축가인 이해은은 사각형의 면들이 밀고 당기고 겹치면서 2차원 화면 위에 얕은 시각적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03년 이후 10여 년간 선과 색으로 음악적 리듬감을 구현하고자 한 이해은이 선의 안무가였다면, 기하학적 색면을 누적하고 병치하여 회화적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최근의 이해은은 면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표현적 회화가 열정적인 만큼 지금의 기하학적 회화도 경쾌하고 역동적인데, 선에서 면으로 조형적 관심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회화면 위의 조형이며, 이해은에게는 3차원의 현실세계보다 2차원의 회화세계가 더욱 흥미진진한 관심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은은 유럽의 전위 화가들이 기쁘게 실행에 옮기며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지난 100여 년간의 동인을 여기 이 땅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검증하고 실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회화면의 다채로운 조형 실험을 두루 섭렵한 이해은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어디에 가닿을지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마도 물리적인 세계보다 색과 형으로 재현된 세계가 한층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그의 회화를 보는 것만으로 누구나 그리 어렵지 않게 공감하기에 그러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 권영진
Vol.20181023e | 이해은展 / LEEHAEEUN / 李海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