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rt is All

박정선展 / PARKJUNGSUN / 朴貞宣 / mixed media   2018_0907 ▶ 2018_0921 / 월요일 휴관

박정선_As an artist, woman, daughter, sister, friend_종이에 수채, 색유리_54×78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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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홈페이지_www.jungsunpark.com

초대일시 / 2018_0907_금요일_05:00pm

기획 / 복합문화공간 에무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B2 Tel. +82.(0)2.730.5514 www.emuartspace.com

당신의 자리는 '어떻게' 인가요? ● 박정선의 작업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법이다. 지난 작업에서 버터로 만들어진 매트리스는 녹아내려 기름과 냄새를 흘렸고「Matress, 2004」 벽에 붙어있던 카라멜은 아래로 쳐지며 이형의 덩어리가 되었으며「벽 위의 카라멜, 2008」 벽에 기대어 세워놓았던 합판은 취객처럼 전시장에 고꾸라져 버렸다「공간에 있기, 2010」. 또한 작가의 대체물로서 사물을 이어놓은 껌은 말라서 끊어져 버렸고「식물과 다른 사물을 내 몸으로 연결하기, 2012」 흘러내린 물방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거취를 찾아 자리를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나의 대체물, 2014」. ● 이러한 모습은 조각이나 설치로 분류되는 작업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뽐내거나 하는 그런 방법으로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처음엔 그랬던 것이 다른 처지가 되어 본래와는 다르게 작용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에 대한 점유방식의 적극과 소극을 이야기 한다면 박정선의 작업은 소극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남아있는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을 재고 한다면 작가의 작업 전반이 마냥 소극적이기 보단 소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요소들을 갖추기 위해 또는 공간에 대한 낮은 점유율만을 차지하기 위해 적극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작가 자신은 준비된 상황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는, 그 정도의 적극성만을 보이고 있다.

박정선_My fear is (not) being there_종이에 수채, 색유리_41×65cm_2018
박정선_She is arrogantelegant_종이에 수채, 색유리_60×73cm_2018
박정선_A Part is All展_복합문화공간 에무_2018

표현을 위해 살아가고 그것의 방향과 방법, 효율 등을 위해 천착하는 것이 작가들의 삶일 것이다. 전시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작업물을 지나보내면서도 점점 더 많은 수의 것들이 전시가 될 수 있도록 혹은 감상자의 감탄과 환호를 이끌어내 높은 가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작가들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박정선의 작업은 그러한 일변도의 절차를 밟기 보단 그러한 것들 사이에서 조금 더 인내적인 영역에 주의를 기울여가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장치처럼 작용하는 주변의 상황들 속에서 함께 보폭을 맞추고 더 큰 걸음으로 그것을 선도하기 보단 일상의 예민함 중 가장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부유하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나름의 균형을 학습하고 있다. ● 선택하고 집중해서 취할 수 있는 영역을 탐색하고 그것을 위해 또다시 선택과 집중을 되풀이 하는 것은 'A Part'로서 다수의 선망이 되어왔다. 다수의 선망은 곧 그것이 옳은 것이자 전부(All)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감투가 되었고, 감투를 쓴 자들의 강인함과 잘 살아가는 모습인 'A Part'가 점점 점유율을 늘려 대척점에 있는 자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시각적 효과에 대한 부채 역시 모든 미술을 해 나가는 이들에게 필연적인 것이었고 이것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A'이자 우선의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박정선은 "오른발 전엔 왼발 먼저"라는 자연에서 비롯된 순리는 공유하면서도 다수가 찾고자 했던 곳과는 다른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한 과정은 여러 일렁임에 대한 경험과 균형의 학습으로 이어졌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화제를 찾고 그것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진행이 그에게 작업인 것이다.

박정선_A Circle from a Triangle 삼각형의 원_접힌 종이에 아크릴채색_51×51cm×2_2018
박정선_A Parallelogram from a Square 사각형의 평행사변형_접힌 종이에 아크릴채색_60×40cm×2_2018
박정선_A Square from a Triangle 삼각형의 사각형_접힌 종이에 아크릴채색_51×51cm×2_2018

이러한 과정에 나타난 「우아한 태도로, 2016」라는 동세는 보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것에 대한 선호가 언어적·신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시기에 들어 조형은 더욱 간결해졌지만 덕분에 작가는 물질과 자신이 지닌 태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는 작가에게 하나의 태도가 또 하나의 태도로 순환되는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의 태도가 새로운 외현을 위한 형식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나타난 형식이 다시금 작가의 성질로서 돌아왔다.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우아함이라는 태도는 작가가 경험하고 들여다볼 수 있었던 여러 시각적 외현의 메뉴에서 찾았다기 보단 여러 일렁임 사이에서 직립 혹은 자립을 위한 연구 중에 얻어졌다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저런 다른 것을 경험하며 그것들의 합이거나 그중의 무엇을 분별해 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들을 지나고 난 자신을 다시금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 가는 중에 얻어진 것이다. ● 이러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마도 작가의 성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품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성질의 품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작가가 지향한 품격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주경현, 당조명화론). 꼭 우열에 대한 논의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은 나아가고 그 길에 성품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그중에 박정선이 지향하는 것이 태도라는 것은 작가의 업이 시각적 외현 보다도 스스로 생성해 나가는 격을 따르고 있으며 또한 중력처럼 다가오는 어떤 위력과 관계의 장력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발 딛고 있을 수 있는 자립의 자리를 물어나가고 있기에 드러나고 있다.

박정선_A part-the squarish metal_스테인리스 스틸, 설치_169×39×0.03cm_2018
박정선_A part-the bent plywood_합판, 설치_55×45×70cm_2018
박정선_A part-the diamond-shaped steel_스틸, 설치_169×36×0.2cm_2018

이번전시 『A Part is All』에서도 드러난 작가의 우아함은 새로운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와 사조들 틈에서도 자신이 쌓아올린 태도로서 담담히 서사를 건네는 것이 작가의 우아함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기존의 태도에 이질의 태도를 더하는 구성을 보인다. 지속되어온 조형에 대한 시도, 작가의 자전적인 서사를 담은 작품들과 함께 "A part"들은 전시장 내에서 자신의 공간을 당당히 점유한다. 그것은 무엇 같거나「A part_the triangular wood, 2018」 거의 무엇「A part_the squarish metal, 2018」 또는 구부러졌기 때문「A part_bent plywood, 2018」에 완전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작품은 주변과 위화감 없는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하며 작품스러운 태도를 드러낸다. 그곳에서 "A part"는 주변과 표면적 균형을 유지하며 조형과 물질을 드러내지만 꽂혀있는 방법으로 존재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꽂아 넣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전시장에 생성과 존재의 다른 근간을 들추는 사건을 일으킨다. ● 돌아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가 그렇다. 어느 자리에 있는지, 어느 자리에 꽂히는지를 위해 열렬히 살아가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나아가는 삶 중에 꽂히는 이들과 꽂힘에 목을 매는 태도를 만나며 흔들린다. 꽂힌다는 것은 자력이 아닌 힘으로 직립에 이르는 것이고 그것의 조건은 A의 가능성 보단 A의 외부에 주목된다. 「0+1+2+.......+38+39=780, 2018」처럼 780만큼 쌓인 현재보다 0이자 1, 19, 33, 38이었던 시간이 어떤 존재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A part is All". 당장의 A인 '780'만이 존재하는 것이자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하찮은 부분이자 존재의 근간까지 뒤흔들 수 있는 모두로 보이는 것 역시 현실이다. ● 박정선에 대한 이같은 파악 역시 파악하는 자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박정선은 특정한 태도로 비롯된 삶의 우열을 가리기 보단 자신의 목격과 태도를 시각화해나가며 그들의 구조를 역으로 제시하는 담백함을 보이고 있다. 작가역시 그러한 방법으로 삶이라는 아슬아슬한 부유 속에 존재의 양태를 살펴가는 중이다. 하나의 태도로서 우아함을 추구하는 작가와 그의 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 그리고 그것들이 균형을 이루어가는 전시장. 이렇게 꽤 오랜 시간에 거쳐 형성된 환경에 삽입될 새로운 태도들은 작가에게 새로운 균형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 같거나 거의 무엇처럼 구부러지는 것도 하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주희

Vol.20180917i | 박정선展 / PARKJUNGSUN / 朴貞宣 / mixed media

2025/01/01-03/30